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한해 동안 팀을 떠난 감독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유상철 이흥실 신태용 윤성효 정해성 허정무. |
다사다난했던 2012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포항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PO)를 시작으로 힘찬 걸음을 내딛은 K리그는 울산이 출전했던 일본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을 끝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유난히 많은 경기들을 치렀던 만큼 사연들도 각양각색이었다. 프로축구 출범 30년 만에 시행을 앞둔 2부 리그를 향한 진통, 감독과 선수들의 마찰, 감독 및 단장들의 암투, 이들의 사임과 퇴진을 둘러싼 일련의 소란들까지 역시 뜨거웠다. 그리고 2013시즌을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일들이 많다.
올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 <일요신문>은 감독들의 거취를 중심으로 소위 ‘핫(Hot)’ 한 사연들을 짚어봤다.
# 떠나느냐 남느냐
역시 핵심 키워드는 성적이었다. 팀당 30경기씩 치른 뒤 순위에 따라 그룹A(1~8위)와 그룹B(9~16위)로 갈려 2차 리그를 진행하면서 사령탑들과 구단들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2부 리그 추락은 긴축재정과 팀 관계자들의 거취가 걸린, 곧 절망을 의미했기에 최종전(44라운드) 한 경기 전에야 마지막 순위가 갈렸다.
이런 현실에서 재임기간이 명기된 계약서는 사실상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었다. 재정이 비교적 안정적인 기업 구단들도, 엉성한 행정과 늘 부족한 자금에 어려움을 겪는 도시민구단들까지 모두 성적에 인사고과를 매기다보니 시즌이 끝나자마자 진통이 이어졌다.
수없이 많은 감독들이 옷을 벗었다. 시즌 중에는 2010남아공월드컵 16강 진출 위업을 일궈냈던 허정무 전 인천 감독과 수석코치 신분으로 그를 보좌했다가 전남에서 또 다른 출발을 했던 정해성 전 감독이 일찌감치 팀을 떠났다. 허 전 감독은 4월, 정 전 감독은 8월 각각 김봉길 감독과 하석주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겨줬다. 두 감독의 사퇴가 이어진 중간인 7월에는 강원이 김상호 전 감독 대신 김학범 감독으로 수장을 교체했다. 역시 11월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대구를 성공적으로 이끈 브라질 출신 모아시르 감독이 떠나고 당성증 감독이 왔고, 대전 유상철 감독은 김인완 감독으로 바뀌었다. 광주는 최만희 감독이 물러나고 그 자리를 여범규 감독이 채웠다. 심지어 K리그 2위의 성과를 냈던 전북의 이흥실 감독대행이 떠나는 일도 발생했다. 감독 교체설이 무성했던 수원도 윤성효 감독이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나고 서정원 감독이 3년 계약을 맺고 지휘봉을 잡았다. 성남도 신태용 감독이 ‘전임’이란 꼬리표를 달자 부산을 이끌어온 안익수 감독이 왔다.
특히 흥미로운 건 전임 감독들을 모셨던 수석코치들이 마치 정해진 수순인 s양, 새로 부임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내부 승격과 외부 영입이 동시에 있다. 한데, 완전히 새 얼굴로 채우는 감독 인선은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한층 더 젊어졌다. 40대가 주를 이뤘다. 축구계 일각에서는 ‘조로(早老)’ 현상이라며 많은 우려를 표명하지만 요즘 트렌드가 지도자와 선수들 간의 유기적인 융화인데다 내년 시즌은 최초 약속에 따라 최대 2.5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될 수도 있기 때문에 선수단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정을 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마찰 또 마찰
물론 이 과정에서 해괴한 일들도 많이 벌어졌다. 사실 사(단)장들과 감독들의 갈등은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광주에서 벌어진 사태다. 광주 박병모 단장과 최만희 전 감독의 마찰은 작년부터 조금씩 불거져 나왔지만 본격적으로 외부로 터진 건 광주가 2부 리그 강등을 앞둔 직전이었다. 최 전 감독이 성남 원정에서 짜릿한 4-3 대역전극을 이룬 뒤 박 단장을 향해 “구단 수장인 단장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선수들이 뛰는 경기를 끝까지 보지 않을 수 있느냐”고 공세를 퍼부은 것. 사실 박 단장은 이날 경기를 끝까지 지켜봤지만 축구에 대한 그의 열정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은 축구계와 축구 팬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박 단장은 “오해가 있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이 오해를 풀기 위한 노력은 전혀 기울이지 않아 맹렬한 질타를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그는 한 언론과도 법적 투쟁을 벌이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진행하고 있어 시선이 곱지 않다.
강원의 김학범 감독은 도지사를 향해 “관심을 보여 달라”며 직격탄을 날려 화제를 낳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할 말’은 분명하게 해왔던 김 감독의 이러한 행동을 놓고 최 전 감독과 함께 긍정적인 기류가 형성됐다.
이에 반해 자신의 팀에 대한 애정이 지나쳐서 부른 화도 있다. 신태용 감독도 표면적으론 자진 사퇴 형식을 띠었지만 거의 한 평생을 성남에 바친 박규남 사장과 마찰 끝에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돈을 직접 풀어야 하는 선수 수급이야 양해해줄 수 있지만 선수 기용 등 감독의 고유권한까지 침범한 박 단장의 지나친 간섭과 빈번했던 라커룸 출입 등은 오래 전부터 문제점으로 제기돼 왔다. 신 감독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좀 더 공부를 하고 이전보다 발전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뼛속까지 성남 맨’이라는 인식이 뚜렷한 그가 어떻게 어떤 형태로 축구계에 컴백할지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진다.
# 감독들은 빙글빙글?
K리그 스토브리그를 달구는 감독 관련 사안들은 또 있다. 일명 ‘빼오기’ 작전이다. 성남은 신 전 감독을 내치자마자 거의 동시에 부산의 안익수 감독을 데려왔다. 부산은 안 감독의 성남행 루머가 돌자 강하게 반발했으나 실상은 ‘모션’일 뿐이었다. “안 감독을 성남에 보내주겠다”는 양 구단 간 최종 합의가 사(단)장들의 클럽월드컵 관전을 겸한 2박3일(12월 8~10일) 간의 일본 출장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졌을 뿐, 안 감독이 성남으로 떠난다는 얘기는 오래 전부터 들려왔다.
▲ 서정원 감독(왼쪽)이 수원 삼성의 제4대 감독으로 취임했다. 사진제공=수원 삼성 |
더욱 재미있는 건 수원에 새롭게 부임한 서정원 감독 역시 비슷한 시점에 부산행 루머가 돌았다는 사실이다. 수원이 윤 전 감독의 거취를 놓고 계속 뜸을 들이던 시점이었는데, 이미 구단 안팎에서는 윤 전 감독과 서 감독이 함께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도출한 상황이었다. 결국 누군가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 그런 상황에서 서 감독이 부산으로 가고 안 감독이 성남으로 가는 일종의 ‘돌려 막기’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분명 존재했다.
물론 이는 수원이 올해 런던올림픽이 끝난 이후 계속 소문이 나왔던 홍명보 감독이나 외국인까지 두루 포함한 다른 사령탑을 찾는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서 감독도 “(내가 부산으로 갈 수 있다는)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부산 안병모 단장 역시 “한때 고려했던 건 맞다”며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만 실제 접촉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결과론이지만 부산은 올해까지 서 감독을 수석코치로 데리고 있으면서 수원을 이끈 윤 감독을 전격 영입, 코칭스태프 사제 간의 대결이라는 흥미진진한 상황이 연출됐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