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19일 밤 당선이 확실시되자 박근혜 당선자가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축하공연 무대에 올라 유권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은 이전 대통령 후보들과 달리 소요 재원이나 재원조달 방법을 좀 더 자세하게 담고 있다. 복지 확대에 따른 재정건전성 우려가 높다보니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밑그림을 그린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 수행을 위해서는 향후 임기 5년간 총 131조 4000억 원의 예산이 소요될 예정이다. 연평균 26조 3000억 원이 들어갈 것이라는 게 박근혜 당선인 측의 설명이다. 정부에서 내놓은 2013년도 우리나라 총 예산 규모가 342조 5000억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요 예산이 7.7% 정도 더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박근혜 당선인 공약집에 따르면 20대 분야 중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경제민주화에는 소요되는 예산이 거의 없을 예정이다. 경제민주화는 재벌 총수 일가의 불법 및 사익 편취행위를 막고,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며, 공정거래법 집행 체계를 손보는 등 관련 법률만 정비하면 되기 때문이다. 반면 ‘편안한 삶’과 ‘행복한 여성’, ‘행복 교육’ 분야에는 각각 10조∼20조 원의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
‘편안한 삶’ 분야는 구체적으로 기초생활보장에서 제외된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빈곤 예방을 강화하는 데 중점이 맞춰져 있다. 또 근로빈곤층 중 무자녀 중고령층과 청년층에 대한 근로장려세제 적용, 4대 중증질환(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성질환) 총 진료비의 건강보험 급여 추진 등이 주요 내용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이를 위해 5년간 총 28조 3000억 원의 예산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행복한 여성’ 분야는 저소득층 가구 12개월 영아까지 조제분유 및 기저귀 지원, 만 12세 이하 아동 필수예방 접종비 무상 지원, 고위험 임산부 경비 지원, 여성 임신 근로자 일일근로시간 단축 및 임금 삭감 금지, 저소득층 가구의 근로 및 출산 장려를 위한 환급형 세액 공제 제도 운용 등이 주요 공약이다. 여기엔 5년 임기 동안 22조 5000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행복 교육’ 분야의 구체적인 공약은 초등학교 온종일 돌봄학교 도입(2014년 1·2학년, 2015년 3·4학년, 2016년 5·6학년),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 무상화, 소득하위 80%까지 소득연계 맞춤형 반값 등록금 지원 등이다. 행복 교육 분야에 투입되는 예산은 향후 5년간 18조 8000억 원이다.
이밖에 문화예술체육시설에 장애인 특별프로그램 운영 등 ‘문화가 있는 삶’과 노후 원전 안전정책 추진 등 ‘지속가능 국가’, 통신요금 인하 등 ‘창의산업’, 경찰병력 2만 명 이상 증원 등 ‘안전한 사회’ 분야에는 각각 2조 7000억 원, 2조 3000억 원, 2조 1000억 원, 2조 1000억 원의 예산을 쓴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박근혜 당선인의 재원소요안은 그러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안별로 필요예산을 밝히 않고 ‘편안한 삶(28조 3000억 원)’, ‘행복한 여성(22조 5000억)’처럼 모호한 분류와 대략적인 소요 금액만 내놓은 탓이다. 과거 사안별로 내놓은 공약을 정리해서 합치다보니 소요액 계산도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모호한 액수와 두루뭉술한 공약 탓에 대선 과정에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16일 TV토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박근혜 당선인에게 “4대 중증질환 보장액 소요액으로 연간 1조 5000억 원이 든다고 했는데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니 지난해 4대 중증질환 환자 중 암 환자 부담비용만 1조 5000억 원이고, 나머지 환자를 모두 합하면 3조 6000억 원에 달한다. 1조 5000억 원으로 4대 질환 해결이 어떻게 가능한가”라고 따진 게 대표적이다.
이에 박근혜 당선인은 “가능하다”면서도 “(1조 5000억 원이) 암 질환만 가지고 나온 통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질문과 맞지 않는 답을 해 논란이 일었다. 박근혜 당선인 측은 현재 75% 수준인 4대 중증질환 보장률을 100%(2016년 목표)로 높이기 위해서는 총 6조 원이 필요하며, 따라서 연간 소요액은 1조 5000억 원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애매모호함은 재원조달 방법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박근혜 당선인 측은 예산절감 등을 통해 5년간 총 134조 5000억 원(연평균 27조 원)의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분야별로는 예산 절감 및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총 71조 원, 세제개편으로 48조 원, 복지행정 개혁으로 10조 5000억 원, 기타 재정수입으로 5조 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안도 구체적이지 않고,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 어느 정부나 들어설 때마다 예산 절감과 세출 구조조정을 내세웠으나 실제 성과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올해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세출 구조조정으로 만들어낸 돈은 2조 원 정도에 그쳤다. 증세 없이 지하경제 양성화 등 세제 개편만으로 48조 원을 마련한다는 것도 비현실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예산 절감이나 세출 구조조정, 세제 개편 등으로 연간 27조 원을 마련할 수 있다면 어느 정부가 그렇게 하지 못했겠느냐. 또 복지를 늘린다면서 복지행정 개혁으로 10조 5000억 원을 마련하겠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면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꾸려지면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2월 25일까지 전체 공약에 대한 리뷰가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선 공약 중 모순된 부문들이 정리되고, 구체적인 소요 예산과 재원 마련 방안이 다시 논의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