▲ 피의자 문 씨의 집 앞에는 경품 응모 시 받아온 쇼핑백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
▲ 애널리스트 경력을 증명하듯 경제 관련 원서들도 쌓여 있었다. |
이들은 곧 병원으로 옮겨졌고 중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난 6일 일단 퇴원을 한 상태다. 하지만 그라목손이 워낙 맹독성이고 후유증도 심해 안심할 수는 없다. 누가, 어떤 이유로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일까.
경찰 탐문수사 결과 범인은 근처에 사는 문 아무개 씨(37)로 드러났다. 문 씨는 27일 오후 사건이 발생한 부동산 중개업소와 같은 상가건물에 있는 피자 전문점에서 피자를 한 판 주문했다. 당시 주문을 받은 피자전문점 사장은 “10분 정도 걸린다니까 자기는 시간이 없다며 요 앞 XX부동산에 가져다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면서 “은행에서 주는 거라고 하면 알 것”이라고 말하고선 미리 준비해온 콜라를 건넸다고 기억했다.
원래 이 피자 전문점은 배달을 하지 않지만 같은 상가에 있는 가게로부턴 종종 전화 주문도 받아온 터라 쉽게 승낙한 것이었다. 미리 준비해간 콜라를 전해 받았을 때 의심스럽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피잣집 사장은 “원래 우리 가게도 음료를 팔지만 마트나 편의점보다 비싸다는 인식이 있어 음료는 다른 곳에서 사 오는 손님이 많다”며 “그래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고 답했다.
문 씨의 범행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지난달 20일 양재동 꽃시장에서 그라목손을 구입했다. 이날 평소 원한이 있었던 유 아무개 씨(43)의 아파트 경비실에 그라목손이 섞인 음료를 전달했지만 유 씨는 마시지 않았다. 다음날인 21일, 문 씨는 행인에게 부탁해 피해자 권 씨가 운영하는 부동산 중개업소에도 포도주스를 전했다. 하지만 병마개의 비닐이 벗겨진 것을 의심스러워한 권 씨의 아내는 주스를 마시지 않고 냉장고에 보관했다. 권 씨의 아내는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혹시 하는 마음에 경찰서에 주스를 제출했다. 분석 결과 거기에도 그라목손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경찰 조사에서 문 씨는 “이사하는 과정에서 유 씨, 부동산 권 씨, 이삿짐업체 등이 모두 짜고 내 집에 들어가서 경품을 훔쳐갔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는 사실무근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이지만 일부 언론 보도처럼 문 씨가 피해망상 등 정신병을 앓아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경찰 관계자는 덧붙였다.
수사 차 문 씨의 집을 찾은 적 있다는 경찰 관계자는 “딱풀, 라면, 전화기, 지갑 등 별의별 경품이 집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문 씨 집을 찾았을 때는 현관문이 굳게 잠겨 있어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다. 문 앞에는 큰 종이상자가 여러 개 나와 있었다. 상자에는 경제학 원서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서적과 서류뭉치가 들어있었다.
취재 결과, 문 씨는 외국에서 초등학교를 나왔고,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대를 졸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졸업 후에는 통역장교로 복무한 뒤 대기업 기획실, 증권사 선임연구원 등을 거쳤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보관된 상자는 그가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일할 때 작성한 보고서, 기업 분석 문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또 문 씨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집 앞에 버려진 박스에는 신학 관련 서적이 십수 권에 달했고, 교회 봉사활동 등에도 열심히 참여했다는 기록이 나와 있었다. 유능한 인재가 어쩌다가 ‘경품족’으로 전락했으며 살인미수까지 저질렀을까. 그의 활동과 관련된 기록은 2007년 말에서 멈춰 있었다. 2008년부터의 자료는 거의 없었으며 마케팅, SNS 활용에 관한 책 몇 권이 고작이었다. 또 다른 상자에는 설명회 등에서 받아온 경품을 담았던 쇼핑백만이 가득했다. 그가 경품을 좇으며 산 지 5년 정도 됐다는 경찰 진술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경찰은 문 씨의 범행 동기에 대해서 조사하는 한편, 여죄가 있는지도 추궁 중이다. 앞으로의 조사 결과에 따라 사건의 전말이 드러날 예정이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정황만으로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이우중 인턴기자 woojoon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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