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세의 배우 윤여정이 20여 년 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특별한 가족의 이야기를 처음 밝혔다. 최근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 등과 인터뷰를 갖고 큰 아들이 동성애자이고, 동성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윤여정의 고백이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유명 배우가 자녀의 성정체성을 밝히고, 동성 결혼을 했다는 사실까지 공개한 최초의 사례다. 이를 의식한 듯 윤여정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이런 문제(동성애)에 대해 보수적인 곳”이라며 이런 발언으로 혹여 “비난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두 아들의 존재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 없었던 윤여정이 아들의 동성결혼을 고백한 것은 최근 북미에서 개봉한 영화 ‘결혼 피로연’의 영향이다. 윤여정이 주연해 4월 18일(현지시간) 개봉한 영화는 영주권을 얻기 위해 미국 여성과 위장 결혼을 하려는 한국계 미국인 게이 청년의 이야기를 그렸다. 윤여정은 영화 개봉에 맞춰 현지 언론들과 인터뷰에 나섰고, 그 자리에서 장남이 커밍아웃한 사실과 동성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과 겪은 개인적인 경험이 이번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고도 했다.
#윤여정 “아들보다 사위가 더 마음이 들어”

영화를 알리기 위해 이달 초 버라이어티를 비롯해 미국 주간지 피플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과 인터뷰를 가진 윤여정은 “이번 ‘결혼 피로연’은 저의 개인사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며 “제 장남은 2000년에 커밍아웃 했다. 뉴욕에서 게이의 결혼이 합법화됐을 때 뉴욕에서 결혼식을 했다”고 밝혔다. 뉴욕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때는 2011년 7월이다. 윤여정은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하면서 “한국에서는 비밀이라 온 가족이 뉴욕으로 가서 결혼식을 열었다”며 “지금은 아들보다 (아들의 남편인) 사위가 더 좋다”고도 말했다.
미국과 비교해 국내서는 동성애자의 커밍아웃은 여전히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는다. 특히 윤여정처럼 유명인이 가족의 커밍아웃 사실을 인터뷰를 통해 공개하는 경우는 비슷한 사례조차 찾기 어렵다. 때문에 그의 공개 발언은 여전히 차별받는 성소수자를 둘러싼 사회적인 시선에 커다란 울림을 주면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윤여정의 장남은 1975년생인 조얼 씨다. 윤여정은 가수 조영남과 1974년 결혼해 미국으로 이주해 두 아들을 낳았다. 둘째는 1982년생인 조늘 씨다. 미국에서 줄곧 생활하던 윤여정은 조영남과 1987년 이혼한 뒤 혼자 미국에 남아 두 아들을 키웠고, 생계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와 어렵게 다시 연기를 시작하며 혹독한 과정을 거친 일화들도 잘 알려져 있다.
이번에 윤여정이 언급한 조얼 씨는 미국의 명문인 콜롬비아대학교를 졸업하고 패션 분야에 일하고 있다. 둘째 조늘 씨는 현재 윤여정의 미국 활동을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결혼 피로연’ 개봉에 맞춰 진행한 인터뷰 자리에도 동행한 조얼 씨에 대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윤여정의 매니저’라고 표현했다. 차남 역시 뉴욕대를 졸업하고 음악 회사에서 근무하는 등 엔터테인먼트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
#“아들들 없었다면 열심히 연기하지 않았다”

‘결혼 피로연’도 그 연장선에 있다. 윤여정은 지난해 5월 이 영화의 출연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제 아들이 한국계 미국인이어서 영화의 이야기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당시에는 이민자로 살아가는 아들을 둔 엄마의 마음으로 보였지만, 이번 커밍아웃 발언을 계기로 영화의 주인공이 게이 청년인 설정이 장남의 상황과 겹쳐 작품에 더 깊게 공감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두 아들은 윤여정을 안주하지 않는 배우로 살아가도록 이끈 원동력이었다. 윤여정은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 특별 프로그램 액터스하우스의 관객과 만난 자리에서 ‘자녀가 없었어도 이렇게 열심히 연기를 했겠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자식이 없었으면 목숨 걸고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저는 동물적인 사람이기에 자식을 먹여 살리는 게 저의 책임이 있다”며 “두 아들이 학교에 다니고 직장을 가진 다음에야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고 생각했고, 우리 세대에겐 그만큼 자식 교육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두 아들을 향한 깊은 사랑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감격스러운 순간에도 드러냈다.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쥔 윤여정은 두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라고 말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 같은 사랑으로 이번 인터뷰를 통해 아들의 커밍아웃 사실까지 직접 밝힌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에서 윤여정은 “한국에서는 동성애 자녀를 둔 부모가 어려움을 겪기 쉽다”며 “한국이 마음을 열고 깨어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단지 바람에만 멈추지 않았다. 윤여정은 아들을 향한 마음을 ‘결혼 피로연’에도 담았다. 연출을 맡은 한국계 감독인 앤드루 안과 여러 대화를 나누면서 극 중 윤여정이 게이인 손자에게 건네는 말인 ‘네가 어떤 모습이든 너는 내 손자야’라는 대사를 넣었다. 윤여정과 그 아들이 겪는 일들과 나눈 말들을 반영한 대사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master@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