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완 재정부 장관 등 경제부처 수장들. 비과세·감면제도 종료를 앞두고 이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
정부는 지난 9월 경기 부양을 위해 세금을 줄줄이 내렸다. 9월 11일에는 2000㏄ 이하 승용차와 대형 가전의 소비세를 5%에서 3.5%로 낮췄고, 2000㏄ 초과 승용차의 소비세는 8%에서 6.5%로 인하했다. 24일에는 주택 취득세 50% 감면 조치를 시행하는 한편 미분양주택 취득시 5년간 양도소득세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이러한 감세 정책 덕분에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 연속 하락하던 승용차 내수 판매량은 10월에 전년 동월대비 4.3% 증가한 10만 2264대를 기록했고, 11월에는 판매량이 더욱 늘어나 13.2%나 증가한 10만 6152대를 나타냈다. 10월 전국 주택 매매거래량은 전월대비 66.8%나 급증한 6만 6441건을 기록했다.
문제는 이러한 세금 인하책이 올해 말이면 모두 종료된다는 점이다. 경기가 아직 반전 기미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세금 인하가 종료될 경우 미국 경제를 위협하는 재정절벽과 유사한 ‘한국판 재정절벽’이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시행 중인 전체 비과세·감면 제도는 총 201개다. 이들 201개 비과세·감면 항목에 따라 올해 31조 9871억 원이 비과세 등으로 세수에서 빠져나갈 예정이다.
이들 항목이 모두 예정대로 올해 말 종료될 경우 내년 세수는 총 8조 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연구 및 인력 개발비 세액 공제 일몰에 따른 세수 확보가 총 2조 5994억 원, 자경농지·축사용지 양도소득세 감면 종료시 1조 4472억 원, 신용카드 등 사용에 따른 부가가치세 세액공제 종료시 1조 2817억 원의 세수가 늘어난다.
하지만 비과세·감면 제도의 혜택이 대부분 서민층과 중소기업에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어서 예정대로 종료할 경우 이들 계층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재정부에 따르면 비과세·감면 등에 따른 서민·중산층, 중소기업의 국세 감면 수혜비율은 60% 수준으로 고소득층, 대기업에 비해 높다. 또 서민·중산층, 중소기업의 국세감면율 비중은 2011년 58.2%에서 올해 59.4%로 늘어나는 추세다. 서민층과 중소기업은 경기 침체 지속시 피해가 집중되는 계층이기 때문에 비과세·감면 제도를 폐지할 경우 이들이 받는 경제적 충격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반면 경기 부양책과 비과세·감면 제도를 예정대로 종료하지 않을 경우 정부 재정 부담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올해 재정위기에 처한 선진국들의 국가신용등급이 대거 하락하는 와중에 세계 3대 신용평가사(무디스, S&P, 피치) 모두로부터 국가신용등급이 1단계씩 상향조정되는 쾌거를 거뒀다. 이는 위기 속에서도 재정을 잘 관리해온 덕분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재정 관리를 자칫 잘못할 경우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특히 경제부처와 경제 전문가들은 복지 지출을 재정 관리의 가장 큰 위험요소로 꼽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인 2007년 복지 지출액은 61조 원이었으나 올해 복지 지출액은 92조 원으로 연 평균 증가율이 8.9%나 된다. 게다가 올해 대선에서 복지 공약이 대거 쏟아진 탓에 내년 복지 관련 지출 부담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무상보육, 대학등록금, 의료비 지원 등 누가 되든 새 대통령의 복지 공약 실현을 위해서는 임기 동안 최소 100조 원 가까운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 당장 내년부터 최소 20조 원의 추가 지출이 필요하다. 추가 비용 마련책으로 대선후보들은 모두 가장 손쉬운 비과세·감면 제도 종료를 공통적으로 내세웠다.
경제부처 입장에서는 비과세·감면 제도 종료를 통해 세수를 더욱 늘리는 것이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면서 복지 지출을 늘리는 묘안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비과세·감면 제도 혜택의 60%가량이 서민층과 중소기업에 돌아가는 상황이어서 서민층이 느끼는 피해의식이 커질 수 있다. 또 비과세·감면 제도 폐지의 충격은 내년 초에 바로 오는데 반해 복지 정책 확대 혜택을 체감하는 시간은 이보다 더 오래 걸리는 시간차의 문제점도 있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IMF(국제통화기금)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등 경제 관련 국제기구와 무디스 등 3대 신용평가사가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은 정부가 2013년에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제하며 “내년 균형 재정 달성을 위해서는 경기 부양용 감세 정책과 비과세·감면 제도를 줄이는 것이 옳다. 게다가 새 대통령이 복지 공약을 대거 내놓은 마당에 재정 확보를 위해서는 감세 정책과 비과세·감면 제도 종료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내년 경제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칫 내년 초부터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어 결정에 신중할 수밖에 없어 고민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