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 |
18대 대선이 끝나자마자 정계에서는 인수위원회 인사 내정을 두고 하마평이 쏟아지고 있다. 몇몇 인물들은 자의반 타의반 직접 실명까지 거론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에 부담을 느꼈는지, 지난 12월 20일 박선규 중앙선대위 대변인을 통해 “인수위 인선과 관련해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은 없다. 언론에서는 가볍게 쓰는 한 사람의 이름 한 줄이 기사가 될지라도 당사자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추측해서 미리 이름을 거명함으로써 당사자들이 곤혹스럽게 되는 일들은 없었으면 좋겠다”며 인수위 인사 하마평에 대한 자제를 부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수위가 차기 정부의 ‘밑그림’을 보여주는 예비 조직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세간의 관심과 거기서 비롯된 하마평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근혜 당선인이 선거 이전부터 인수위 인선을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 캠프 인사는 “박 당선인이 이미 대선 3주 전부터 한 측근에게 인수위 인선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하달했다는 얘기가 있다. 심지어 서울 강남 R 호텔에 인선 작업을 하는 집무실이 마련됐다는 얘기도 있다. 그 가이드라인에는 50대 남성으로 호남 출신 교수여야 한다는 구체적인 조건이 제시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인물 중에서 박 당선인의 국정운영에 대해 이해하는 적임자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어떤 인선 카드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 왼쪽부터 김종인 위원장, 김광두 단장, 안대희 위원장 |
하지만 이에 대해 한 새누리당 당직자는 “아직까지 인수위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입장이 아니다”면서도 “만약 당내 측근 인사 중 인수위원장직을 맡긴다면 두 사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을 섣불리 자리에 앉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실무’와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강점은 있지만 ‘통합’과 ‘쇄신’이라는 측면에서는 맞지 않다. 이들이 인수위 인선에 포함되더라도 부위원장직이나 기획조정분과 등 각 분과위원회에서 실질적인 키를 조정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밖 인선을 고려해 본다면 박 당선인이 후보 시절 줄곧 강조해온 ‘경제민주화와 민생’ ‘쇄신’ ‘통합’의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경제민주화 측면으로만 볼 때는 박 당선인의 양대 경제 브레인으로 통하는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과 김광두 힘찬경제추진단장이 우선 꼽힌다.
김 위원장은 박 당선인의 핵심 정책 기조인 ‘경제민주화’의 기틀을 마련한 인사다. 한때 ‘대기업 집단법’을 두고 박 당선인과 갈등을 빚었지만 2차 TV토론을 앞두고 당무에 전격 복귀하면서 박 당선인에 힘을 보탰다. 김 위원장이 갖고 있는 상징성을 고려한다면 유력한 카드 중 하나다. 김 위원장과 함께 거론되는 김광두 단장은 박 당선인의 핵심 경제 공약인 ‘줄·푸·세’ 정책을 고안해낸 주인공으로 박 당선인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의 수장을 맡고 있다. 김 단장은 오랫동안 박 당선인의 경제 분야 스승으로 통했으며 서강대 동문이기도 하다. 박 당선인과의 거리감과 스킨십 측면에서 본다면 김 위원장보다 월등히 앞선다는 평가다.
정치 쇄신의 측면을 고려해 인선을 한다면 법조계 출신의 안대희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과 학계의 송호근 서울대 교수, 시민사회계의 박상증 전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이 꼽힌다.
▲ 왼쪽부터 송호근 교수, 박상증 전 대표, 진념 전 부총리, 박준영 도지사 |
‘쇄신’과 ‘통합’의 기조를 강조하기 위해 좀 더 급진적인 인선 카드를 꼽는다면 박상증 전 대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동안 정계와 한 발자국 떨어져 있었다는 점에서 참신하다는 평과 함께, 그의 진보적 성향 상, 여야 가교 역할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평가다. 박 전 대표 역시 앞서의 송 교수와 함께 한때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고려됐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외부에서는 박 전 대표가 진보 성향의 인사라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박 당선인과 소통하기가 어렵고 인수위 업무를 이끌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연륜만큼이나 시민사회계에서도 누구든 아우를 수 있는 포용력 있는 인사로 통한다. 만약 인수위를 이끈다면 무리 없이 일을 수행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통합’이라는 측면을 고려하여 호남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 박 당선인 스스로 후보 시절, 줄곧 호남 인사에 대한 탕평책을 약속했기 때문에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는 카드다. 가장 가능성이 있는 호남 인사로는 진념 전 재정경제부총리가 꼽힌다.
박 당선인은 캠프 초기부터 그를 국민행복추진위 산하 국민대타협위원회 위원장으로 영입하기 위해 끝까지 공을 들이다 본인의 고사로 포기한 바 있다. DJ정부 시절 재정경제부총리를 역임한 진 전 부총리는 호남인사라는 점 외에도 경제 분야 전문가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이 밖에도 호남 야권 인사 중 중도보수 계열에 속하는 박준영 전남도지사가 물망에 오르고 있다. 박 도지사는 야당 내에서 유일하게 여당의 4대강 사업에 공감을 표하고 찬성을 할 만큼 자기만의 목소리를 냈던 인물이다. 이 두 인사는 인수위원장 외에도 ‘호남총리론’ 물망에도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앞서 한 당직자가 강조했듯, 실질적으로 인수위를 이끄는 것은 위원장직 아래 분과 위원을 비롯한 실무진들일 것이다. 인수위 분과는 매 정부마다 달라졌다. 기본적으로 ▲정무 ▲외교통일안보 ▲법무행정 ▲경제1,2 ▲사회문화여성 분과는 공통적으로 자리 잡지만 MB 인수위에서 실질적으로 사안을 조정했던 ‘기획조정분과’나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와 같은 독창적인 추가분과가 인수위에 포함될 수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건물도 변했지만 옛주인도 ‘훌쩍’ 성장
박 당선인이 청와대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1965년 성심여중 2학년 시절이었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취임하고서도 박 당선인은 육영수 여사의 뜻에 따라 신당동 자택과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그러다 1965년 모교 기숙사가 없어지는 바람에 청와대에 들어가 생활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박 당선인은 1979년 청와대를 나올 때까지 14년간 청와대에서 생활했다. 10대와 20대 시절을 꼬박 청와대에서 보낸 셈이다. 이 때문에 박 당선인에게 청와대는 부모님 두 분이 돌아가신 안타까운 기억도 남아 있지만 성장기 때의 아련한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장소일 것이다.
하지만 박 당선인이 과거에 살던 청와대와 비교해볼 때 지금의 청와대는 많이 변했다. 그가 청와대에 머무를 당시에는 지금은 철거된 ‘구 본관’에서 생활했다. 주로 ‘경무대’로 불리던 당시 구 본관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무를 보던 대통령 집무실과 평소 대통령과 가족이 생활하는 주거 공간이 1~2층으로 붙어 있었다고 한다. 현재 공개되고 있는 박 당선인의 청와대 생활 시절 사진에 나오는 관저는 바로 구 본관 2층이다. 이 건물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까지 이용돼 오다가 지난 1993년 11월 철거됐다. 이곳은 현재 수궁터(경복궁을 지키던 수궁들이 있었다 하여 역사를 기록한 표석을 세우고 수궁터라 부 르게 되었다고 함)로 조성됐다.
박 당선인은 내년 2월 청와대에 입성하게 되면 1990년 10월 신축된 현재의 대통령 관저에서 살게 된다. 현재의 관저는 노태우 대통령 재임 당시, 대통령과 가족이 생활하는 사적 공간과 공적 집무 공간이 함께 있던 구 본관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지어졌다. 구 본관 시절에는 워낙 비좁은 규모 탓에 외빈들을 맞기에 불편함이 상당했다고 한다.
현재의 본관 역시 박 당선인이 청와대에 있었을 당시에는 없던 건물이다. 현재의 본관 건물은 관저와 함께 1991년 9월에 신축됐다. 30만 장의 전통 청기와가 정성스레 얹어진 청와대의 상징 건물이다. 박 당선인의 집무실은 이 곳 본관 2층에 마련돼 있다. 앞으로 박 당선인이 5년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일 것이다. 원래 본관 1층에는 영부인의 집무실이 마련돼 있는데, 독신인 박 당선인이 입성함에 따라 기존의 영부인 집무실은 5년간 용도가 변경될 것으로 보인다. 본관에는 이밖에도 고위급 참모 회의가 열리는 집현실, 외국 정상 회담 장소인 충무실, 리셉션 만찬장, 소규모 식당 등이 마련돼 있다. 박 당선인은 청와대로 들어가더라도 과거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집무하던 곳이 아니라 신축한 곳에서 근무하게 되는 셈이다.
청와대가 꽤 많이 변했지만, 박 당선인의 예전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도 꽤 있다. 가장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녹지원이다. 청와대 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꼽히는 녹지원은 박 당선인이 청와대에 들어오고 3년 후인 1968년 잔디를 깔면서 지금 같은 외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은 박 당선인의 청와대 생활 시절부터 어린이날 행사 등 각종 주요 행사와 대형 야외 만찬장으로 사용됐던 곳이다. 잔디가 깔린 ‘정원’ 같은 곳이라 박 당선인이 어릴 때 많이 뛰어놀았던 곳일 수도 있다. 주로 대규모 회의나 외국 국빈들을 위한 공식 행사장으로 쓰이는 현재의 영빈관은 1978년에 지은 건물이다. 당시는 박 당선인이 공식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하던 거의 마지막 무렵으로 영빈관에서 많은 외국 국빈들을 상대했다. 33년 전 정든 집을 떠났던 박근혜 당선인이 다시 옛집을 찾으면서는 어떤 생각이 들까.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