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윤철 회장의 사퇴 배경에는 회원 간 계층 갈등이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 전 회장. 일요신문 DB |
감사원장 출신 거물급 협회 회장이 한 달 만에 ‘일개’ 회원의 가처분 소송 제기에 축출(?)된 속사정에는 정회원, 준회원 간의 치열한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KPGA의 총 회원 수는 6100여 명으로 그중에서 정회원 1130명, 준회원 4940명으로 구성됐다. 각각 2차, 1차 골프 테스트를 통과한 이들이다.
준회원의 경우 1차 테스트만 통과하면 되는데 이 관문 역시 만만찮다는 게 골프계의 통설이다. 일례로 개그맨 김국진이 7년째 1차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일화는 유명하다. 준회원은 ‘세미프로’와 ‘티칭프로’로 나뉘는데 세계유명 프로골퍼 최경주, 양용은이 준회원 ‘티칭프로’에게 골프를 배운 바 있다.
이를 두고 한 티칭프로 조 아무개 씨(40)는 “1, 2차 테스트를 통해 정회원, 준회원으로 나뉘는 시스템은 세계 골프 업계에서 한국만이 유일하다. 2차 테스트를 통과한 정회원은 ‘귀족’이고 1차 테스트만 통과한 준회원은 ‘노비’나 다름없다”며 “KPGA 내부 잡음은 정회원들의 기득권 유지 때문에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반영하듯 전윤철 전 회장의 사퇴 과정을 둘러싼 비화도 무성하다. 전 전 회장이 취임 당시 ‘정회원과 준회원 간의 차별 없는 화합을 이루겠다’고 발언한 것이 정회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것. 때문에 한 정회원이 ‘총대를 메고’ 거물급 인사를 상대로 직무집행 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는 의혹이 나돌았다.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전 전 회장이 업무집행 정지 처분을 받은 것은 법적으로 타당한 결과였다. 그러나 KPGA 내부 일각에선 ‘원칙적으로는 할 말 없지만 그래도 억울한 일’이라는 반응도 만만찮았다. 왜냐하면 제12대 KPGA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선출됐을 때도 전 전 회장과 같은 방식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전윤철 전 감사원장은 2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었다. 평소 골프에 애정이 있었던 차에 회장직으로 와달라는 KPGA 측 읍소를 여러 차례 받고 고민 끝에 승낙했는데…”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김 씨는 “세미프로라는 자격을 어렵게 획득해서 지난 10년 동안 정회원과 마찬가지로 협회에 회비를 내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협회 정관에서는 세미프로골퍼를 ‘골프지망생’으로 적시해놓고 있었다. 1차 통과가 어려운 만큼 프로골퍼로서 자부심이 있었는데 협회 측 재정확보를 위해 ‘영양분’으로 이용당해왔던 것이 이번에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현재 KPGA 준회원은 회장 선출권 등 아무런 권리와 혜택 없이 정회원과 비슷한 수준의 회비를 월마다 지출해야 한다. 확인 결과 KPGA 협회 재정 기여에 있어서도 준회원이 2011년 기준으로 약 75.47%에 달하는 회비를 충당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으면서 ‘골프지망생’이라는 격하된 명칭이 적용돼왔다는 사실이 이번에 밝혀지면서 그간 최경주 등 스타급 프로들을 길러냈던 세미프로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 김 씨는 “세미프로들이 억울한 대접을 받는 것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KPGA의 저변 확대에 기여할 수 있는 외부 출신 회장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밀어내는 일부 정회원들의 수작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골프스타 양용은 역시 20일 통화에서 “한국프로골프의 성장을 위해 골퍼 출신보다는 외부 출신 회장이 필요한 시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은 유감”이라면서 “현재 준회원 측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의혹이 사실인지 알 수는 없으나 회원 간 계층 갈등을 접어두고 한국 골프를 위해 가장 필요한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봤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한편 협회 내부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골프인들의 비난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골프협회 집행부 측 관계자는 “정회원 측이 기득권 유지를 위한 ‘편 가르기’에 나선다는 주장은 지나친 억측”이라면서 “현재 준회원 측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과 관련, 정관을 변경하는 데 법칙상 어려움이 따르지만 수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박삼구 전 회장과 전윤철 전 회장의 선출 과정을 두고 벌어진 엇갈린 반응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전 회장님의 선출방식이 정관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업무집행정지를 당한 게 맞는데, 박 회장 때는 왜 그냥 넘어갔는지 모르겠다”며 구체적인 답을 피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