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영택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국민계정부장이 지난 6일 3분기 국민소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는 먼저 GDP를 계산하려면 한 나라에서 생산된 모든 최종 재화 가치를 측정해야 하는데 중앙은행만으로는 이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탓이다. 한은도 GDP 측정에 필요한 광공업 생산과 건설 착공 수, 인구 등 기초 통계를 대부분 통계청에서 가져다 쓰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통계청은 호시탐탐 GDP 통계를 가져오려고 하고, 한은은 빼앗기지 않으려하는 기싸움을 2∼3년마다 반복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GDP 통계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하던 GDP 통계는 해방과 한국전쟁 등으로 인해 잠시 끊겼다가 1957년부터 재개됐다. 그런데 이 GDP 통계는 한은뿐 아니라 국세청의 전신인 재무부 사세국에서도 작성했다. 세금을 거두기 위해 정확한 GDP 통계가 필요했던 탓이다. 한은은 지출분야, 재무부 사세국은 생산분야 GDP 통계를 만들었다.
1961년에 통계청이 만들어진 뒤에는 통계청이 사세국에서 하던 GDP 통계 작성을 떠맡았다. 그런데 한은과 통계청간 GDP 통계가 일치하지 않아 혼란이 벌어졌다. GDP는 생산과 지출, 분배분야 총합이 일치해야 한다. 이를 ‘GDP 3면 등가 법칙’이라 부른다. 혼란이 지속되던 1975년 미국 재무부에서 파견된 제임스 홀 자문단장이 한은 GDP 통계가 가장 정확하다며 한은이 전담토록 하면서 교통정리가 됐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세계에서 한은처럼 중앙은행이 GDP 통계를 발표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보니 한은과 통계청 간 다툼은 끊임없이 지속됐다. 세계 186개국 중에서 중앙은행이 GDP통계를 내는 16개국은 북중미와 남미에 집중되어 있다. 대부분 뒤늦게 경제개발이 시작된 나라들로, 경제 성장에 중앙은행이 큰 역할을 하다 보니 GDP 통계를 중앙은행이 맡게 된 것이다. 유럽은 벨기에만이 GDP 통계를 내고 있다. 벨기에는 그동안 통계청이 해왔으나 예산 문제 등으로 중앙은행으로 업무가 이관됐다.
GDP 통계를 둘러싸고 다툼을 벌여오던 한은과 통계청은 지난해 일단 ‘휴전협정’을 맺었다. ‘통계업무 협력약정(MOU)’을 맺어 통계청은 GRDP(지역내총생산) 지표를 개선하고, 한은은 GDP 통계에 필요한 통계청 기초자료를 협조받기로 합의한 것이다. 또 2014년까지 유엔이 제시한 새로운 국민계정 편제안 개발에 힘을 합치기로 했다. 그러나 양 기관이 합의하더라도 그 즉시, 한 기관이 해지 통보를 하면 3개월 후 MOU 효력이 상실되는 조항이 삽입되어 있는 만큼 일시적 휴전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통계청에서는 GDP 통계작성에 필요한 광범위한 자료를 측정하고 있는 만큼 GDP 통계를 가져와야 한다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이 때문에 한은은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국민계정 편제가 나오기 직전인 2013년을 ‘위기의 해’로 보고 있다. 뒤집어 보면 이때가 통계청이 GDP 통계를 노릴 절호의 시기라는 것이다.
때문에 한은은 1957년부터 한은이 GDP 통계를 도맡아 왔다는 역사적 사실, GDP 통계가 정부 기관인 통계청으로 이전될 경우 국제적 신뢰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 등을 중심으로 반대 논리를 다듬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GDP는 정부가 한 해 동안 해온 경제정책에 대한 일종의 성적표”면서 “정부 기관인 통계청이 이를 맡을 경우 성적표를 조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면 객관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준겸 언론인
경제 관료 출신이 있어도(문 캠프) 없어도(박 캠프) ‘골치’
그런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통합민주당 후보의 경제 정책 진영이 일반의 예상과 달리 꾸려져 있어 경제부처 공무원들이 걱정하고 있다. 여당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측에서는 경제 관료 출신들을 찾기 어려운 반면 야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측에는 관료 출신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탓이다. 박근혜 후보는 여당인데도 연결점을 찾기가 어렵고, 문재인 후보는 연결점은 찾을 수는 있지만 이명박 정부 5년간 노무현 정부 때와 백팔십도 다른 경제정책을 펴오며 서먹한 사이가 된 때문이다.
박근혜 후보의 경제정책의 핵심인사는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김광두 서강대 교수 등 박정희 시대 경제개발을 이끌었던 ‘서강학파’ 교수들과 이혜훈 최고위원 등 경제학자 출신 의원들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모피아(재무부 출신 관료)의 대부 격인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이 이끌었던 점과 대비된다.
반면 문재인 후보 측은 경제 관료 출신 거물들이 적지 않게 포진해있다. 경제 공약 개발을 맡고 있는 이용섭 민주당 정책위의장(행시 14회)은 재경부 세제실장, 국세청장, 행정자치부 장관, 건설교통부 장관을 거친 정통 경제 관료다.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 캠프의 경제정책본부장을 맡았던 장병완 의원(행시 17회)은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냈다. 문재인 후보 경제정책 자문그룹의 좌장은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다. 박봉흠 전 기획예산처 장관(행시 13회),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행시 14회), 김영주 전 산업자원부 장관(행시 17회) 등도 경제자문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는 경제 관료를 찾기가 힘들다. 교수나 경제학을 공부한 의원들이 대부분이어서 경제정책 방향이 어디로 갈지 짐작하기 쉽지 않다”면서 “문재인 후보 캠프는 관료는 많지만 이명박 정부 5년간 거리가 멀어져 껄끄러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