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현 회장 사진공동취재단. |
동양그룹은 최근 레미콘과 가전사업을 매각키로 하는 등 대규모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동양그룹 측은 “발표한 것이 아니라 나중에 발표하려 했던 로드맵이 미리 알려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동양이 말한 ‘나중’은 삼척 화력발전소 건설사업자 선정 이후를 말한다.
발표한 것이든 미리 알려진 것이든 동양의 구조조정 계획은 적잖은 충격을 던져주었다. 재무구조 악화에 시달리는 동양이 어떤 형식으로든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이라는 점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동양의 자산은 3조 4874억 원, 자본총액은 3586억 원이다. 그런데 부채가 3조 1288억 원으로 부채비율이 무려 872.5%에 달한다. 한때 그룹의 핵심이었던 동양메이저가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고 동양레저가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현재현 회장과 동양그룹 전체가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재현 회장은 초강수를 던졌다. 2013년 6월까지 2조 원가량의 현금을 마련하겠다며 돈 되는 것은 다 매각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다만 금융, 시멘트, 발전 사업은 예외다.
하지만 재계와 인수·합병(M&A) 시장에서는 동양의 계획과 의지를 곧이곧대로 보지 않고 있다. ‘과연 2조 원을 마련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과 ‘구조조정 계획은 제스처에 불과하다’라는 불신이 적지 않은 것. 동양그룹 관계자는 “제스처에 그칠 것이라면 기간과 대상을 분명히 못 박았겠느냐”면서 “직원들의 동요까지 감수해가며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는 것은 그만큼 의지가 강하다는 증거로 받아들여 달라”고 주문했다. 실제로 구조조정 대상 계열사 직원들은 불안해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양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가장 큰 이유는 속도가 더디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동양은 지난 12월 20일 동양시멘트가 보유하고 있던 선박 9척을 일괄 매각해 350억 원을 마련한 것과 26일 동양레저가 보유하고 있던 경기도 안성의 웨스트파인CC 골프장을 매각해 793억 원을 마련한 것이 전부다.
▲ 계열사인 동양네트웍스에 매각한 경기도 안성의 웨스트파인CC 골프장. |
문제는 골프장 매각 과정에 있었다. 웨스트파인CC는 지난 1년여 동안 매각작업을 펼쳐왔으나 가격이 맞지 않아 진통을 겪다가 결국 계열사인 동양네트웍스에 매각했다. 구조조정을 단행해 현금을 마련하겠다던 동양이 계열사에 매각해 지원을 받은 셈이다. 다시 말해 계열사가 노골적으로 밀어주면서 ‘돌려막기’하고 있다는 것.
재계 관계자는 “구조조정이나 재무구조 개선과 전혀 상관없이 계열사를 도와줬다”며 “일반적으로 구조조정이라고 하면 외부 자금이 들어와야 정상인데 이번 경우는 내부 자금이 위치만 바꿨다”고 평가했다. 동양그룹 관계자는 “터무니없이 싼 가격으로 외부에 팔기보다 감정가로 파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요즘같이 자산가치가 떨어진 때 계열사가 ‘감정가’로 매입한 것은 얹어서 준 것이나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이는 동양이 자산을 다른 곳에 매각할 뜻이 없다는 것으로 비치는 이유가 되고 레미콘사업부 매각 건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고 있다.
▲ 동양그룹이 사업권 확보에 총력을 쏟고 있는 삼척 화력발전소의 조감도. |
동양이 발표한 구조조정 방안 중 현재까지 가장 덩치가 큰 것은 레미콘사업부다. 인지도와 인기 면에서는 단연 가전사업부(동양매직)가 높지만 동양이 희망하는 매각 가격만 놓고 보면 레미콘사업부가 훨씬 매력적이다. 가전사업부의 경우 담보대출 등이 얽혀 있어 순자산가치(자산에서 부채를 뺀 것)는 1800억 원에 그친다. 여기에 경영권과 영업권 등 프리미엄을 얹으면 2500억 원가량 된다는 것. 반면 레미콘사업부는 순자산가치만 3800억 원가량 된다는 것이 동양 측 설명이다.
이 같은 레미콘사업부를 동양이 과연 매각할 생각이 있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이 적지 않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파이어세일(급매)을 해도 팔릴까 말까인데 제 가격을 받겠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말했다. 동양그룹 측은 “건설경기가 최악인 데다 언제 좋아질지도 예측 불가능한 터에 그룹의 모든 사업을 다 끌고 갈 수는 없다”며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싸게 팔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얘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는 쪽에도 해당된다. 동양 측 말마따나 건설 경기가 최악인 데다 전망마저 불투명한 상황에서 과연 제 값을 주고 레미콘사업부를 사갈 기업이 있을지 의문이다. 인수 후보로 유진과 삼표가 거론되고 있지만 이들 기업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유진의 경우 아예 “인수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답할 정도다.
그동안 동양은 재무구조 악화에 시달리면서도 계열사를 통해 그때그때 필요한 자금을 조달받거나 유상증자 등을 통해 자금을 마련했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회사채 발행이다. 그러나 (주)동양의 회사채 발행이 워낙 잦았던 데다 신용등급마저 ‘투기등급’이어서 사실상 더는 회사채를 발행하기가 어렵게 됐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웅진그룹 사태 이후 투자적격 회사채 발행도 힘든 상황”이라며 “하물며 투기등급 회사채 발행은 아무리 수익이 좋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꺼릴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의 재계 관계자는 “그때그때 마련해왔던 자금줄이 막히자 마지막 수단인 구조조정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며 “사실 구조조정이 늦은 감이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동양이 사업자 선정을 앞둔 삼척 화력발전소 건설사업을 따내기 위해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는 뜻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사업자 선정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점수를 받기 위한 ‘제스처’라는 것이다. 동양그룹 관계자는 “삼척 사업과 상관없이 2013년 상반기까지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돌입하는 것”이라며 “외형에 집착하다가 미래를 잃을 수는 없다”며 삼척사업과 관련성을 부인했다. 현재현 회장이 마치 도박처럼 던진 수가 통할지 지켜볼 일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