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자를 위해 돈을 빌려 쓰는 것도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관건은 투자 성과다. 최근 삼성전자가 가장 집중한 투자처는 비메모리 반도체를 주문생산해주는 파운드리(Foundry)다. 큰돈을 썼지만 경쟁사인 대만 TSMC와의 격차가 오히려 더 벌어졌다. 투자가 성과를 내지 못하면 매몰 비용과 차입 부담이 겹쳐 재무적 타격이 치명적일 수 있다.
미국 공장을 증설 중인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영업현금흐름이 5조 6000억 원 넘게 순유출됐다. 투자활동으로 인한 현금유출액도 14조 6000억 원 이상이다. 영업과 투자 모두 순유출 폭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그래도 현대차는 보유 현금이 꽤 많아 당장 현금 부족을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현대차그룹의 약한 고리는 현대제철이다. 현대제철은 최근 58억 달러(약 8조 원)를 들여 미국에 전기로 제철소를 짓기로 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매출이 23조 원으로 전년(25조 9147억 원) 대비 10% 넘게 줄었다. 영업이익은 전년의 4분의 1 토막도 안 되는 1594억 원에 그쳤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현대제철의 유상증자를 점쳤지만 회사 측은 검토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시장에서는 현대차나 기아, 현대모비스 등 주력 계열사들이 미국 공장에 직접 출자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대차와 기아는 현대제철 주주다. 현대제철 유상증자든 직접 출자든 자금 부담은 마찬가지다.
LG에너지솔루션도 자금난이 심각하다. 영업현금흐름은 5조 원인데 투자현금흐름이 12조 원 넘는 순유출이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영업은 시원치 않은데 공장 증설 등 돈 나갈 곳이 많아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대주주인 (주)LG 지분율이 82%에 달해 유상증자를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하면 80%를 최대주주인 (주)LG가 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3자 배정 증자나 자본성증권(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사채, 우선주 등) 발행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재계는 이번 개정안에 반대해 한덕수 국무총리에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현재 여당인 국민의힘은 재계와 같은 입장이다. 거부권이 행사될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선거법 2심에서 승소하면서 조기 대선 출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만약 조기 대선을 통해 정권이 바뀐다면 이번 상법 개정안이 시행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 때문인지 이미 유상증자 카드를 택한 곳들도 있다.
삼성SDI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래투자 자금 마련을 위해 각각 2조 원과 3조 6000억 원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진행 중이다. 적자로 전환한 삼성SDI에 대해 시장은 유상증자 시행의 불가피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모습이다. 벌이도 없는데 계속 빚으로 투자자금을 마련하기에는 이자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고도 계열사로부터 지분 매입에 거액을 지출한 후 주주들에 손을 내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대해서는 따가운 시선이 많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3월 27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제출한 유상증자 증권신고서에 정정신고서를 요구했다. 유상증자 당위성, 주주 소통 절차 등에서 투자자의 합리적 투자 판단에 필요한 정보의 기재가 미흡하다는 이유에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는 인수합병(M&A)이 아닌 규모로는 자본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유상증자 발표 전 한화오션 지분 매입에 1조 3000억 원을 지출했는데,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지배하는 회사(한화임팩트)로부터 사들인 액수가 8900억 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산 대장주로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더 크다.
신주발행가는 삼성SDI가 16만 9200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60만 5000원이다. 지난 3월 27일 종가는 삼성SDI가 20만 1500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66만 원이다. 유상증자 발표 이후 낙폭은 삼성SDI가 0.1%,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12.7%로 모두 신주 할인율(15%)을 밑돈다. 신주발행가보다 주가가 높으면 유상증자 주주들의 평가가 긍정적이란 뜻이다.
최열희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