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압력이 작용했다. 유럽이 방위비를 늘리면 그만큼 미국의 부담은 줄어든다. 미국의 방위비 예산은 연간 9000억 달러(1302조 원)에 달한다. 미국이 유럽에 쓰는 방위비 예산을 줄여도 유럽이 늘리는 폭이 더 크다면 전세계 방위산업 규모는 계속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는 전력 구성의 변화다. 위성과 인공지능(AI), 무인기 등의 확산으로 기존 무기체계인 유인 전투기와 탱크, 함정 등에 대한 장기 수요가 불투명해졌다. 탑승자 보호가 필수인 유인 장비는 가격이 높고 구조가 복잡해 가성비가 낮다. AI를 바탕으로 한 무인 무기는 탑승자 보호가 불필요해 구조도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가성비가 아주 높다. 최근 미국 기술 기업이 방위산업에 잇따라 뛰어드는 이유다. 다시 풀면 방위산업의 패러다임이 무인과 AI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세 번째 무기의 무인화에도 불구하고 대포, 탄약 등 가장 기본적인 군수품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첨단 무기 체제로 단위 면적당 탄약 소모는 줄었지만, 전장 규모와 지속 기간 연장에 따른 누적 소비량이 매우 커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3년간 천문학적인 물량의 탄약을 소비하면서 글로벌 재고도 급감했다. 생산 확대가 필요하다. 종합하면 첫 번째는 유럽, 두 번째는 미국, 세 번째는 한국 방산업체에 수혜인 재료들이다.
미국, 유럽, 한국 세 지역별로 관심을 가져야 할 방산업체들을 살펴보자. 미국의 전통적인 군수업체는 △F-35 생산업체인 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 △스텔스(B시리즈) 폭격기와 무인기를 만드는 노스럽 그루먼(Northrop Grumman) △미사일과 방공망에서 경쟁력이 높은 레이시온 테크놀로지스(Raytheon Technologies) △전차와 잠수함을 제작하는 제너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최근 이들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한 정보분석 및 보안 솔루션업체 팔란티어(Palantir)가 급부상했다. 팔란티어는 미국 최초로 정부의 주요 방산 계약을 따낸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경영진들은 트럼프 행정부 핵심 인사들과 ‘절친’이다. 주가가 급등하면서 S&P500, 나스닥100 등 간판지수에도 잇따라 편입됐다. 팔란티어는 2024년 4분기 ‘서학개미’가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이기도 하다. 주가 급등에 따른 고평가 우려가 있지만 고속 성장을 할 것이란 관측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팔란티어는 방산 스타트업들의 주요 투자자이기도 하다.

그동안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의 방위를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의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의 방위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며 국내총생산(GDP)에서 방위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2%에서 5%까지 높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나토에 투입하는 비용을 아끼려는 의도다. 미국이 발을 빼면 현재 유럽의 방위력으로는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는 불가능하다. 위성과 미사일은 절대 열세이고 재래식 전력도 우위에 있지 못하다. 유럽도 방위비 증액에 돌입한 이유다.
영국은 현재 GDP의 2%인 방위예산을 5년내 2.5%까지 높이기로 했다. 독일은 방위 예산에는 차입 한도를 두지 않는 헌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유럽 최대 경제대국이자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독일이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공식적으로 대규모 재무장을 선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독일의 무장 강화는 그동안 모두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유럽의 방위기업들은 오랜 기간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생산력이 제한적이다. 단기간에 방위력을 높이려면 미국 제품을 수입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유럽보다 미국의 방산업체들이 수혜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의 재무장이 미국에 대한 방위 의존도를 낮추는 데 있는 만큼 자국 업체 육성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근 주식 시장에서는 미국보다 유럽 방위산업체의 주가 상승 기울기가 더 가파르다.
유럽 방산업체는 독일의 라인메탈(Rheinmetall)을 비롯해 △영국의 전투기(유로파이터 타이푼)·함정 제조사 BAE시스템즈 △프랑스의 레이더·전자장비 업체 탈레스(Thales) △이탈리아 헬리콥터 기업 레오나르도(Leonardo) 등이 대표적이다. 프랑스 다쏘항공(Dassault Aviation), 독일 헨솔트(Hensoldt)·티센크루프(Thyssenkrupp), 스웨덴 사브(Saab)도 있다.
가장 주목받는 곳은 독일 최대 방산기업인 라인메탈이다. 1889년 설립돼 두 차례 세계대전을 모두 겪었다. 특히 2차 대전 때 독일군의 자랑이던 전차포 개발과 제조로 유명하다. 라인메탈은 여전히 기술력에서 세계 최정상급으로 꼽히며 전차와 장갑차 등 차량에서부터 무기, 탄약, 전자솔루션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든다.
회사 측은 2023년 72억 유로(11조 2500억 원) 수준이던 매출을 2027년까지 200억 유로(31조 2600억 원)로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유럽 각국에서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편 독일은 군사력 강화와 함께 저성장 탈출을 위해 통일 이후 최대 규모의 인프라 투자계획도 밝혔다.

미사일과 레이더 등을 만드는 LIG넥스원도 2022년 초 대비 배 이상 주가가 급등했다. 전투기를 제조하는 한국항공우주(KAI)와, 탄약을 만드는 풍산 주가도 이 기간 3만 원 중반에서 7만 6000원대로 껑충 뛰었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수혜를 일찌감치 누린 것이 앞으로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유럽의 경쟁사들이 대규모 연구개발과 시설 투자를 시작하면 국내 방산 기업에는 부담이다. 무기는 정부가 구매한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유럽 국가들은 아무래도 유럽산 제품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업체는 최첨단 분야에서는 해외 업체 대비 경쟁력이 우위에 있지 못하다. 이미 주가가 크게 올라 공매도가 재개되는 4월 차익실현이 쏟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의 무기들이 높은 가성비로 중동과 동남아 시장에서 얼마나 점유율을 확대할지가 관건이다.
최열희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