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수 우체국 금고털이 사건의 범인들이 과거 여수에서 발생했던 비슷한 수법의 미제 사건들에도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
현직 경찰관까지 개입해 충격을 주고 있는 전남 여수 우체국 금고털이 사건의 풀리지 않은 의문점들을 들여다봤다.
전남 여수에서 우체국 금고가 털린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지난 9일 새벽 2시 여수 삼일동 우체국 옆 식당에 숨어 들어가 식당 벽면을 뚫고 우체국의 금고를 산소용접기 등으로 절단해 금고 안 현금 5200여 만 원을 훔쳐 달아났다.
범인은 범행 과정에서 상가 내 CCTV 카메라에 스프레이 래커를 뿌리고 족적을 물로 지우는 등의 치밀한 수법을 보여 경찰 수사는 초반 난관에 봉착했다.
미궁에 빠질 것 같던 사건은 금고에서 범인의 DNA가 발견되면서 실마리를 잡게 됐고 경찰은 추적 끝에 박 아무개 씨(44)를 검거했다. 경찰 조사에서 박 씨는 순순히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
박 씨가 검거된 지 사흘 후 박 씨와 10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여수 삼일파출소 소속 김 아무개 경사(44)가 우체국 금고털이 범행에 가담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범행 발생 일주일 전 김 경사가 우체국을 방문해 휴대전화로 우체국 내부를 촬영한 것이 CCTV에 찍혀있었던 것이다.
김 경사는 “우체국 사진을 찍은 것은 방범예방 활동 차원에서 했다”며 범행 가담 사실을 강하게 부인했다. 박 씨 역시 “단독범행이다”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김 경사가 사건 당시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범행 현장에 갔다가 귀가하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이 추가로 발견됐다. 경찰은 이 영상을 박 씨에게 제시했고 결국 박 씨는 김 경사와의 공모 사실을 시인했다. 김 경사는 지난 25일 밤 10시에 긴급 체포됐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밝혀진 사건의 전말은 시민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박 씨는 “11월 25일 김 경사가 여수 월하동의 내가 운영하는 분식집으로 찾아와 삼일동 우체국 금고를 털자고 먼저 제안했다. 범행 10일 전인 지난달 29일에는 우체국 내부 금고 위치가 담긴 사진을 찍어 나에게 보여주며 금고 터는 방법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범행 당시에 김 경사는 내가 식당 벽을 뚫고 금고를 터는 동안 밖에서 망을 보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박 씨와 김 경사의 범행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 씨는 과거 교통사고 2건과 개인신용정보 침해 1건으로 입건된 적은 있었지만 금고털이나 절도 등의 전과 기록은 없었다. 하지만 박 씨는 여수 우체국 금고털이 사건에서 초범답지 않은 치밀한 범행 수법과 증거 처리 방식을 보인다.
여수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박 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어디까지 인정하고, 어떻게 대응할지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과거 영안실, 차량견인업, 심부름센터 등 일을 하면서 경찰들과 꾸준히 관계를 가져왔다. 김 경사와의 인연도 그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경찰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 우체국 CCTV엔 김 경사가 사건 일주일 전 내부를 촬영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
이런 박 씨의 치밀한 모습에 미루어 경찰은 그가 초범이 아닐 것이라고 의심했다. 그리고 경찰은 박 씨의 DNA 대조 작업을 통해 지난 2005년 6월 발생한 미평동 기업은행 현금지급기 털이 사건 역시 박 씨의 범행임을 입증해냈다. 박 씨는 이 사건의 혐의에 대해서도 인정하면서 “그때도 김 경사가 가담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김 경사는 여수경찰서 강력팀에서 근무하며 미평동 기업은행 현금지급기 털이 사건 수사반에 투입됐었다. 그가 사건 은폐나 수사방해를 시도했을 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밖에도 경찰이 박 씨와 김 경사가 연루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제 금고털이 사건은 모두 5건. 지난 2004년 돌산읍 우두리 새마을금고에서는 현금인출기가 파손되고 현금 1700여만 원이 사라졌다. 2006년 1월에는 여수 안산동 축협 현금지급기 2대에서 992만 원을 도난당했다.
특히 2005년에는 여수에서 3건의 금고털이 사건이 발생했다. 8월 여수 S병원에서는 이사장실 금고 안에 있던 4500만 원이 사라졌는데, 그때도 금고 뒷면에는 구멍이 뚫려있었다. 소호동 모 마트에서는 금고가 산소절단기로 파손돼 현금 645만 원이 털렸고, 선원동 마트에서는 840만 원이 보관된 금고가 통째로 사라지는 사건도 벌어졌다.
이 사건들은 모두 금고나 현금지급기가 구멍이 뚫리거나 파손돼 발견됐다는 점에서 경찰은 박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다.
이들 미제 사건의 수사는 여수경찰서에서 전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로 넘어가 전면 재수사에 들어갔다.
2005년 발생한 미평동 기업은행 현금지급기 털이 사건은 공소시효 7년이 지나 처벌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경찰은 “박 씨가 상습적으로 절도를 벌인 것으로 보기 때문에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대한 법률을 적용하면 공소시효가 10년으로 늘어나 처벌 가능하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27일 김 경사에게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또한 이번 범죄에 현직 경찰관인 김 경사가 가담한 것이 밝혀지면서 경찰청은 김재병 여수경찰서장, 김 아무개 삼일파출소장 등을 대기발령 조치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고혁주 인턴기자 rhkdgkr0414@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