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의 실제 대결에선 두 레전드의 바둑 실력이 화제를 양산했다면, 영화에선 두 역할을 소화한 이병헌과 유아인의 연기 실력이 중요하다. 그리고 두 배우는 빼어난 연기력으로 스크린에 가득 채웠다.
영화 ‘승부’는 영화계 비수기인 3월 말에 개봉했고, 이어지는 4월 역시 비수기다. 비수기에 개봉했음에도 엄청난 흥행 성적을 기록한 영화들도 있다. 119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파묘’는 2월 22일에 개봉했다. 설 연휴가 지난 뒤인 2월 말은 새 학기를 앞둔, 말 그대로 최악의 비수기다. 131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 역시 비수기인 11월 22일 개봉했다.
‘승부’가 ‘파묘’와 ‘서울의 봄’처럼 개봉과 동시에 흥행 돌풍이 불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1000만 관객까지 바라보기는 힘들다는 의미지만, 손익분기점인 관객 180만 명은 가볍게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300만~5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중박 영화’가 될 수도 있다는 장밋빛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긍정적인 전망의 기반은 실관람객들의 평이다. 개봉 1주 차 이후 흥행 성적에 가장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바로 입소문이다. ‘승부’의 네이버 실관람객 평점은 8.73이고 네티즌 평점은 9.01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네이버 실관람객 평점 8.23, 네티즌 평점 7.44를 기록한 ‘미키17’, 실관람객 평점 8.22, 네티즌 평점 7.77을 기록한 ‘파묘’보다도 높다. 유아인 리스크가 관객들의 작품 선택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이처럼 개봉 1주 차 성적이 좋다는 것은 해당 리스크를 이미 극복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비수기에 개봉했다는 부분이 약점이지만 반대로 그만큼 경쟁작이 많지 않다는 부분은 강점이다. 하정우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로비’가 4월 2일 개봉했지만 3만 7158명의 관객을 동원해 5만 766명을 동원한 ‘승부’에 밀려 일별 박스오피스 2위에 머물렀다.

‘승부’는 넷플릭스 역시 욕심낼 수밖에 없는 배우 조합의 영화였다. 유아인이 출연한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2021년 11월 공개)과 넷플릭스 영화 ‘서울대작전’(2022년 8월 공개)이 모두 성공을 거둔 데다 이병헌 역시 2021년 9월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에 출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3년 2월 유아인의 상습 마약 투약 사건이 불거졌다. 주연 배우가 법정에 서게 되면서 넷플릭스는 공개 일정을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고, 기약 없는 기다림이 이어지던 영화 ‘승부’는 창고영화로 전락할 위기에 내몰렸다. 그렇게 다시 2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인 지난 3월 26일에서야 극장에서 개봉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영화 ‘승부’는 코로나19과 주연 배우 마약 사건이라는 기구한 사연으로 인해 극장 개봉에서 넷플릭스 공개로 선회했다가 다시 극장 개봉을 결정하는 승부수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승부’가 손익 분기점을 넘어 중박 영화의 반열에도 오른다면 배급사와 제작진이 던진 이 수가 완벽하게 들어맞게 된다. 게다가 넥플릭스의 영향력이 한국 영화계를 압도하는 상황에서 ‘승부’가 극장 개봉으로 선회해 흥행한다면 이는 기분 좋은 반전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유아인의 연예계 복귀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유아인은 2024년 9월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과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아 법정구속 됐지만 ‘승부’의 개봉을 한 달여 남긴 지난 2월 18일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0만 원으로 감형돼 석방됐다. 다만 여전히 남은 논란을 의식한 영화 ‘승부’ 측은 포스터와 스틸 사진 등에서 철저히 유아인을 지웠고, 홍보 마케팅 과정에서도 제외시켰다. 그렇다고 영화에서도 유아인이 나오는 장면을 모두 편집할 수는 없었다. 투톱 주연의 ‘승부’에서 조훈현 9단과 겨루는 이창호 9단 역할에 손댈 순 없기 때문이다.
개봉 이후 스크린을 통해 유아인의 연기를 접한 관객들의 반응은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마약 사건으로 심하게 생채기 난 유아인의 이미지까지 회복되진 못할지라도 연기력에 대한 평가 자체는 극찬의 연속이었다. 네이버 영화 관람 평에도 ‘이병헌과 유아인의 감탄이 나오는 연기 차력쇼’, ‘볼수록 아까운 유아인’, ‘유아인이 이창호를 너무 잘 연기함. 악마의 재능’, ‘이병헌 보러 갔다가 유아인 연기에 놀람’, ‘도대체 이창호를 어떻게 표현할까 싶었는데 유아인 연기를 너무 잘해서 놀랐음’, ‘유아인은 그냥 계속 연기해야 된다’, ‘유아인을 편집하지 않은 뚝심 있는 감독에게 박수쳐주고 싶다’ 등 유아인 연기에 대한 칭찬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영화 ‘승부’에서의 빼어난 연기 하나로 마약 사건 물의를 털어내고 연예계에 컴백하기는 어렵다. 다만 ‘승부’가 기대 이상의 흥행 성적까지 기록한다면 컴백에 보다 유리한 상황이 조성될 수는 있다. 당장 연기 활동 재개까지는 아니어도, 역시 2021년에 촬영이 끝났지만 개봉하지 못하고 있는 유아인의 또 다른 주연작 ‘하이파이브’의 개봉 전망도 좀 더 희망적으로 변했다. 우연히 초능력을 얻게 된 다섯 명이 그들의 초능력을 탐하는 자들과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액션 영화인 ‘하이파이브’에는 유아인 외에도 라미란, 이재인, 안재홍, 김희원 등이 주연으로 출연했다.
김은 프리랜서 master@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