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8일 극장업계 2위인 ‘롯데시네마(롯데컬처웍스)’와 3위인 ‘메가박스(메가박스중앙)’가 합병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양사는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향후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 등을 거쳐 합작법인을 공동 경영할 방침이다. 현재 롯데쇼핑이 롯데시네마의 지분 86.37%를, 중앙그룹의 콘텐트리중앙이 메가박스의 지분 95.95%를 보유하고 있다.
극장업계에서 2·3위 사업자가 합병하게 되면 현재 시장점유율 1위인 CGV(CJ CGV)가 2위로 밀려난다. 스크린 수는 CGV가 1346개, 롯데시네마 915개, 메가박스 767개다.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의 스크린 수를 합하면 1682개가 된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합병 계획은 나오고 있지 않다. 일각에서는 합병 시 존속법인이나 최대주주는 2위 사업자인 롯데시네마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번 합병 논의는 영화산업의 장기 침체에서 비롯됐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19년 한국영화산업 결산 발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전까지 한국은 국민 1인당 연평균 영화 관람 횟수가 4.37회로 세계 1위였다. ‘천만영화’도 속속 등장했다. 이 기간 호황을 누리던 극장사들은 지방 중소도시까지 멀티플렉스를 늘리면서 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데 팬데믹 기간 사회적 거리두기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활성화가 이어지면서 극장가는 직격탄을 맞았다. 이에 대응해 티켓 가격을 올렸으나 팬데믹 종료 후 고물가가 지속되고 영상 콘텐츠 소비 패턴도 변하면서 극장가는 장기 침체를 겪고 있다. 연평균 영화관람 횟수도 2.4회로 줄었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은 “우리나라 영화산업은 제작, 배급, 상영의 3분할 구조인데 배급과 상영 부문이 사실상 붕괴된 상태다. 지방 중소도시는 인구 감소까지 맞물려 주 시청층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어 영화사들이 마구 확장한 상영관들이 애물단지가 됐다”라고 진단했다.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 모두 국내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한 탓에 합병을 통한 효율화 외에는 뚜렷한 돌파구를 찾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CGV의 경우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국, 튀르키예 등 해외법인을 통해 일정 부분 리스크를 분산하고 이익을 방어한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롯데시네마는 베트남에만 해외법인이 있으며 메가박스는 해외 사업이 전무하다. 롯데시네마는 베트남 영화관 매출 급증에 힘입어 지난해 3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업계에서는 별도로 공개되지 않은 국내 사업에서 상당한 적자를 내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5년째 적자를 기록 중인 메가박스는 2024년까지 1754억 원의 누적 적자를 냈다.
이종관 위원은 “더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서 합병카드를 꺼낸 것이다. 롯데시네마만 해도 극장 3사 중 처음으로 올해 3월 상영관 일부를 공연장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할 정도로 쉽지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라며 “대형화를 위한 합병이 아니라 위축기의 구조 개편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시장이 위축되거나 위기가 찾아오면 수익성이 떨어진 사업자들이 시장에서 퇴출되는데 전형적으로 전체 사업자 수가 줄어드는 구조 개편의 흐름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문행 수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규모 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지만 인수 대상이 많지 않은 시장 상황에서는 나쁘지 않은 전략으로 보인다. 이번 시도가 전형적인 사양산업의 엑시트 전략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지속가능성을 위한 재도약의 계기가 될 수도 있어 결과를 지켜볼 만하다”라고 말했다.

양사는 합병을 통해 양사가 보유한 운영 노하우, 마케팅 역량 등을 통합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한편 중복된 투자나 비용을 줄여 수익성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합병과 더불어 적극적인 신규 투자유치를 통해 재무건전성을 높이고 확보된 재원을 통해 OTT와 차별화된 특별관을 확대하겠다고도 밝혔다. 각 사에서 확보한 IP(지식재산권)와 축적된 제작 노하우를 활용해 양질의 신규 콘텐츠 투자도 강화할 방침이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극장업계 한 관계자는 “점유율을 바탕으로 제작사나 유통사업자 쪽하고 협상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 있는 것 같다. IP투자도 효율화가 가능하다”라며 “최근에는 집에서 모바일을 통해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피로감을 느끼는 관객 분들이 늘어나는 경향도 있는 듯하다. 향후 ‘전지적 독자 시점’ ‘쥬라기월드’ ‘판타스틱 4’ 등이 개봉을 앞두고 있어 여름 성수기 때 극장가를 찾는 분들이 늘어나면 극장 산업도 좀 더 탄력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점포 감축을 통한 효율화 외에는 뚜렷한 방향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디어업계 한 관계자는 “시너지 효과를 어떻게 내서 매출을 제고하겠다는 건지 의문이다. 최근 나오는 영화들은 많이 봐도 100만~300만 명 수준인데 이 상황에서 어떻게 더 투자를 유치하고 차별화를 할 수 있을지 고민이 클 것 같다”라며 “수익성을 담보할 마땅한 방법이 안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미디어업계 다른 관계자 또한 “정확히 뭘 하겠다는 건지는 모르겠다. 시장에 밝힌 다른 미래 전망이나 계획도 없다”라며 “단순히 비용 절감을 위한 합병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각 점포별 고정 비용이 많이 나가기 때문에 상권이 겹치는 영화관을 통폐합함으로써 중복 비용을 개선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극장업계 다른 관계자는 “대형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 달성보다는 비용 절감 목적이 더 큰 합병이 될 것 같다. 이 경우 사실상 점유율 1위로 올라서게 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용희 선문대 경영학과 교수는 “단순한 영화 유통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공연과 콘텐츠를 제공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영상 콘텐츠와 문화적 체험을 결합해 차별화를 시도하는 방법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라며 “무엇보다 관객 대부분이 ‘홀드백(극장 개봉 이후 OTT 등 온라인 공개 전까지의 기간)’이 짧아 OTT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습관이 들어 있다. 극장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늘리고 홀드백 계약을 길게 설정하는 방식 등 새로운 유통 전략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지난 5월 합병을 위한 업무협약 발표 이후 아직 더 진행된 부분은 없다. 합작법인이 어떤 형태로 구성될지도 미정”이라며 “올해는 장르적 다양성을 가진 작품들을 개봉해 침체된 영화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라이브 시네마나 얼터 콘텐츠(공연예술 상영), 특별관 강화 등 극장에서 선보일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관객들에게 다가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메가박스 관계자는 “올해 외부적으로 말씀드릴 만한 구체적인 사업계획은 없다”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