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 지분을 잇달아 매입하고 있어 주목된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금호석유화학(금호석유)이 지난 12월 13일 ‘채권은행공동관리절차(자율협약)’에서 졸업했다. 2009년 12월 30일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통해 경영정상화에 돌입한 지 거의 3년 만이다. 이로써 금호아시아나그룹과의 계열분리 속도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그렇지만 웬일인지 금호석유 측은 여유를 부리고 있다. 한편으로는 박찬구 금호석유 회장 일가가 금호석유 지분을 잇달아 매입하고 있어 주목된다. 금호석유의 계열분리 전망과 박찬구 회장의 지분 매입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박찬구 금호석유 회장이 최근 금호석유 주식을 거침없이 매입하고 있다. 2012년 들어 1월 9일 장내매수를 통해 1500주를 사들이면서 시작한 박 회장의 지분 매입은 2012년 한 해에만 무려 20여 차례에 걸쳐 장내매수로 진행됐다.
기간과 늘린 주식 수는 일정하지 않다. 적게는 500주부터 많게는 5000주까지 기회만 되면 사들였다. 지난 10월 4일 1207주, 10월 8일 1812주 등 한 주 단위로 매입한 경우도 허다하다. ‘돈만 생기면’ 사들였다고 볼 수 있다. 2011년까지 박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금호석유 주식은 198만 1986주로 지분율은 5.92%였다. 1년간 ‘폭풍 매입’ 결과 지난 12월 27일 현재 주식은 203만 964주로 늘어났고 지분율도 6.06%로 증가했다.
박 회장이 지난 1년간 늘린 주식 수는 4만 8978주. 지난 한 해 금호석유 주가가 늘 10만 원 이상이었고 15만 원 이상 오른 적도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박 회장이 지난 한 해 지분 매입에 쏟아 부은 돈은 어림잡아 50억 원이 넘는다. 자금의 출처에 대해 금호석유 측은 “정확히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급여와 배당금 등을 활용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회장뿐 아니라 박 회장의 딸 주형 씨(32)도 지난 12월 20일부터 28일까지 5차례에 걸쳐 금호석유 주식을 장내매수, 1만 6500주(0.05%)를 확보했다. 현재 금호석유가 아닌 다른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박주형 씨가 새삼 금호석유 주식을 사들인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2011년 한때 7만 7668주까지 지분을 늘렸던 고 박정구 회장의 부인이자 박철완 상무의 어머니인 김형일 씨는 2012년 1월 27일부로 보유 주식을 모두 정리해 지금은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 이전까지 단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던 김 씨가 2011년 갑자기 지분을 늘리자 큰 관심을 촉발시킨 바 있다.
재벌기업에서 오너가 지분을 늘리는 목적은 심중팔구 경영권 안정에 있다. 박찬구 회장 일가의 금호석유 지분은 상당히 취약하다. 지난 12월 27일 현재 금호석유 지분을 보면 박찬구 회장이 6.06%, 장남 박준경 상무가 6.52%, 딸 박주형 씨가 0.05%를 보유하고 있다. 박찬구 회장 일가의 지분을 모두 합해도 12.63%밖에 되지 않는다. 고 박정구 회장의 장남 박철완 상무의 지분(9.08%)을 합해도 21.71%에 불과하다.
금호석유의 최대주주는 산업은행(14.05%)이다. 산업은행 지분은 박찬구 회장 일가의 지분을 합한 것보다 많다. 따라서 채권단과 자율협약에서 졸업한 지금, 산업은행 지분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경영권이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박철완 상무 지분도 관심거리다. 박삼구-박찬구 회장의 형제간 다툼이 촉발될 때부터 금호석유 측은 박철완 상무 지분을 우호지분으로 여겨왔지만 100%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박철완 상무는 박찬구 회장의 조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박삼구 회장의 조카이기도 하다.
금호석유 측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를 계열분리해달라고 행정소송을 제기한 이유도 경영권 위협이라는 불안 요인을 완화하기 위해 금호아시아나 측을 압박한 수단이었다. 비록 금호석유 측 뜻대로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계열분리된다 해도 금호석유의 계열분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오히려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계열분리되면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그룹에서 덩치 큰 계열사는 금호석유만 남게 된다. 박삼구 회장은 2011년 11월 금호석유 지분을 모두 매각했고, 2012년 5월에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금호재단)도 금호석유 지분을 모두 팔았다.
현재 상황은 금호석유 측에 유리해 보인다. 채권단과 자율협약에서 졸업했고 계열분리에 걸림돌이었던 박삼구 회장과 금호재단의 금호석유 지분도 정리됐다. 사옥도 서울 광화문에 있는 금호아시아나 본관에서 서울 중구 수표동 시그니쳐타워스로 옮겼다. 업황이 좋았던 덕도 있지만 지난 3년간 경영실적만 보면 박찬구 회장의 경영 능력도 입증됐다.
이제 금호석유가 아시아나 지분만 3% 미만으로 낮추면 금호석유의 계열분리 꿈은 이룰 수 있다. 열쇠는 박찬구 회장이 쥐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제는 금호석유가 여유를 보이고 있다. 금호석유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는 계열분리는 언제든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며 “대법원에 상고한 계열분리 행정소송의 결과가 나온 후 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만약 대법원이 금호석유 측 주장을 받아들여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떨어져 나가고 금호석유마저 아시아나 지분을 매각하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분리된다. 재계 관계자는 “원하던 계열분리도 미룬 채 지분 매입과 행정소송에 신경 쓰는 모습이 형제간 싸움을 계속하는 것으로 비친다면 박찬구 회장에게도 좋을 게 없다”며 “그보다는 산업은행이 지분을 매각할 때 아시아나 지분을 활용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금호석유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의 지분은 금호석유에 우선매수청구권이 있다. 금호석유 측은 “지분을 우선매수할 수 있는 여력이 될지는 그때 가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