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천시의회 의원 폭행사건이 벌어진 G 노래방 앞 거리. |
전남 순천에서 발생한 시의회 의원의 폭행사건 발단은 예산 문제였다. 주 아무개 의원은 자신이 소유한 N 청과상회가 입주해 있는 순천시농산물도매시장의 도색작업 및 CCTV 설치비 5000만 원 예산이 시의회 예결위에서 전액 삭감되자 예결위 간사를 맡은 서 아무개 의원을 말다툼 끝에 폭행했다. 지자체 예산 문제가 폭행으로 번지는 바람에 이번 사건이 크게 부각됐지만, 자신의 이권이 개입된 곳에 예산을 배정하고 삭감됐던 예산이 되살아나 통과되는 등 지자체의 예산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왔다. 순천시의회 의원 폭행 사건을 통해 지자체 예산 문제를 들여다봤다.
지난 21일 밤 12시경 순천시 연향동의 G 노래방 앞에서 순천시의회 도시건설위원장인 주 아무개 의원이 서 아무개 의원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어 주 의원은 서 의원을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나타난 신 아무개 의원까지 배를 발로 차고 멱살을 잡는 등의 폭력을 가했다.
폭행의 이유는 시의회 예산 문제였다. 주 의원은 “순천시농산물도매시장의 도색 작업비 2000만 원과 CCTV 설치비 3000만 원 등 5000만 원의 예산이 시의회 예결위에서 전액 삭감되자 예결위 간사를 맡은 서 의원에게 그것을 따지던 중 감정이 격해져 폭행했다”고 밝혔다. 순천시농산물도매시장에는 주 의원이 소유하고 있는 N 청과상회가 입주해있다.
신 의원은 “순천시농산물도매시장의 CCTV와 도색 상태는 아직 양호한 편이라고 상임위에서 판단했다. 또한 순천시농산물도매시장에는 주 의원이 소유한 N 청과상회가 입주해있어 선심성, 특혜성 예산이라는 의혹이 일 여지가 있어 삭감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순천시의회 주 의원의 폭행 사건은 자신의 사업장과 관련된 예산이 삭감되면서 발생한 것이지만, 사실 시의회를 비롯한 지방의회들의 예산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상임위원회 예비심사를 통해 삭감이 결정된 예산안이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통해 되살아나는 방식은 관행처럼 굳어져 각 지방의회들마다 매년 되풀이 되고 있다.
지난 7월 순천시의회에서는 상임위에서 무더기 삭감됐던 정원박람회 관련 예산이 예산결산위원회에서 슬그머니 부활돼 본회의를 통과하는 일이 발생했다. 삭감됐던 정원박람회 조직위원회 확대 개편 예산 9억 400만 원이 예산결산위원회에서 부활된 이유에 대해 순천시의회 관계자는 “행정자치위원회가 집행부로부터 통보받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결국 예산 9억 400만 원은 이날 단 한 명의 반대 없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더 황당한 것은 예산결산위원회 11명 의원 중 행정자치위원회 상임위 소속 의원은 모두 6명이었다는 사실. 이들은 삭감에서 의결로 하루 만에 입장을 바꿨다.
▲ 이번 폭행 사건의 발단은 순천시농산물도매시장 관련 예산이 삭감된 것이 원인이었다. |
경주시의회의 경우는 지난 10일 상임위원회별 예비심사를 통해 내년 예산 기획 중 54건, 61억 9600만 원의 예산을 삭감했다. 그러나 예결특위는 이들 중 26건의 예산을 되살리고, 16건의 예산삭감 항목을 새롭게 추가했다. 경주시의회는 지난해 12월에도 상임위 삭감 예산을 24건이나 되살려 문제가 된 적 있다.
두 시의회 외에도 언론을 통해 예산 문제가 불거진 지방의회만 시흥시, 화성시 등 7곳이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사정이 이러하니 가장 속이 타는 것은 집행부 담당 공무원들이다. 한 공무원은 “매번 예산심의 때마다 의원들이 변덕을 부려 담당 공무원만 죽어 난다”며 “예산 삭감과 의결의 기준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시의회의 한 관계자는 “예결특위가 상임위의 심사 예산안을 백지화할 수 있는 현행 제도는 문제가 많다. 일부 관련 단체나 사장들이 예결위원들을 상대로 로비나 압력을 행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예결특위가 상임위의 심사결과를 뒤집지 못하도록 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동안 지자체에 불거졌던 여러 가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라 중대한 시험에 들지도 모르겠다. 있어서는 안 될 부끄러운 일에 연루돼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난투극 아닌 일방적 폭행”
순천의 주 아무개 의원에게 폭행당한 서 아무개 의원과 신 아무개 의원은 근처 J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병원으로 찾아간 기자는 신 의원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언론에서 ‘순천시의회 의원들이 술판을 벌이다 길거리에서 난투극을 벌였다’고 표현한 데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신 의원은 “‘난투극’이라는 표현은 한데 엉켜 서로 치고받으며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주 의원이 나와 서 의원을 일방적으로 폭행한 것이다. 언론에서 어떻게 난투극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신 의원은 지난 21일 새벽 12시 50분쯤 집에서 잠을 자다 서 의원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서 의원은 “내가 주 의원에게 폭행을 당했으니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신 의원이 바로 연향동 현장으로 가니 서 의원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져 있었다. 신 의원은 “서 의원을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하려고 하는데 한 목격자가 술집에서 나오는 주 의원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때린 사람이다’라고 하더라. 내가 주 의원에게 다가가 ‘왜 이러십니까. 폭력을 행사해서 뒷감당을 어떻게 하시려고 합니까?’라고 물으니 주 의원이 다짜고짜 ‘너도 서 의원의 편이냐’며 복부를 걷어차고 멱살을 잡았다. 주 의원과 함께 있던 N 방송의 임 아무개 기자는 내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나는 정치인으로 싸움에 휘말리기 싫어 점퍼 호주머니에 양 손을 넣고 경찰이 출동하기 전 20분 동안 주 의원과 임 기자에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신 의원은 “주 의원의 처벌을 바라는 게 아니다. 단지 내가 바라는 건 공인으로서의 명예회복이다. 폭행당한 동료 의원을 도와주러 간 의리 있는 의원이라는 소리는 못들을 망정, 언론에서 쌍방 폭행, 난투극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으니 억울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한편 순천시의회는 지난 28일 자신의 사업장과 관련된 예산 삭감을 이유로 동료 의원을 폭행한 주 의원을 징계하기 위해 순천시윤리특별위원회 구성에 착수했다. 내년 1월 말 가동될 것으로 보이는 윤리특위는 주 의원에 대해 제명, 출석정지, 경고, 사과 등의 징계 수위를 결정해 본회의에 상정한다. 본회의 의결을 거치면 주 의원에 대한 최종 징계수위가 결정된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