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28일 검찰이 홈플러스 본사와 MBK 파트너스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홈플러스 경영진이 신용등급 하락을 예상하고도 투자자에게 손실을 떠넘기기 위해 채권을 발행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4월 1일 신영증권, 하나증권, 현대차증권, 유진투자증권 등 4개 증권사는 홈플러스 경영진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과 조주연 홈플러스 공동대표도 고발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영증권은 홈플러스 신용등급 강등 직전까지 ‘카드대금 기초 유동화증권(ABSTB·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을 발행했고, 나머지 3개사는 이를 시중에 판매했다. 홈플러스는 입점업체에 지급하는 대금을 구매전용카드로 결제해왔다. 카드사가 대금을 공급사에 전달하면 홈플러스가 약 3개월 후에 이를 상환하는 방식으로 정산해왔다. 카드사와 증권사들은 이 3개월짜리 매입채권을 기초로 한 전단채를 만들어 연 5~6%대의 고금리로 투자자들에게 다시 판매했다.
증권사들은 홈플러스가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을 알고도 전단채 발행을 묵인한 뒤 기습적으로 회생을 신청해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A3’였던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은 지난 2월 28일 투기등급(B) 바로 윗 단계인 A3-로 강등됐다. 홈플러스는 나흘 만인 3월 4일 채무 상환이 부담스럽다며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 명령 신청서를 냈다. 기업이 회생절차를 신청하면 금융 채무는 동결된다.
일요신문 취재에 따르면 홈플러스가 신영증권을 통해 발행한 전단채는 2024년 10월·11월·12월 1017억·1107억·1128억 원 규모에서 회생 신청을 앞둔 2025년 1월에는 1373억 원, 2월 1518억 원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4월 21일 금융위원회는 사기적 부정거래 정황을 포착했다며 홈플러스 사건을 긴급조치(패스트트랙)로 검찰에 넘겼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4월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MBK와 홈플러스가 사전에 신용등급 하락을 인지했고, 상당 기간 전부터 기업 회생 신청을 계획한 점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전단채 투자자들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58세 직장인 강현숙 씨(가명)는 평생 모은 2억 원을 홈플러스 전단채 상품에 투자했다. 증권사 직원의 설명을 믿고 가입했지만, 이후 관련 뉴스 보도를 통해 자신이 투자한 상품이 유동화 전단채임을 알게 됐다. 강 씨는 “35년 동안 옷값, 식비, 교통비까지 절약하며 모은 돈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큰딸 결혼자금과 둘째 딸 전세보증금 마련을 위한 소중한 돈이었다”며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고 절망감을 드러냈다.
한미영 씨(가명)는 아들이 결혼자금으로 맡긴 3억 원을 홈플러스 전단채에 투자했다. 시중은행 이자보다 1~1.5% 높고, 대기업이 발행해 안전하다는 증권사 직원의 설명을 믿었다. 한 씨는 “증권사 직원은 홈플러스가 가진 부동산도 많아서 절대로 망할 리가 없는 회사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용평가사가 신용등급 강등을 예고한 바로 그 날 홈플러스가 하나증권을 통해 저한테 채권을 판 것이다”라며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가슴이 뛰고 잠도 못 잔다. 아들과의 신뢰가 깨질까 두렵고, 결혼이 무산될까봐 매일이 고통스럽다”고 밝혔다.
현재 변제가 중단된 전단채 규모는 4619억 원이다. 개인 피해자들은 최대 22억 원까지 전단채 투자로 인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의환 홈플러스 비상대책위원회 상황실장은 “홈플러스, 카드사, 증권사 모두 대기업인데 투자자가 당연히 국내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에 대한 신뢰가 있으니까 투자한 것이 아니겠느냐”라며 “지금 부모님 노후 자금 날리고 집 팔고 거리에 나앉게 생긴 사람들도 한두 명이 아니다. 구제조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홈플러스 경영진의 사기 혐의가 인정되면 피해자들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홈플러스 전단채 피해자 전원이 전액 배상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공보이사인 안창현 법무법인 대율 대표변호사는 “형사상 사기 혐의는 홈플러스 법인이 아니라 대표이사나 임원 개인을 대상으로 제기됐을 거다. 유죄가 인정돼도 개인이 수천억 원대 손해를 배상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피해자 구제가 쉽지 않다”라며 “보통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벌일 때 회장을 피고소인으로 넣긴 하지만 사실상 집행임원 정도가 처벌받는다. 주주사의 회장 등이 전단채 발행 같은 개별적인 사안의 결재 라인에 올라가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회생 개시를 기다리고 있지만 홈플러스와 전단채 투자자들 사이에 직접적인 채권채무관계가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법적인 권리가 취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의환 상황실장은 “홈플러스에 대한 직접적인 채권자는 카드사고 투자자들이 홈플러스에 직접 계약한 것은 아니다. 참가 계약을 통해 원리금 상환받을 수 있는 권리만 받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채권자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법원에서는 사실상 투자자를 채권자로 보고 심의하겠다고 했지만 법률적으로 직접채권자가 아니어서 문제가 될 소지가 남아있다”라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이 전단채를 판매한 증권사들과 불완전판매로는 다툴 수 있는 상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불완전판매란 금융상품 판매 과정에서 중요 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허위·과장 정보를 제공해 투자자의 합리적 판단을 방해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자본시장법상 설명의무 위반이나 부당권유행위 금지 위반 등에 해당한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디스커버리펀드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IBK기업은행과 신영증권에 각각 투자자 손실의 최대 80%, 59%를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심준섭 변호사(법무법인 심)는 “전단채 판매 과정에서 증권사가 홈플러스의 재무상황이나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 등 중요 정보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면, 투자자들은 증권사를 상대로 불완전판매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라며 “홈플러스가 전단채와 관련해 100% 변제를 약속했더라도 회생법원의 결정에 따라 변제율이 조정될 수 있기 때문에 확정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불완전판매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는 홈플러스의 회생절차와 별개로 진행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안창현 변호사는 “금융기관들이 홈플러스의 신용도나 재무상황을 몰랐던 건 아니다. 홈플러스가 3년 연속 적자가 예상돼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이 회사의 매출채권을 기초 자산으로 해서 판매 상품을 만들어 투자자들에게 팔았다”라며 “증권사들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