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연기한 명기를 시청자의 입장에서 보면서, 얘가 현주를 죽였을 때부터 이미 제 마음속에선 끝이었어요. 그때 이미 ‘쟤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도 계속 명기를 믿었다가 마지막 게임에서야 배신감을 느꼈다는 시청 평도 봤는데, 꽤 인내력이 좋으시다고 생각했어요(웃음). 남규가 같이 팀 먹자고만 안 했어도 명기가 현주를 죽이고 빌런의 루트를 타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명기를 연기한 입장으로서는 남규의 탓을 하고 싶네요(웃음).”
6월 2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 3’에서 임시완은 코인 유튜버 출신의 참가번호 333번 이명기를 연기했다. 코인 사기에 휘말려 18억 원의 빚을 지고 살인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명기는 게임장 안에서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전 여자친구 준희(조유리 분)를 만나게 된다. 시즌 2에서는 또 다른 사기 피해자인 타노스(최승현 분) 일당에게 괴롭힘 당하면서도 준희를 지키기 위해 소극적으로나마 노력했지만, 시즌 3에 이르러 다른 빌런 캐릭터들을 뛰어넘는 악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을 큰 충격에 빠트렸다. 선택하는 것마다 최악의 결과를 맞닥뜨리게 되는 명기는 준희와의 관계도, 자신의 인간성도 끝내 회복하지 못한 채 최후를 맞게 된다.

시즌 2에서 3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여준 명기에 대해 임시완이 생각한 키워드는 ‘겁’이었다. 급박한 상황을 눈앞에 둔 인간을 한순간에 돌아버리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공포감에서 기인한 생존본능일 것이라는 분석에서였다.
허세로 자신을 부풀리며 불의에 대항하지 않고 자기 보신에만 급급한 유약한 젊은이들의 초상이 명기의 초반 모습이었다면, 누구 한 명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 최후의 게임에서 참가번호 456번 성기훈(이정재 분)과 맞붙게 됐을 때 그는 비정하게도 갓 태어난 자신의 아기까지 협박의 도구로 사용하며 “가까이 오면 떨어뜨려 버리겠다”며 절규한다. 당하기만 하던 초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갱생의 여지없는 ‘쓰레기’가 된 명기의 변화가 시청자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그런 분석을 토대로 임시완이 보여준 폭풍과도 같은 열연의 덕이 컸다.

명기의 바로 그 대사를 ‘가장 하남자(남자다운 남자를 뜻하는 신조어 상남자의 반대말) 같은 대사’로 꼽았던 임시완은 그럼에도 준희를 사랑하는 명기의 마음은 진짜일 것이라고 접근했다고도 설명했다. 시즌 3가 공개되기 전 끊임없이 이어졌던 사과의 대상에는 엔딩을 보고 충격을 받았을 시청자들과 함께 준희도 포함돼 있었다. 질문이 나올 때마다 매번 자기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된 임시완은 “명기가 조금만 노력했으면 이렇게까지 욕을 먹진 않았을 것”이라며 투덜거리기도 했다.
“고공 줄넘기 전 대화하는 신을 찍을 때 명기가 준희를 사랑하는 마음은 진짜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준희를 두고 갈 수밖에 없었던 건 준희가 그 부상으로는 게임을 통과할 수 없을 것이란 현실을 직시했기 때문이었겠죠. 명기가 좀 더 근육을 키웠었더라면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만일 명기가 일찍 죽을지언정 거기서 희생정신을 발휘해서 준희를 구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줬다면 지금처럼 욕을 안 먹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절호의 찬스였는데….”

“사실 (조)유리는 연기를 이제 막 시작한 배우이니까 현장에서 충분히 긴장할 수 있고, 거기다 대선배님들도 많이 계시다 보니 위압감도 느낄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걱정과 달리 굉장히 담대한 면을 가진 친구더라고요. 큰 프로젝트, 대단한 선배님과 감독님, 많은 스태프분들 앞에서도 쫄지 않고 본인이 준비한 것들을 의연하게 해내는 담대함을 갖추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굉장히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성장 가능성이 무한한 배우이지 않을까요?”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신기록을 세운 ‘레전드’ 작품과 그 안의 화려한 출연진들 사이에서 임시완 역시 빛나는 존재감을 보여줬다. 서사를 풀어나가는 방식과 엔딩에는 의견이 갈릴지언정, ‘오징어 게임 시즌 3’에서 압도적인 연기를 보여준 배우를 꼽으라는 질문에는 임시완의 이름이 적힌 버튼을 주저 없이 난타할 이들이 적지 않다. 선악 사이 미묘한 줄타기를 이어나가면서도 붕괴 되지 않고 캐릭터로서 완벽한 결말을 완성한 그를 향해 쏟아지는 ‘찬사’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적은 출연 분량임에도 주인공에게 뒤지지 않는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한 임시완이 앞으로 펼쳐낼 더 크고, 더 넓은 연기 스펙트럼에 기대가 모인다.
“좀 청개구리 같은 심보일 수도 있는데요(웃음). 극단적인 악역을 하면 선한 역할이 그립고, 선한 역할을 또 하다 보면 악역이 그립고 그래요. 어떻게 보면 밸런스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대본을 읽었을 때 저라는 사람이 이 이야기 속에서 움직이며 채색돼 가는 게 상상이 돼야 작품을 선택하는 주의거든요. 어떤 것들은 읽어도 잘 상상이 안 될 때가 있는데 그러면 제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현명할 것 같아요. 반대로 채색이 잘 된다면? 그럼 그건 제 작품이죠(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