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억 원의 상금을 걸고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져 본 인간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하는 이야기를 그린 ‘오징어 게임’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이상의 여운을 남겼다.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서” 결코 놓아선 안 될 것이 무엇인지. 주인공 성기훈(이정재 분)과 사회의 축소판 같은 게임장을 통해 화두를 던진 황동혁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가진 자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황동혁 감독과의 ‘오징어 게임 시즌 3’ 인터뷰 일문일답.

“최근에 치아를 두 개 더 뺐다. 아직 임플란트도 못 끼워 넣어서 한쪽으로만 먹고 있다(웃음). 시즌 1 제작 준비부터 생각하면 6년 정도 걸렸는데, 그 6년을 정말 ‘오징어 게임’ 안에서 산 것처럼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 작품을 생각하며 보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작품이다 보니 떠나보내려니까 섭섭하다. 언제 또 이렇게 큰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허전하면서도 두렵기도 하다. 다만 시즌 2와 3은 많은 기대에서 시작해 큰 부담을 안고 만든 작품이라 이제는 짐을 좀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아 후련한 마음도 있다.”
― 정든 캐릭터들이 시즌 3 초반부에서 대부분 탈락하다 보니 시청자들의 충격이 컸다.
“시즌 2와 3가 하나의 이야기라서, 시즌 3만 본다면 초반에 탈락하는 거지만 실제로는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게임에서 탈락하는 거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나눠져 있다 보니 시즌 2 이후에 기억을 리셋하신 채로 시즌 3를 보시는 분들은 참가자들이 초반에 탈락한다는 인상을 받으셨을 것 같다. 팬 분들의 실망을 이해한다(웃음). 시즌 2에서 캐릭터들에게 기대감과 애정을 쌓아 놨는데 시즌 3에서 빨리 죽으니까 배신감이 느껴지셨을 것이다(웃음).”
― 이야기의 흐름과 결말까지 본다면 시즌 2와 3를 한꺼번에 공개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겠느냐는 평도 있었다.
“지난해 시즌 2를 공개하지 않고 올해 다 모아서 에피소드 13편을 모두 공개하는 가정을 해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된다면 시즌 1 이후 4년 만에 나오는 것이라서 텀이 너무 길다고 생각했다. 4년 만에 다음 시즌을 내놓는 작품은 잘 없지 않나. 또 사람들이 긴 시리즈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13편을 한 번에 낸다는 게 저도, 넷플릭스도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 다만 배우들한테는 미안한 마음이 있다. 한 번에 쭉 나와서 캐릭터 서사도 한 번에 달릴 수 있었으면 그들의 죽음에도 설득력이 생겼을 텐데 중간에 끊어지면서 6개월의 텀이 생기는 바람에 캐릭터를 보여주는 면에선 손해가 있었다. 시즌 2부터 다시 봐주신다면 감사하겠다(웃음).”

“시즌 1의 구슬치기처럼 네 번째 게임에는 참가자들의 운명이 뒤바뀌는, 강렬한 게임을 넣어보고 싶었다. 여기서 중요한 인물들이 많이 탈락해야 했기 때문에 ‘숨바꼭질’이 운명의 장난 같은 감정과 급박함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섯 번째 게임은 순수하게 재미라는 측면과 동시에 공포감을 주는 게임을 넣고자 했다. 여기에 영희 말고 그의 교과서 파트너인 철수도 등장시켜 보고 싶어서(웃음)…. 둘 다 만족시키는 게임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고공 줄넘기’를 만들게 됐다. 시즌 2에서 해외 팬들이 ‘둥글게 둥글게’ 노래를 하도 좋아하셔서 이 줄넘기에도 구전동요를 넣었다(웃음).”
― 시즌 2에 이어 성기훈의 변화와 그의 마지막 선택에 대해 여전히 갑론을박이 오갔다. “너무 답답하다”는 비판도 있었는데.
“저도 좀 놀란 지점이 있었다. 성기훈의 행동들에 대해 대중들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답답해 하시더라. 그런 반응들을 보며 사회가 많이 각박해졌고, 그만큼 삶도 힘들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말 그대로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삶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 누군 가를 도울 마음도, 관용도 생긴다. 매년 연말 뉴스를 보면 기부도 점점 줄어들고, 거리를 돌아다녀 보면 온통 불황의 세상이다. 좋은 일자리도 사라지고 입시 경쟁은 더 어려워지는 세상 속 누군가를 위해 바보처럼 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고,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 사람들은 악역들에게 자신을 투사하게 된다. 그런 현실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졌다.”
― 기훈의 그런 답답한 면모를 시즌 1에서 조상우(박해수 분)가 시청자들의 입장을 대변해 비난했다면, 이번엔 강대호(강하늘 분)가 대신했다.
“제 안에 기훈 같은 면모와 상우 같은 면모가 다 있어서 그런 것 같다(웃음). 제가 상우의 시선으로 기훈을 보면 답답하고, 기훈의 시선으로 상우를 보면 얄밉다. 그런 양가적인 측면을 제가 가지고 있기에 기훈을 지지하기도, 꾸짖기도 하는 대사를 넣었던 것 같다. 사실 시즌 2와 3에서 기훈의 행동을 보면 이 인물이 남 탓을 하는 게 이해가 안 되지 않나. 대호의 대사도 기훈의 태도를 막연히 지지하는 게 아니라 이런 면에서 비판할 수 있다는 지점을 보여주는 것 같다. 아무래도 기훈은 답답한 부분이 있는 캐릭터라 저도 모르게 ‘이 자식한테 한마디해줘야겠다’하는 마음이 생겼다(웃음).”

“시즌 1에서도 새벽의 ‘그러지마, 아저씨는 그런 사람 아니잖아’라는 한마디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잠들어 있는 상우를 죽이려던 기훈이 새벽이의 이 말을 듣고 멈추게 된다. 기훈이 상우를 죽이지 않았기에 새벽이 죽게 되는 아이러니가 있지만, 사실 이 작품은 이렇게 바보스러운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는 사람들이 바보스러웠으면 좋겠다. 새벽의 한마디는 경쟁에 지쳐서 인간성을 잃어가는 기훈을 붙들어 맨 말이다. 시즌 1의 데자뷔처럼, 머릿속의 어떤 현상처럼 새벽의 이야기가 들리면서 그 순간을 멈추게 하고 싶었다.”
― 초반엔 해피엔딩을 구상했지만 결국엔 지금의 엔딩으로 변경된 이유가 궁금하다.
“막연하게 해피엔딩을 그리려다가 문득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을 합치면 세상을 뒤엎을 수 있나,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가, 뉴스를 봐도 세상은 점점 어려워지고, 전쟁 위기도 점점 커지고, 불평등도 만연해진다. 그렇다면 성기훈의 여정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옳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혁명으로 바뀔 수 있는 세상이 아니기에 기훈의 혁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발전과 성장만을 위해 한 치의 양보와 희생도 없이 나아가기만 하는 세상은 우리를 파멸로 몰아갈 텐데, 이 욕심을 멈추고 희생과 양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훈이 마지막에 ‘사람은…’이라는 대사를 남긴다. 극 중에서는 명확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의미로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 것을 내려놓고, 희생하자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 ‘오징어 게임’ 시리즈 최악의 빌런으로 감독님께서도 배우 임시완이 연기한 이명기를 꼽았다. 캐스팅 때부터 임시완을 명기 역으로 점찍어 놓은 이유가 있다면.
“참 맑은 얼굴을 가진 배우다. ‘미생’의 장그래를 연기할 때를 생각해 보면 사회에 막 뛰어든 사회 초년병의 순수함과 소년미가 넘치는 얼굴이지 않았나. 반대로 영화 ‘비상선언’에선 끝 모를 악의를 가진 사이코패스로 등장한다. 배우 한 명에게 이런 극단적인 모습이 다 갖춰져 있다고 생각했다. 명기는 선택을 할 때마다 그 결과들이 꼬여가면서 조금씩 망가지는 인물인데, 이렇게 두 가지 면모를 다 가지고 있는 (임)시완 씨가 연기하면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장 그럴 것 같지 않은 인물이어야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더 안타깝고 충격적일 테니까. 그리고 피지컬 쪽으로 강해 보이는 사람을 캐스팅하고 싶지 않았다. 명기는 머리와 계산이 앞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제가 섭외했다(웃음). 기훈의 노력과 희생으로 한국의 게임장은 무너져 내렸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게임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투기 자본주의의 견고한 시스템을 가진 이 세상 속, 여전히 다른 나라에서는 같은 게임이 진행 중인 것이다. 그걸 카리스마 있는 여배우가 보여준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정말 짧은 시간 나오지만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줄 배우라면 역시 최고의 연기파 배우인 케이트 블란쳇이 아니겠나. 나중에 미국에서 만났을 때 자녀들이 ‘오징어 게임’ 팬이라고 얘기해주셨다. 자녀들에게도 이번 출연은 끝까지 비밀로 했다고(웃음).”
― ‘오징어 게임: 아메리카’에 대해 여러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한다는 말도 있었는데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다 루머다(웃음). 제게 미국판 제작에 대해 공식적으로 전달된 것이 없다. 있었다면 얘기하지 않았겠나. 할리우드에서 나오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12월에 제작한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연출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저한테 얘기 안 하고 촬영하면 넷플릭스에 전화해서 이래도 되는 거냐고 할 거다(웃음). 개인적으로는 제가 데이비드 핀처 감독님의 팬인데, 정말 연출을 맡으신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 ‘오징어 게임’의 후속편이나 프런트맨(이병헌 분)의 과거사 등을 다룬 스핀오프에 대한 기대감도 여전히 높다.
“기훈의 퇴장과 함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다. 아마 다음 이야기를 만들게 된다면 스핀오프가 되지 않을까. 가면 병정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런 것들(웃음). 큰 메시지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호기심과 팬심으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 시리즈의 시작과 마지막을 함께한 ‘성기훈’에게 특별히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성기훈 씨,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웃음). 제가 성기훈 씨를 너무나 큰 고생의 구덩이에 몇 년을 몰아넣고 고문했는데요(웃음), 사람들의 사랑과 미움을 다 겪으면서 마지막에 떠나셨습니다. 그의 이런 희생이 뇌리에 오래 남아서 생각할 거리, 이야기할 거리를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바보스러웠지만 그가 이런 선택을 했던 이유를 이해해주셨으면 해요. 그런 고민과 생각들을 주변인들과 나누길 바랍니다. 요즘은 나누기보다 자꾸만 갈라서고, 차이만을 드러내려는 시대라서, 이 작품을 어떻게 보셨는지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재미있게 토론하실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