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주식형 펀드들이 운영 미숙으로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는 곳이 늘고 있어 일각에서는 ‘펀드 종말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 6월 여의도 증권거래소.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지난 2008년 8월 71조 1389억 원까지 치솟았던 국내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11월 말 현재 61조 5889억 원으로 10조 원 가까이 급감했다. 바닥이었던 2010년 말 51조 4830억 원보다 10조 원가량 회복된 것이지만, 대부분 지난해 회복한 것으로 올 들어서는 60조 원 안팎에서 횡보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수익률 저조다. 4일 펀드정보업체 제로인 기준 1년 수익률에서 액티브 펀드는 마이너스(-) 0.91%로 시장(코스피200)을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 수익률 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기간을 더 길게 잡으면 편차는 더 커진다. 2, 3년 수익률로 액티브는 각각 -4.29%, 16.15%로 인덱스의 1.37%, 24.88%와 큰 차이를 보인다. 운용하는 순자산이 10억 원 이상인 액티브 펀드 400개 가운데 1년 수익률이 인덱스 펀드를 앞선 것은 단 88개에 불과하다. 3년으로 해도 307개 액티브 펀드 가운데 217개가 인덱스 펀드에 못 미친다.
부진의 이유에 대해 펀드매니저들은 “대형주가 부진하다 보니, 대형주를 주로 편입하는 성장주 펀드의 수익도 부진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실제 따져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올 들어 12월 6일까지 코스피는 6.79% 올랐다. 주식형 펀드의 주요 투자대상이 되는 코스피200은 8.06% 상승했다. 코스피 소형지수가 2.04%, 중형지수가 -3.99% 움직일 때 코스피 대형지수는 8.95% 움직였고, 초대형주인 코스피50은 9.41%나 치솟았다.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는 무려 37.43% 급등했다.
결국 펀드매니저들이 오르는 종목 비중은 줄이고, 떨어진 종목 비중은 늘인 결과다. 시장과 거꾸로 간 셈이다. 주식운용본부장 출신의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일반 주식형 펀드는 코스피100이나 코스피200과 같게 종목별 비중을 만든 다음 매니저의 판단에 따라 유망한 종목의 비중은 늘리고, 그렇지 않은 종목 비중은 줄이는 방식”이라며 “상승장에서 시장을 쫓아가지 못했다는 것은 어찌됐든 종목 선택을 잘못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액티브보다 낫다는 인덱스 펀드조차 문제투성이다. 지난 11월 15일 기준으로 코스피200의 6개월 수익률은 -2.48%인데, 운용 순자산 10억 원 이상 인덱스 펀드 82개 가운데 85.4%인 70개 펀드가 이를 밑돌았다. 올 들어서도 11개월 중 8개월이나 인덱스 펀드의 월간 수익률이 시장을 따라가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액티브도 인덱스도 모두 못 믿겠다는 말이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인덱스 펀드는 시장을 얼마나 정확히 복제하느냐가 관건인데, 제대로 복제하지 못할 경우 시장을 밑돌 수 있다”며 “결국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못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다른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인덱스 펀드가 시장을 복제한다지만 운용에 따른 거래 비용이나, 운용보수를 감안해야 한다”며 “인덱스 펀드는 이 같은 비용을 감당할 정도의 시장 초과 수익률을 내느냐가 좋은 상품과 그렇지 못한 상품을 가늠하는 관건이 된다”고 보탰다.
지난해 말 야심차게 출범한 ‘최첨단’ 한국형 헤지펀드의 성과도 지지부진하다. 불과 1년간의 수익률로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 봐도, 시장 환경을 봐도 나아질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11월 말 기준 국내에 출시된 19개 헤지펀드 설정액은 1조 167억 원이다. 하지만 수익률이 플러스(+)인 펀드는 9개로 절반도 안 된다. 연초 코스피와 현재 코스피 지수의 차이는 별로 없지만 지난 3~5월과 10월의 하락장에서 대처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 출시된 헤지펀드 대부분은 ‘롱/쇼트’ 전략을 사용한다. 주가가 오를 것 같은 종목은 ‘롱(Long, 매수)’을, 주가가 하락할 것 같은 종목은 ‘쇼트(Short, 공매도)’ 하는 것이다. 상승장에서는 시장 수익률에 못 미치지만 하락장에서는 시장 하락률보다 나은 성과를 내려는 게 이 전략의 목적이다. 그런데 한국형 헤지펀드들은 상승장에서 덜 오르고, 하락장에서는 더 빠지다보니 수익률이 엉망이 됐다. ‘헛다리짚기’는 액티브펀드나 헤지펀드 모두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헛다리짚기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헤지펀드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국내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매니저 가운데 실제 헤지펀드 운용 경험이 있는 이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그나마도 헤지펀드 전체를 운용해본 경우는 없고, 기껏해야 헤지펀드의 한 부분을 맡았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다 보니 포트폴리오 전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외국계 증권사에서 오래 근무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국형 헤지펀드를 들여다보면 진정한 헤지펀드라고 하기 어렵다. 수익구조도, 포트폴리오 구성도 주식형 사모펀드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헤지펀드를 위한 최소한의 인프라 격인 ‘프라임브로커’ 시장이 취약한 것도 문제다. 글로벌 헤지펀드는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서비스를 받는다. 투자 기회부터 포트폴리오 구성 조언, 자금 대여, 그리고 심지어 투자자 모집까지 이들 프라임브로커의 몫이다. 하지만 국내 증권사의 경우 이 같은 능력이 거의 전무하다. 헤지펀드 운용 경험이 있는 매니저도 없지만, 프라임브로커 업무 경험을 갖고 있는 인력은 더욱 없다. 시스템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국내외 자산운용사에서 대표이사를 지낸 인사는 “국내 펀드매니저들은 상승장에서는 초과수익을 잘 내지만, 하락장이나 횡보장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해 많이 벌고 많이 까먹어 장기수익률로 따지면 엉망인 경우가 많다. 규제도 너무 많고, 제대로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시작하다보니 어설프게 흉내만 내는 꼴이 되고 말았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산층이 붕괴되고 난립하던 주식형 펀드의 허상이 드러나면서 펀드 시장에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 수익만 추구하는 공급자 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못한다면 국내에서 펀드 시장의 미래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