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 도시들에서 최근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비싼 아파트들이 나타나고 있어 전세대란을 실감케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계 없음. 이종현 기자 |
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광주 남구 봉선동 명지맨션 89㎡형은 7000만 원 전후로 매매가가 형성돼 있는데 전세가는 이보다 비싼 7100만 원에도 거래된다.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동양아트맨션 76㎡형은 9800만 원이면 살 수 있는데 전세는 1억 200만 원에도 거래된다. 매매가가 9500만 원인 대구 달성군 화원읍 한샘타운 99㎡형의 전세는 이보다 비싼 9600만 원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이들 지역에서 전세가 매매보다 비싼 곳이 있는 이유는 매매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최근 2~3년간 이들 지역의 매매와 전세는 동반 상승했다. 광주의 경우 지난 2009년 9월부터 올해 10월까지 3년간 아파트 매매가가 35.6%나 뛰었다. 같은 시기 전세가도 37.1% 상승했다. 대구나 울산 등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대구 아파트 매매가는 25.9%, 전세가는 41.2% 올랐다. 울산의 아파트도 이 기간 매매가(35.5%)와 전세가(41%)가 동반 급등했다.
그런데 올 들어 매매가 상승세가 주춤하기 시작했다. 최근 지방에 새 아파트 분양이 늘어나 부족한 공급을 채워줬고, 단기간에 매매 가격이 많이 뛰어 수요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반면 전세 가격은 상승세가 계속됐다. 단기간 매매 가격이 크게 올라 집값이 다시 꺼질 것이라는 우려감이 확산돼 집을 사기보다 그대로 머무르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런 와중에 일부 지역에서 급하게 전세 물량을 찾다 보니 오히려 전세가가 매매가를 뛰어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라인1차아파트 79.33㎡형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아파트 전세는 최고 1억 원인데 매매를 기다리는 매물 가운데 9700만 원도 있다. 이 아파트는 2009년 초 매매 가격이 6000만 원 정도였다. 같은 시기 전세는 5000만 원으로 전세가율은 80% 수준이었다. 그런데 최근 2~3년간 지방 아파트 공급 부족에 따라 매매 시세가 1억 원 수준으로 뛰자 전세도 비슷한 비율로 상승해 올 초 9000만 원까지 상승했다.
이후 라인1차의 매매가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반면 전세는 물량 부족으로 꾸준히 올라 일부 전세가 매매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사례가 나타났다. 문흥동 증흥공인 이성규 사장은 “매매가가 단기간에 너무 올라 꼭짓점이라는 인식이 많다”며 “집값 상승 기대를 접고 전세로만 수요가 몰리니 전세가 매매보다 더 비싸게 거래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집을 사면 재산세 등 원치 않는 세금 부담과 집값 하락에 대한 불안에 시달려야 하므로 젊은 주택 수요자들은 처음부터 매매에는 관심이 없다”며 “보증금을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는 전세 선호 현상이 매우 높다”고 보탰다.
주택금융공사 산하 주택금융연구소 김덕례 연구위원은 “지방은 애초에 보증부 월세가 많고 전세가 희소해 전세가율이 높았다”며 “전세가가 조금만 오르거나 매매가가 조금만 떨어져도 매매와 전세 가격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구조여서 전세금이 매매가를 상회하는 사례가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은 세입자 입장에서는 매우 위험하다. 집주인의 사정에 따라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경우 전세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메리트 박미옥 경매본부장은 “지방에서 단기간 집값이 올라 집주인이 대출을 끼고 산 주택이 꽤 많았다”며 “깡통주택이 급증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내다봤다.
지방의 이런 현상은 ‘전세가율이 60%를 넘으면 돈을 조금 더 보태 집을 살 수 있으므로 매수세 증가로 이어져 집값이 뛴다’는 상식을 여지없이 깨는 것이다.
과거 이 상식이 통한 때가 있었다. 수도권 전세가율이 60% 이상을 나타냈던 2000년 2월부터 2002년 9월 사이 수도권 집값은 39% 올랐다. 60% 이상 전세가율을 기록한 초기 1년간(2000년 2월~2001년 2월)은 1.6% 오르는 데 그쳤으나 그 이후 폭등했다. 2001년 9월엔 전세가율이 67.7%까지 뛰었다. 그래서 최근 몇 년 새 집값은 내리고 전세가가 뛰자 각종 연구소 등지에서 이 상식을 토대로 집값이 반등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국민은행 부동산조사팀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11월 기준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은 평균 63%를 기록했다. 2003년 6월 63.4% 이후 최고치다. 서울은 평균 54.5%로 2003년 4월 55% 이후 가장 높고 경기도 역시 58%로, 조사가 시작된 2003년 이후 최고치다. 지방은 6대 광역시가 67.8%, 기타 지방이 69.6% 정도다.
하지만 최근 전세가는 계속 오르는데 집값은 오르지 않는 기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집값 전망이 나쁘면 전세가율이 높아도 결코 매매로 전환하지 않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연구원은 “전세가율이 시장 상황을 알려주는 중요한 신호이긴 하지만 통계적으로 매매 가격 상승의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보기 어렵다”며 “전세가율이 올랐다고 막연히 매매가도 상승할 것으로 기대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중·장기 관점에서 서울·수도권에도 지방처럼 전세가율이 폭등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고 전세 물건이 줄어들면 전세가는 계속 치솟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팀장은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고 집주인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돌리면서 전세의 희소성은 계속 높아질 것”이라며 “서울·수도권에서도 전세 가격이 계속 뛰면서 매매가격을 바짝 따라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일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jumpcu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