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염 후 택선이는 일단 밝죠. 되게 밝고, 잘 웃고. 제가 영화 안에서 이렇게 웃어본 게 또 얼마만 인가 싶어요. 아주 어릴 때 드라마 찍으면서는 천진한 모습을 많이 보여드렸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쫓고 쫓기는 형사물이나 파이터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며 제 무표정한 모습을 더 많이 보셨을 거예요. 그런데 ‘바이러스’는, 일단 감염 후에 증상이 워낙 기분이 좋다 보니까 많이 웃더라고요. 그런 부분이 진짜 좋았어요. 아주 젊어 보이고(웃음)!”
영화 ‘바이러스’는 걸리면 이유 없이 사랑에 빠지는 치사율 100% 바이러스에 감염된 택선(배두나 분)이 모태 솔로 연구원 수필(손석구 분)과 오랜 동창 연우(장기하 분), 그리고 이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전문가 이균(김윤석 분)과 엮인 예기치 못한 관계 속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독특한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극 중 배두나가 연기한 택선은 기력도, 의욕도, 연애 세포마저도 바닥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번역가로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우중충한 회색빛 일색 일상이 순식간에 핑크빛으로 물들게 된다.
“관객분들이 보시기에 감염 후 택선이 극적으로 달라졌다고 느껴지게 만들려면 초반의 택선은 어둡고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마 굉장히 많은 현대인들도 택선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어릴 땐 꿈도 희망도 참 많았는데 그게 점점 깎이면서 무뎌지는 거죠. 사람은 설레지 않으면 시니컬해 지거든요. 반대로 감염 후엔 모든 사람들이 굉장한 호감을 주고 있고, 다정하다는 설정을 했어요. 택선이도 ‘사람들이 내게 따뜻하게 대해주니까 나도 그렇게 해줘야지, 나를 좋아해주니까 나도 좋아해줘야지’라며 상호작용하는 것을 생각하며 연기했죠. 치사율만 아니면 참 좋은,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바이러스 아닌가요(웃음)?”

“조선시대에 좀비가 등장해서 쫓고 쫓기는 연기를 하다 만난 작품이었죠(웃음).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단 생각을 할 때쯤이었는데, 마침 제게 들어온 거예요. 거기다 아무래도 가장 큰 매력 포인트면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역시 김윤석 선배님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선배님과 제가 ‘로코’를 찍는다는 것만으로도 웃기잖아요(웃음). 사실 저는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적대적으로 만나는 것보단 이렇게 로코로 만나는 게 훨씬 나으니까요. 이제는 많이 친해졌으니까 다음엔 적으로도 한 번 만나 뵙고 싶네요(웃음).”
‘바이러스’에서 배두나는 택선의 사랑스러움이 극대화 될 수 있었던 덴 김윤석을 비롯해 손석구, 장기하 등 남자 배우들의 덕이 컸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제가 남자 복이 되게 많은 것 같다”며 크게 웃음을 터뜨린 그는 비단 이번 작품뿐이 아닌, 자신이 연기한 대부분의 작품에서 ‘멜로’의 이미지를 늘 간직한 채였다고 덧붙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 잭 스나이더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레벨 문’과 워쇼스키 자매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센스8’, 그리고 tvN ‘비밀의 숲’,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에 이르기까지 ‘대작 속 얼굴’로 최근까지 기억돼 온 배두나다. 그러나 이번 ‘바이러스’가 그렇듯 대중성보단 독특함에 중점을 둔 작품이거나, 소규모 예산의 작고 잔잔한 작품에서도 배두나를 찾아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명감독의 뮤즈’부터 ‘할리우드의 스타’가 된 이후에도 작은 작품들에 마음이 가는 것은 어떤 이유에설까.
“그냥 제가 좋아서 찍는 거예요. 오랜 시간 연기를 해왔기에 경력이 쌓여서 이제는 작품들을 고를 수도 있지만, 이건 제 마음이잖아요. 그래서 정말 제 마음대로 골라요. 내가 하고 싶은 것으로! 그게 가끔 ‘배두나가 저런 작품을?’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 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도희야’를 읽고도 5분도 안 걸려서 ‘이거 꼭 하고 싶다’고 그랬고, ‘다음 소희’도 마찬가지였어요. 예산이 적을지언정 작은 작품이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많은 관객들에게, 만인에게 연인일 수 없는 작품인 건 맞지만 내겐 연인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찍는 거죠.”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