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극장가는 최대 성수기를 맞으며 충무로에 자본이 쏠렸다. 영화 세트장 구하기가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일정 수준의 기획에 대중에게 알려진 감독이나 배우가 붙으면 투자금이 몰려 크랭크인 시기부터 잡던 때다. 그렇게 2019∼2020년 사이에 숱한 영화들이 제작됐다. 이때만 하더라도 팬데믹 기간이 2023년까지 이어질 것이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여파는 예상보다 컸고, 엔데믹으로 전환된 뒤에도 좀처럼 관객이 늘지 않자 이미 촬영을 마친 영화들이 개봉 시기를 조율하며 눈치 싸움을 하기 바빴다. 결국 그렇게 짧게는 2년, 길게는 5∼6년을 묵힌 영화들이 창고에 켜켜이 쌓였다.

그사이 넷플릭스, 디즈니+, 티빙 등 국내·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이 보편화된 것도 결정타가 됐다. 영화 한 편 볼 수 있는 구독료만 내면 수천 편의 콘텐츠를 무한대로 즐길 수 있다. 신작 유입 및 공개 속도도 빨라졌다. 극장에서 흥행에 실패한 작품들이 더 값어치가 떨어지기 전 일찌감치 OTT에 권리를 넘기거나, 아예 극장 상영을 포기하고 ‘OTT 공개작’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잦아졌다. 팬데믹 기간 ‘집콕’ 생활에 익숙해지며 가성비 높은 OTT 콘텐츠를 즐기던 대중에게 극장 문턱이 한없이 높아진 셈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해부터 신작 제작 소식은 크게 줄어들었다. 대신 제목을 바꾼 창고 영화들이 포장지를 바꾸고 관객몰이에 나섰다. 지난해 연말 개봉된 영화 ‘소방관’(385만 명)이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둔 이후, ‘말할 수 없는 비밀’(82만 명)과 ‘승부’(180만 명) 등도 손익분기점을 넘으며 ‘창고 영화의 반란’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눈을 씻고 좀 더 냉정하게 영화 시장을 바라봐야 한다. ‘보고타:마지막 기회의 땅’(42만 명), ‘브로큰’(19만 명),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11만 명), ‘스트리밍’(10만 명) 등 또 다른 창고 영화의 수익은 손익분기점에 턱없이 모자랐다.
더 큰 문제는 그나마 극장업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창고 영화마저 점차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4월 말 공개되는 배우 마동석 주연 ‘거룩한 밤:데몬 헌터스’와 5월 개봉하는 배우 배두나·김윤석 주연작 ‘바이러스’ 정도가 눈에 띈다. 6월에는 배우 유아인의 대마초 흡연 여파로 개봉이 미뤄졌던 ‘하이파이브’가 극장에 걸릴 예정이다. 하지만 이외에는 딱히 눈에 띄는 창고 영화가 없다.
신작 소식은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상황이다. 지난 1년 동안 5대 투자배급사가 새로 자본을 투입하며 삽을 뜬 신작은 10편 안팎이다. 1년이 52주가량임을 고려할 때 내년이 되면 극장에 걸리는 장편 한국 영화는 한 달에 한 편 꼴이 될 것이란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칸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유력 해외영화제는 ‘신작’을 소개하는 자리다. 어디에서도 공개하지 않은 새로운 작품이 ‘월드 프리미어’라는 이름이 붙어 해당 영화제에서 첫 상영된다. 하지만 현재 충무로에는 자신 있게 내놓을 신작이 보이지 않는다. 만드는 족족 손해를 본다는 인식 때문에 투자배급사들이 지갑을 굳게 닫았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 임을 고려할 때 손해를 감수하고 신작에 투자하라고 종용할 수는 없다. 결국 침체된 극장 산업으로 인해 신작 투자가 줄어들고, 마땅한 볼거리가 없으니 관객이 더더욱 극장에 가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를 타개할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참담하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master@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