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장(홍준표)나 고용노동부 장관(김문수)의 경우 중앙 정치무대에서 주목받기 힘든 자리임에도 불구, 꾸준하게 보수 지지층 이목을 받고 있다. 그러자 정치권에선 새로운 공식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처럼 인물 주목도만 부각시킬 수 있다면 대선 고속도로로 바로 진입 가능한 ‘잠룡 나들목’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여권에서는 서울시장이나 당대표·비대위원장 경력을 대선 후보 1순위로 꼽아왔다. 정치적 무게감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 사례로 입증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을 한 뒤 대선까지 내달렸다. 이 전 대통령은 현대건설 CEO(최고경영자) 경력을 앞세워 “성공한 샐러리맨 신화를 서울에서도 이뤄보겠다”면서 서울시장에 도전, 당선됐다. 그리고는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계천 복원과 버스 전용차로를 중앙차로로 옮겨놓는 안을 밀어붙였다. 공직에서도 샐러리맨 신화가 통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성공한 서울시장이라는 간판은 보수정당 대선 후보로 가는 지름길을 마련해줬다. 이 전 대통령은 2007년 8월 20일 서울 잠실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꺾고 대선 후보 자리를 거머쥐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당심에서는 졌지만 여론조사에서 앞섰다. 이는 ‘소통령’으로 불리는 서울시장 경력 덕분이란 게 중론이었다. 수도 서울을 살려낸 사람이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지자 이 전 대통령은 온갖 마타도어에 시달렸지만 이를 뚫어낼 수 있었다.
2007년 대선 경선에서 이 전 대통령에게 일격을 당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대표·비대위원장 이력을 통해 안정성 있는 지도자론을 내세워 재수에 성공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2년 8월 20일 전당대회에서 선거인단 투표와 일반국민 여론조사를 합쳐 83.9%의 압도적 지지로 1위를 차지했다.
싱거운 전당대회였다. 박 전 대통령은 대세론에 힘입어 초반부터 독주해왔다. 박 전 대표 당선이 기정사실화 하면서 41.2%라는 역대 최저의 선거인단 투표율이 나오기도 했다. 이 여세를 몰아 박 전 대표는 본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따돌렸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딸까지 대통령이 되는 정치사적 신기원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진 듯하다. 복수의 여론조사를 볼 때 오세훈 서울시장이 맥을 못 추고 있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당대표에 비대위원장까지 지냈지만 치고 올라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 시장의 경우 집값 급등을 차단하기 위해 서울 잠실·삼성·대치·청담동 아파트 291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해제한다고 발표했다가 강남 부동산 시장이 불타오르자 불과 35일 만에 결정을 뒤집었다. 오락가락 행정으로 인해 정책 신뢰도를 무너뜨리고 시장 변동성을 키웠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고 여당 내에서도 ‘신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 시장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드는 사건까지 터졌다. 검찰이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 의혹과 관련해 오 시장의 집무실과 공관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이른바 명태균 리스크는 오 시장을 강하게 옥죄고 있다. 대선 길로 향하는 길 곳곳에서 폭탄이 터지고 있는 셈이다.
한동훈 전 대표는 비대위원장·당대표 경력이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단점이 되고 있다. 한 전 대표는 1호 당원 윤석열 대통령과 대척점에 섰다는 이유로 과거 경력이 ‘배신자 프레임’으로 자리매김했다. 정치권을 떠난 후 두 달여 만에 복귀했지만 당에서의 공간 확보는 여의치 않은 상태다.
국민의힘 한 전직 중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 서울시장 재임 시절만 해도 서울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저성장 시대를 맞아 서울조차 성취형 프로젝트는 만들기 어렵고 욕먹을 일만 많아졌다”며 “당대표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대선 가도에 있어 지름길 코스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고 해석했다.

홍준표 대구시장,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근 여권 잠룡 대열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이례적 장면으로 받아들여진다. 탄핵 정국이라는 특수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라는 게 여권 인사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역대 잠룡 중 대구시장으로 가서 차기를 준비한 사례는 찾아 보기 힘들다. 광역단체장으로 가면 언론의 관심도가 낮아지는데, 설상가상 대구시장으로 가면 서울 언론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정치인들은 대구시장 자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과거 대구시장들은 대선과 관계없는 행정 공무원 출신들이 주로 맡아왔다.
역대 민선 대구시장을 맡았던 문희갑 조해녕 김범일 시장 등은 행정 관료 출신이었다. 김범일 시장에 이어 대구시장에 당선된 권영진 의원은 초선 의원 출신으로 대선을 바라본다고 하기에는 정치적 중량감이 적었다. 보수정당 핵심에 대구·경북(TK) 출신들이 버티고 있었지만 이들 중 대구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이는 없었다. 대선으로 가는 지름길은커녕 걸림돌이라는 인식 탓이었다.
고용노동부 장관도 비슷한 인식으로 비치는 자리였다. 8대 최병렬(1990~1992년) 10대 이인제(1993~1993년) 13대 진념(1995~1997년) 24대 임태희(2009~2010년) 장관 정도만 거물급으로 받아들여질 뿐, 눈에 띄는 정치인이 드물었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일만 많았지 빛날 일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고 관료 출신 국회의원들은 해석한다.
그랬던 것이 최근에는 확 달라진 세태를 보이고 있다. 거들떠보지 않았던 자리에서 의외의 싹이 쑥쑥 자라나면서다. 김문수 장관은 계엄 정국 이후 실시된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보수진영 후보들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아직 의사를 밝히진 않았지만, 김 장관이 출마 의지를 굳혔다는 얘기가 흘러 나온다.
홍 시장과 김 장관이 보수정당의 버팀목인 영남 출신이어서 그 장점을 보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정치권에서는 보다 복잡한 메커니즘이 정치 현장에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세가 보수층에서 여전히 두텁다는 측면에서 이 후광을 입고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봐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나온다.
국민의힘 한 현역 의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1야당 원톱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가 고구마가 아니라 사이다이기 때문”이라며 “이 연장선에서 이 대표와 맞서기 위해서는 여권에서 사이다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홍 시장과 김 장관은 이에 딱 맞는 사이다 역할을 해주기에 여권 지지층이 직책에 관계없이 주목하는 것”이라고 했다.

과거엔 아무리 ‘사이다 정치인’이 나와도 그 직책에 따라 언론 주목도가 달랐다. 하지만 유튜브 등이 급부상하면서 언론 지형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홍 시장이나 김 장관이 “일을 안하고 메시지만 낸다”는 비판에도 불구, 꿋꿋하게 스피커를 가동해온 이유로 풀이된다. 특히 이들은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강한 돌직구 발언을 내놓아 화제를 모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홍 시장은 그의 별칭인 ‘홍카콜라’가 말해주듯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발언으로 인해 꾸준히 정치적 주목을 끌어낸다. 조기 대선이 열릴 경우를 대비해 홍 시장은 민주당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3월 24일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이 국회의원 폭행을 가중처벌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키로 한 것과 관련, 페이스북 글을 통해 “민주당의 의회 폭거가 도를 넘고 있다”면서 “민주당 아버지라는 이재명 의원을 때리면 사형에 처한다는 법안도 발의하시지요”라고 했다.
김 장관은 홍 시장과 달리 의도적 발언은 자제하지만 거침없는 언변이 특기다. 그는 지난 3월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문제를 겨냥하며 “인민노련(인천민주노동연합)이라는 곳에 노회찬, 주대환, 마은혁 등이 있었는데 그때 그 사람들이 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자이고,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 적이 없다”며 “마 후보자가 임명되면 헌재가 사상적, 이념적으로 편향되고 오염돼 헌재 판결 전체에 불신과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론조사업체 관계자는 “요즘 여론조사를 해보면 주관식으로 물어도 특정 인물이 두각을 나타내는 등 과거와 완전히 다른 패턴이 만들어졌다”며 “자리에 의해 성장하는 반사체 정치인 시대는 이제 완전히 갔고 스스로 창조한 말과 글을 통해 이슈를 표현해내는 발광체 정치인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됐기에 과거 노른자위 자리는 이제 무의미해졌다”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