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회장은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하는 과정에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이 2012년부터 추진한 부정거래와 시세조종 등에 관여한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다. 최지성 전 실장, 장충기 전 차장, 김종중 전 전략팀장 등 전 미전실 임원들과 회계법인도 함께 기소됐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2015년 5월 제일모직 1주와 삼성물산 주식 약 3주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합병을 결정했고, 같은 해 9월 합병이 이뤄졌다. 당시 부회장이었던 이재용 회장은 제일모직 최대주주(지분 23.2% 보유)였지만, 삼성물산 지분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합병 전 삼성물산은 그룹의 핵심회사인 삼성전자 지분을 4%가량 보유하고 있었는데, 검찰은 이 회장이 그룹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 지분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봤다.
또 검찰은 이재용 회장 입장에서 유리한 합병이 이뤄지도록 그룹 차원에서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고, 삼성물산의 가치를 낮추는 작업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거짓 정보 유포 △중요 정보 은폐 △허위 호재 공표 △주요 주주 매수 △국민연금 의결권 확보를 위한 불법 로비 △계열사인 삼성증권 조직 동원 △자사주 집중 매입을 통한 시세조종 등이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이재용 회장은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 회계에 관여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2015년 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제약기업 바이오젠이 콜옵션(우선매수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이유로 종속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바꿨다. 그리고 삼성바이오에피스 회계처리 방식을 연결 회계에서 지분법으로 변경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1년부터 4년 연속 적자를 냈는데, 2015년 1조 9000억 원의 순이익을 내면서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2월 피고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 또는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합병비율이 불공정했거나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봤다.
2심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8월 서울행정법원이 엇갈린 판결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행정법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증권선물위원회의 제재를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도 2015년 회계처리 변경에 대해 문제가 있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에 검찰은 2심에서 분식회계 혐의 관련 예비적 공소사실을 추가해 공소장을 변경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자본잠식을 회피하고자 허위 논리를 만들어 회계처리를 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1심과 마찬가지로 올해 2월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보도자료 등을 통해 국제회계기준(IFRS)상의 의무사항에 따라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제외했다고 해명했다. 2심 재판부는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 과정에 최소한의 합리성이 있다고 봤다.
증거능력 자체가 소멸한 것도 무죄 선고 원인 중 하나다. 검찰은 2012년 12월 미전실이 작성한 ‘프로젝트-G(거버넌스)’ 문건을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의 핵심 증거로 제출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다양한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검토한 종합 보고서일 뿐”이라고 판단하면서 법적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검찰은 2019년 압수했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18테라바이트(TB) 용량의 백업 서버와 삼성바이오에피스 서버,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의 휴대전화 메시지 등 상당수 증거를 제출했다. 삼성 변호인단은 증거인멸·은닉 혐의로 압수수색을 하더라도 인멸하려는 범죄와 관련된 자료만 입수해야 하는데, 검찰이 이런 선별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해당 주장을 받아들인 1·2심 재판부 모두 압수수색 과정에서 적법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은 무리한 수사였다는 일각의 지적에도 법리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상고심의위원회를 거쳐 상고를 제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나 심리 미진이 없다고 보고 7월 17일 무죄를 확정했다. 삼성 측 변호인은 대법원 선고 직후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통해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며 “5년에 걸친 충실한 심리를 통해 현명하게 판단해 준 법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재용 회장이 등기이사직에 선임될지가 재계 관심사다. 앞서 이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 중이던 2019년 10월 삼성전자 등기이사에서 사임했다. 5대그룹(삼성·SK·현대차·LG·롯데) 총수 중 유일하게 미등기 임원이다.
책임경영 강화 측면에서 이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올해 2월 정례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투자자들과의 관계, 사법 리스크 등 여러 장애물이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등기이사에 복귀할 필요가 있다. 내부에서도 회장께서 전면에 나서 지휘해 주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역설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사법 리스크에 휩싸이게 되면 기업 경영이 한동안 마비되다 싶을 정도로 투자나 의사결정이 경색될 수밖에 없는데, 3~10년 중장기 플랜 구성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총수가 등기임원에 선임하는 것은 책임 경영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는 것인데 투자자들도 반색할만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등기임원 복귀 등을 통해 이재용 회장이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을지 재계는 주목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최근 대내외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그룹 컨트롤타워 재건 등 내부적인 혁신과 그룹 총수의 의지가 크게 반영되는 대형 M&A(인수합병) 등을 통해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무엇보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부활이 절실한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에서는 파운드리와 시스템LSI(설계) 부문에서 좀처럼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메모리 부문은 인공지능(AI) 핵심 밸류체인이 된 고대역폭 메모리(HBM) 개발에 뒤처지면서 세계 1위 타이틀이 위태롭다. 스마트폰 사업에서는 애플과 중국 기업 사이 낀 모양새다.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2023년 현대자동차, 2024년에는 SK하이닉스에 밀려 2년 연속 국내 2위에 머물렀다.
이종환 상명대학교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사법 리스크 해소로 기업 신뢰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자신감 있게 고객확보에 나서고 공격적인 투자도 가능할 것”이라며 “삼성전자의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 중 하나가 엔지니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영진이 많다는 점인데, 인적쇄신에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재 논의 중인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밝힐 입장은 없다”고 전했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