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3월 20일 이사회를 열어 3조 6000억 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했다고 공시했다. 유럽, 중동, 호주, 미국 등지에 전략적 해외 생산 거점을 확보해 2035년 전사 매출 70조 원, 영업이익 10조 원 규모 글로벌 톱티어(Top Tier) 기업으로 거듭난다는 것이 목표다.
1조 2000억 원은 시설자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세부내용을 살펴보면 △MCS(추진장약) 스마트팩토리 구축에 6000억 원 △방산 사업장·설비 운영 투자에 3000억 원 △무인기 엔진 개발 및 양산시설 구축에 3000억 원이다. 나머지 2조 4000억 원은 타법인 증권 취득 자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해외 방산 생산능력 구축에 1조 원 △해외 방산 JV(합작법인) 지분투자에 6000억 원 △해외 조선업체 지분투자에 8000억 원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매년 호실적을 바탕으로 양호한 현금흐름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주주가치를 희석하는 유상증자를 굳이 단행할 필요가 있냐는 지적이 나왔다. 2024년 연결기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매출은 11조 2401억 원으로 전년(7조 8897억 원) 대비 1.4배 증가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1조 7319억 원, 2조 5399억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2.9배, 2.6배나 늘었다.
유상증자 발표 이후 삼성증권·DS투자증권·다올투자증권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보유로 하향했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회사의 손익과 현금흐름이 최근 급격히 개선되고 있었음을 고려하면 이번 증자를 예상한 투자자는 많지 않았을 것”이라며 “추가적 상승 여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지분 투자 대상과 예상 효과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데 그때까지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도 논평을 통해 “4년간 3조~4조 원의 잉여현금흐름을 창출하면 유상증자가 불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회사채 등급은 AA-로 매우 높은데, 조 단위의 회사채 발행한다고 하면 흥행에 성공할 것이며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 포함 금융권 차입도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최근 영업으로 창출한 현금은 항공엔진 개발, 친환경 에너지 활용 등 기존부터 계획했었던 사업에 투자할 예정”이라며 “회사채나 차입 등으로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것보다는 재무건전성을 유지한 상태에서 입찰에 들어가는 게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유상증자로 인한 주주가치 희석이 우려된 가운데 주가가 크게 폭락했다. 3월 20일 기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종가는 72만 2000원이었다. 그런데 유상증자 발표 다음 날인 3월 21일 종가는 62만 8000원으로 전일 대비 13%가량 떨어졌다.
유상증자 발표 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1조 3000억 원을 들여 한화오션 지분을 인수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월 10일 한화임팩트와 한화에너지가 보유한 한화오션 지분 7.3%를 취득한다고 발표했다. 방산과 조선해양 사업 간 시너지가 기대됐기 때문에 발표 이후 한화에어로, 한화오션 주가가 모두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나 일각에서 그룹 내부 지분 정리에 현금을 사용하고 막상 본업 사업 확장을 위한 자금을 주주들에게 손 벌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한화에너지는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한화임팩트는 한화에너지가 52.07%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그룹과 한화에어로는 경영 승계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그룹은 주주들의 반발에 따른 사태 수습에 나섰다. 김동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부문 대표이사 등 최고경영진이 총 48억 원 규모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식을 매수한다고 지난 3월 23일 발표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최대주주인 (주)한화는 유상증자에 따라 배정받은 물량 100%(162만 298주)를 인수하기 위해 9803억 원을 출자한다고 3월 26일 발표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월 25일 2025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유상증자 배경에 대해 별도로 설명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는 “해외 입찰을 위해 부채비율을 관리하면서도 대규모 투자를 단기간에 집행하려면 유상증자가 최적의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한상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IR 담당 임원(전무)은 “유상증자설이 돌면 주가가 한두 달 급락하는 경우가 있는데, 당사는 보안을 지켰기 때문에 주가 하락을 단기에 끝냈다”고 밝혔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유상증자 이슈가 터진 이후에 최고 경영진 자사주 매입, (주)한화의 유상증자 100% 참여 결정 등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우려를 해소한 것은 칭찬할 만한 부분”이라면서도 “그룹 내부 지분 정리 의혹 등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금융감독원은 유상증자를 승인하더라도 자금을 계획대로 활용할지 여부를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은 3월 27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에 제동을 걸었다. 금감원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지난 3월 20일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대해 중점 심사 절차에 따라 대면 협의 등을 통해 면밀히 심사한 결과, 유상증자 당위성, 주주 소통 절차, 자금 사용 목적 등에서 투자자의 합리적 투자 판단에 필요한 정보의 기재가 미흡하다고 판단해 정정 요구했다”고 밝혔다. 정정 요구를 받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개월 내 정정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제출하지 않으면 유상증자는 철회된다.
앞서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금감원의 유상증자 서류 보완 요청은 유상증자 시 진행되는 절차로 이해하고 있다. 해당 요청 사항에 대해 성실하게 답변할 것”이라며 “주주가치 제고 방안과 관련해서는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