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4일 아침, 세상은 난리였습니다. 부대에 특별한 지시는 없었습니다. 온종일 모두 언론을 보며 망연자실한 상태였습니다. 다들 어제 일(12·3 비상계엄)을 후회했습니다."
국군방첩사령단(방첩사) G 과장은 12·3 비상계엄 일주일 뒤인 2024년 12월 10일 서울중앙지검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털어놓았다. 그는 오래 전 기억부터 더듬고는 여인형 당시 방첩사령관이 부임한 자체가 의아했다고 했다.
G 과장은 "여인형 사령관은 방첩 관련 전문성이 전혀 없는 인물이었다"며 "그 분은 정책 전문가인데, 통상 방첩사령관은 외부 3성 장군 중에 오는 자리였고, 그처럼 내부 인원이 사령관에 부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진술했다.
특히 "여인형은 그때 이름도 처음 들어본 사람이었다"며 "부대 안에서는 '대통령 고등학교 후배라 가능했구나'란 인식이 지배적이었다"고 떠올렸다.
동일한 진술은 더 있었다. 방첩사 또 다른 C 과장은 같은 날 서울중앙지검 조사에서 "대개 방첩사 참모장과 실장급은 내부 출신, 사령관은 외부 출신이 자주 왔었다"며 "그런데 여인형 사령관 부임 때는 전부 내부 출신으로 동시에 채워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새 사령관이 충암고 출신이라 가능했단 시선이 많았다"고 전했다.
두 과장 모두 12월 3일 밤 퇴근 이후 갑자기 소집돼 사무실에 출근했다. 북한 오물풍선 문제가 터진 줄 알았다고 했다. 비상계엄 선포 사실은 TV를 보고서야 알았단다.
하지만 국회 의결로 비상계엄이 해제되기까지 불과 약 2시간 동안 이들의 업무는 꽤 기민하게 진행됐다. C 과장은 국회의 추궁이 뒤따를 상황을 대비해 예상 질의서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비상계엄이 일찍 해제돼 해당 질의서를 상부에 보고하지는 못했다고 진술했다.
G 과장의 경우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우원식 국회의장,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 등이 포함된 '이송 및 구금자 14명 명단'을 상부로부터 건네받았다. 방첩사에 체포 권한은 없으므로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른 채 우선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또 방첩사가 업무협조를 요청할 서울 영등포경찰서 등 경찰 관계자 연락처를 알아내고, 경찰 국가수사본부 측에 실제 인력과 호송차 지원 등을 요청하기도 했다. 방첩사와 경찰이 국회에서 만나도록 주선하는 작업도 도왔다.
G 과장은 이 대목에서 "저희가 처음에는 100명을 요청했고, 경찰은 10명만 지원 가능하다고 응답했었다"며 "그런데 경찰이 국회에 먼저 도착하고 이뤄진 통화에선 경찰 50명이 모여 있다기에 당황스러웠다"고도 진술했다.
결과적으로 방첩사와 경찰 접선은 이뤄지지 못했다. 비상계엄 해제 직후 방첩사는 암담한 분위기였다. C 과장은 "12월 4일 오전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미안하다. 각자 주변정리 잘하라. 생각나는 대로 진술하라'고 지시했다고 들었다"며 "순리대로 '수사에 대비하라'는 뜻으로 이해했다"고 증언했다.
'주변정리 잘하라' '생각나는 대로 진술하라' 지시는 부대에 흡사 형용모순처럼 전달된 듯하다. 증거를 없애 주변을 정리하되, 진술은 솔직히 하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여진 탓이다.
C 과장은 "주변정리란 계엄 관련 자료를 정리하란 뜻으로 인식했다"며 "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까 우려해, PC 자료 삭제는 안 하는 게 좋겠다는 내부 우려도 있었지만, 다들 지우는 분위기여서 많은 직원이 PC 파일을 지웠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도 "아무래도 정말 문제가 생길 듯해서 시간이 좀 지나선 '더는 지우지 말자'는 말들이 오갔고, 다들 어찌해야 할지 몰라 쭈뼛쭈뼛했다"며 "파일 삭제 관련 지시가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경찰 "체포조 얘기 들은 것 같기도?"

남은 의문은 경찰이 스스로 체포조에 투입된다는 사실을 알고 지원했는지, 혹은 방첩사 요청에 따라 단순 인력 파견에만 그쳤는지 여부다. 만약 알고 지원했다면, 내란 주요 종사자 등 혐의로 입건이나 기소될 인원은 더 늘어날 수 있다.
G 과장의 앞선 증언대로라면 방첩사는 체포 권한이 없어 이를 경찰에 맡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시 방첩사 요청으로 국회에 직접 출동한 경찰들은 자신들에 체포 역할이 부여된 줄 몰랐다고 항변했다.
2024년 12월 4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경찰 국가수사본부 L 계장은 방첩사 G 과장과 직접 통화한 인물이다. 그는 "G 과장이 통화에서 '체포명단 받으셨죠?' 물었다"며 "제가 '예?' 반문하자, G 과장이 체포 관련 얘기를 더는 꺼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L 계장의 진술은 조사 내내 오락가락했다. 검사가 '누구를 체포하란 뜻인지 되묻지 않았나' 질의하자, L 계장은 "제가 '예?'하고 물었을 때 G 과장이 '아차'하는 듯한 인상이 들어 저 역시 부담스러워서 더는 질문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L 계장은 그러면서도 "G 과장이 체포명단 얘기를 하기에 누군가 체포하려는구나 추측은 했다"고 말했다. 이에 검사가 '체포명단이란 단어만으로 체포 계획을 생각했단 뜻인지' 묻자, L 계장은 "생각해보니 체포조 얘기도 들은 듯하다"고 말을 바꿨다.
검사는 '아까는 체포명단이란 단어 외에 체포 관련 아무런 얘기를 나눈 적 없다고 하지 않았나'라고 다시 추궁했다. 그러자 L 계장은 "제가 그랬던가요"라며 "체포조라는 말은 들은 것 같다"고 말했다.
L 계장은 그러더니 "아까는 G 과장과 첫 번째나 두 번째 통화 관련된 내용이었다"면서도 "그 이후 통화에선 G 과장이 추가 인력을 부탁했는데, 이때 제가 체포조를 생각한 것 같다"고 뜻을 명확히 이해하기 힘든 대답을 내놓았다.
검사도 답답함을 느낀 듯 '방금은 체포조를 분명히 들었다고 하지 않았나' 다시 캐묻자, L 계장은 "들은 게 맞는 것 같다"고 답변했다.
그의 답변은 수차례 번복이 이어졌다. L 계장은 "윗선인 국장과 과장에 체포조라는 단어는 뺀 채 '방첩사에서 누구를 체포하려는 모양이다'라고 보고했다"며 "과장과 국장 모두 누구를 체포하려는 것인지는 제게 묻지 않았다"고 했다.
검사가 '체포란 게 누굴 체포하냐가 중요한데, 그걸 묻지 않았단 말인지'를 질의하자, L 계장은 돌연 "물어보셨지만 제가 모른다고 했다"고 또 답변을 수정했다.
영등포경찰서 소속으로 방첩사를 도우려고 국회에 직접 출동한 경찰 L 팀장도 2024년 12월 11일 서울중앙지검에 참고인으로 나가 조사를 받았다. 그 역시 본인이 체포조 일원이었단 사실은 몰랐다고 했다. 검사가 '비상계엄이란 특수한 상황에 자기 역할도 몰랐는지'를 묻자, L 팀장은 "방첩사와 직접 만나면 물어보려 했는데, 통화만 이뤄졌던 바람에 확인을 못했다"고 진술했다.

이 밖에도 12·3 비상계엄 전후 군 안팎 어수선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장면들은 여럿이다. 비상계엄 당일 방첩사 모 부서로 전보된 P 실장은 가뜩이나 근무 첫날인데 초유 사태를 맞이해 더 큰 혼란을 겪었다. 공교롭게도 그 역시 충암고 출신이다.
P 실장은 2024년 12월 11일 서울중앙지검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그 역시 퇴근 후 일과를 보내다 급히 부대로 호출됐다.
그의 보직은 참모장 지시를 부대에 전파하는 역할이다. 다만 계엄 당일 P 실장이 전파한 지시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본래 역할은 국회와 소통 등 대관도 포함됐는데, 이는 정작 C 과장이 했고 P 실장 본인은 어떠한 문서도 작성한 게 없다고 했다.
P 실장은 전임자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은 게 일체 없어 계속 우왕좌왕했다. 그러던 중 비상계엄이 해제됐다. 그제야 참모장 지시에 따라 국회 등 현장에 출동한 방첩대원들에 '해산하라'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러자 여인형 당시 방첩사령관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다. 비서실 측이 '당신 부서에서 작전을 중단했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답하자 돌연 격앙된 반응이 되돌아왔다고 한다. 비서실 관계자가 "큰일이다, (여인형) 사령관님이 화나셨다"고 전했다는 것이다. 이에 P 실장은 방첩부대원들에 '일단 대기하라'고 다시 전파했다.
그에 따르면 여인형 당시 사령관은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 후에도 상황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행동했다. 검사가 '구체적으로 어땠는지'를 묻자, P 실장은 "사령관께서 곳곳에 계속 전화를 하셨다"며 "자세한 통화 내용은 못 들었지만, 대체로 작전과 출동 관련 사항이었다"고 답변했다. 또 "몇 시간 지나서야 통화를 멈추더니 연신 담배만 태우셨다"고 증언했다.
P 실장은 12월 4일 이른 새벽 여인형 사령관을 다시 마주했다. 이때 여인형 사령관이 "미안하다, 너도 충암이잖아"라고 말했다고 했다.
P 실장도 계엄 해제 이후 수순은 수사뿐임을 인지했다. 다만 PC 자료 삭제 등이 어떤 경로를 거쳐 이뤄졌는지는 모른다고 진술했다. 그는 "분명 저희 부서에선 아무런 자료도 파기하지 말라고 전파했다"며 "심지어 국방부에서도 같은 명령이 하달됐고, 사령부에서는 과 단위 회의도 하지 말라 명령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12·3 비상계엄에 따른 내란 등 혐의 재판은 크게 세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전직 군 고위직, 조지호 경찰청장 등 전·현직 경찰 관계자들, 기타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 혐의를 살피고 있다.
재판부는 올해 안으로 1심을 마칠 계획이지만 단정 지을 순 없다. 당장 윤 전 대통령이 낸 서류만 7만여 쪽 분량이고, 신청한 핵심 증인만 약 40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