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캐릭터들의 모든 선택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고, 변해가는 그들을 보며 시청자들은 시즌 1의 오일남이 그랬듯 참가번호 456번을 향해 똑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아직도 사람을 믿나.” ‘오징어 게임’ 시리즈를 관통하는 이 한 마디와 그에 따른 456번의 답은 시즌 3의 결말에 이르러서도 시청자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기사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 3'의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판도라의 상자 속 마지막 남은 것이 희망이었다면, ‘오징어 게임’의 밑바닥에는 인간성이 남아 있다. 이 이야기는 일확천금을 눈앞에 두고 죽기 전에 먼저 죽여야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게임 속에서도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지를 묻는다. 최악 중 최악의 상황들이 겹쳐지는 가운데 아비규환으로 치닫는 인간 군상 사이에 녹아들지 않고 지켜야만 하는 인간성의 가치는 ‘오징어 게임’ 시리즈가 시청자들에게 던지는 화두 가운데 하나다.
지난 시즌 2에서 뜻을 함께 하는 게임 참가자들과 운영진을 향해 반란을 일으켰던 참가번호 456번 성기훈(이정재 분)은 이 과정에서 절친인 정배(이서환 분)를 잃고 폐인이 된다. 희망도 목적도 잃은 채 무력해져 있던 그는 정배의 죽음이 탄창을 챙기지 않고 반란 전선에서 달아나 버린 대호(강하늘 분) 탓이라고 믿고 오직 그를 향해서만 분노와 증오를 키우게 된다.
살인 게임에서 조차 상대를 살리기에 급급했던 기훈이 처음으로 게임과 상관없이 완전한 증오와 살의를 느끼게 되는 것은 시즌 3 속 그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앞선 시즌 2에서도 반란 전 전력을 모은다는 이유로 ‘솎아내기’에 참가하지 않음으로써 ‘대의를 위해 작은 것을 희생’했던 기훈이 게임 속 비인간성에 크게 잠식되고 있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분노와 증오에 휘둘리면서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대의로부터 멀어져가던 기훈이 인간에 대한 믿음을 되찾아가는 과정은 ‘오징어 게임 시즌 3’ 서사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2021년 시즌 1에서 오일남이 기훈에게 던진 “그래도 인간을 믿나”라는 질문의 답이 4년 만에 완성된 만큼 시청자들이 에피소드마다 입었던 충격도 이 답을 통해 치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속 터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껏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초반부의 태도가 기훈에 대한 시청자들의 ‘비호감도’를 높이는 측면이 있지만, 선이 악에 비해 이해와 응원보단 질타를 받는 일이 많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그의 행태도 아주 못 받아들일 정도는 아닐 것이다.

시즌 2에서 큰 비중이 없었던 것은 시즌 3에서의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을까. 시즌 3 공개 후엔 아마 이 두 명의 배우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임신한 여자친구 준희(조유리 분)를 버리고 게임에 참가하게 된 전직 코인 유튜버 명기를 연기한 임시완, 그리고 ‘타노스’(최승현 분) 일당 중 하나로 시즌 2에서 비중 이상의 강렬한 연기를 보여줬던 남규 역의 노재원이다.
남규는 앞서 탈락한 타노스와 마찬가지로 마약 중독 상태로 게임에 임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타노스는 마약 복용 후 만화 캐릭터 같이 다소 가벼운 면모를 보인 반면, 남규는 정신 나간 사이코패스 쾌락살인마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다섯 번째 게임에서 상금 보다 살인을 위해 정말 미친 듯이 움직이는 남규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를 맡은 배우 노재원의 연기력에 스크린을 넘어서까지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특히 노재원의 연기는 시즌 2에서 살아남은 또 다른 타노스 일당의 일원 민수(이다윗 분)와 말 그대로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된 에피소드에서 폭발한다. 마약 금단 증상에 시달리면서 본래 가지고 있던 열등감과 자괴감, 여기에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 한데 뒤섞이면서 일어난 남규의 ‘정신 붕괴’는 ‘오징어 게임 시즌 3’ 속 짧지만 깊고 강력한 인상을 남긴 신 가운데 하나다. 빌런으로서의 활약상과 퇴장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그 빈틈을 배우의 열연으로 넘치게 채운 셈이다.
임시완 역시 주연들에 밀리지 않는 ‘미친 연기’를 보여주며 ‘믿보배’의 존재감을 뚜렷이 드러냈다. 그가 맡은 명기는 임신한 여자친구를 한 번 매몰차게 버려놓고 게임장 안에서 마주친 뒤에야 보호해주겠다고 나서지만, 상대는 물론이고 시청자들에게까지 단 한순간도 신뢰받지 못한 인물이다.
전 여자친구인 준희에게 ‘우리’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하는 말과 달리 명기는 시즌 3에 이르러 고르는 족족 최악을 향해 달려 나간다. 끝끝내 스스로도 믿기 어려울 정도의 ‘최악의 최악’을 선택하고, 후회하면서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아는 이상 전진할 수밖에 없는 명기는 스스로와도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처럼 슬퍼하고, 후회하면서, 분노했다가, 다시 체념하고, 결국 절망에 빠지며 만들어낸 감정의 소용돌이를 시청자들에게 오롯이 전달하는 임시완의 연기는 ‘완벽’이라는 말 외엔 더 덧붙일 것이 없어 보인다. 이제껏 쌓아올린 필모그래피에 적은 분량임에도 주인공에게 뒤지지 않는 강력한 임팩트의 캐릭터를 새롭게 올리게 됐으니, 이를 발판 삼아 앞으로 임시완이 펼쳐낼 더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앞선 두 캐릭터를 비롯해 시즌 2에선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의 많은 호응과 사랑을 받았지만 동시에 우려도 일었었다. 주연들을 제외하면 결말이 ‘사망’으로 대부분 같을 수밖에 없는 캐릭터들이 지나치게 많이 나왔다는 지적이었다.
특히 쟁쟁한 배우들이 연기한 게임 참가자들이 다들 사연과 비중을 하나씩 챙기게 되면서 이들 모두를 다 조명하기엔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었다. 아무래도 시청자들은 ‘오징어 게임’ 속 게임의 진행과 결과에 좀 더 집중하길 원하는 만큼, 반대로 게임 자체와 큰 관련이 없는 캐릭터 개인의 세세한 프로필이 ‘과잉 정보’처럼 받아들여지는 탓이었다. 시즌 2에서도 게임 밖 캐릭터들의 사연과 행적이 조명될 때마다 “흐름이 끊긴다”는 볼멘 소리가 나왔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다행히 이 같은 우려는 시즌 3의 에피소드 1~2회 만에 사라진다. 황동혁 감독의 빠른 결단과 처리(?) 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번엔 반대로 너무나도 허무하게 퇴장하는 캐릭터들에 대해 그들을 사랑했던 시청자들의 새로운 원성이 터져 나올 것으로 보인다. 좀 더 활약이 기대됐던 캐릭터들이 초반에 우수수 사라지는 데다 극 중에서도 너무 빨리 잊히게 되는 설정 자체가 이전 시즌의 시청자들에겐 그다지 긍정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의미로 예상치 못한, 입이 벌어질 정도로 ‘새로운’ 캐릭터 ‘들’의 활약을 두고 여러 의견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징어 게임 시즌 3’는 시청자들에게 새 화두를 던지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게임이 끝난 뒤에도 막강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이 ‘뉴 페이스들’에 대해 전 세계 시청자들의 활발한 토론도 기대해 볼 만 하다.
덧붙여 황동혁 감독이 시즌 2에서부터 강조해 온 충격의 ‘정점’은 결말 이후의 에필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으므로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고 본다면 작품의 여운을 느끼며 ‘후일담’까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6월 27일 공개, 6부작.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