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장으로 막힌 갱구 앞에서 변동석 씨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탄광에서 일하던 아버지의 뒤를 잇긴 싫었다던 변 씨는 삼척시 도계읍 도계광업소에서 기계공으로 38년간 몸을 담았다. 1년 전 퇴직했던 그는 도계광업소가 문을 닫자 탄광 안에 차오르는 물인 갱내수를 퍼내는 작업을 위해 7월 1일부터 임시로 고용됐다. 몸이 약한 아들을 걱정한 아버지는 서울에 살던 변 씨를 자신이 일하던 도계로 데려왔다고 한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그는 어느덧 탄광의 마지막을 지키는 장년이 됐다.

도계는 한국 석탄 생산 중심지였다. 1960~70년대에는 ‘쫄딱 구덩이’로 불린 영세 탄광까지 합해 40여 개의 탄광이 도계에 있었다. 석탄 생산량이 절정에 달한 1988년에는 탄광 종사자 6705명에 석탄 생산량 약 259만t에 달했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큰 도계광업소는 1988년에 약 127만t의 석탄을 생산하는 등 개광 이래 약 4324만 7000t을 채굴했다.
탄광촌이 형성되면서 도계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탄광에서 일하기 위해 타지에서 사람이 유입되며 1979년에는 인구가 4만 4543명까지 늘었다. 도계광업소 근처에는 술집 거리가 형성되어 교대 시간마다 손님으로 북적였다.
1981년부터 도계광업소에서 일하며 44년간 도계에서 살아온 조순기 씨는 “어깨가 서로 부딪힐 정도로 시장에 사람이 많아 서울에서도 소매치기가 왔다”며 “예전엔 소극장도 있고 의원도 5~6개는 됐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그러나 산업과 가정의 주요 연료가 석탄에서 석유·가스로 전환되며 도계는 급격한 쇠락기에 접어들었다.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의 시행되며 도계에서는 1996년까지 10개의 탄광이 문을 닫고 도계광업소와 상덕광업소 단 두 개의 탄광만 남았다.

직접 찾아본 도계는 과거의 영광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중심지인 도계역 근처에도 빈 상가가 도처에 보였다. 식당 주인인 김문식 씨는 “건너편 도계광업소 본관 직원이 떠나면서 점심시간에도 손님이 없다”며 “다른 지역에서 장사를 이어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도계역 인근 전통시장인 전두시장도 상황은 심각했다. 50개가 넘은 자리 중에 장사하고 있는 곳은 10여 곳에 불과했다. 평일 낮의 시장 거리는 손님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한 상인은 “이제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며 “근처에 오일장도 열리는데 그곳도 파는 사람이 사는 사람보다 많을 정도다”라고 상황을 전했다.
빈집도 눈에 띄었다. 도계광업소 합숙소는 2022년 문을 닫아 폐허로 방치됐다. 도계 곳곳에 퍼져있는 사택도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집이 많았다.
‘까막동네’라 불리는 전두1리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곳은 석탄을 저장하는 저탄장에서 날아온 검은 재가 마을을 뒤덮어 까막동네라는 별명이 붙었다. 도계광업소 옆에 있어 탄광 노동자가 많이 거주하던 마을이었다. 한때 3000명이 넘던 주민 수는 현재 100여 명으로 줄었다.
까막동네에 거주하는 차모연 씨는 “노인은 퇴직금, 산재 보험금, 노인일자리 사업 등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지만 젊은이는 일자리가 없으니 다 떠난다”며 “상덕광업소에서 일하는 아들과 사위가 40~50대인데 앞으로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도계광업소 폐광이 지역 사회에 큰 피해를 준 이유는 대체 산업 육성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1995년 농공단지를 조성했으나 인구 유출을 막지 못했다. 현재 추진 중인 대체 산업은 중입자 가속기 의료산업 클러스터 조성과 내국인 지정면세점 유치다. 의료산업 클러스터는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고 면세점은 계획 단계에 머물러있다.
주민들은 도계광업소 폐광 결정 소식을 듣고 ‘대체 산업 쟁취 대한석탄공사 폐광 반대 공동투쟁위원회(투쟁위)’를 꾸려 대응에 나섰다. 도계광업소가 문을 닫은 6월 30일에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생존권 보장 없는 폐광을 반대한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현재는 도계광업소 본관 앞에 농성장을 꾸려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농성장에서 만난 김광태 투쟁위원장은 “독일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탄광을 다시 운영하고 있다”며 “대체 산업이 자리 잡기 전 만이라도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폐광 시점을 늦출 수는 없겠냐”고 했다.
하루아침에 직장이 사라진 도계광업소 노동자의 재취업도 풀어야 할 과제다. 석탄 산업 자체가 사양길에 들어선 상황에서 탄광 노동자는 다른 산업 분야 진출에 어려움을 겪는다. 도계광업소 기계과장을 지낸 김찬성 씨는 50세 나이로 직장을 떠나게 됐다. 김 씨는 “한참 일을 해야 할 나이여서 비슷한 기계 분야나 컨베이어 벨트 쪽으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분야와 관련성이 떨어지는 채굴부는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사택에서 마주친 도계광업소 전 채굴 노동자는 직업병으로 인해 등, 허리, 어깨가 좋지 않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지역으로 일을 찾아 떠날 것 같다”며 “마땅한 기술이 없으니 정 안되면 일용직이라도 해야 한다”고 걱정했다.
3월 31일 강원도는 고용노동부, 삼척시, 대한석탄공사와 ‘광산 근로자 전직훈련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도계광업소 노동자를 대상으로 재교육과 취업박람회 등을 진행했다. 지게차, 용접, 드론, 조경수, 산림, 제빵 등의 분야의 재교육을 실시했지만 3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 탓에 교육 효과는 떨어졌다는 지적이다.
도계광업소에서 일한 황경석 씨는 “자격증을 언제 따서 재취업을 하겠냐”며 “떠난 노동자 대부분이 불안정한 고용 환경에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도계 주민과 탄광 노동자들은 정부가 책임지고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피해를 본 주민과 노동자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1970년대에 도계광업소에서 일을 했던 김진영 씨는 “당시 한 달에 하루 쉬며 일을 해왔고 보험료 오른다며 산재 신청을 못 하게 하기도 했다”며 “산업화를 위해 희생한 도계에 국가가 보답해 줄 차례가 되지 않았냐”며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김민호 인턴기자 kmh2938@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