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히려 스쳐 지나가도 하나 이상하지 않을 평범한 풍경에 적극적으로 발을 멈춰 세우고 시간을 갖는 그 순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발을 멈추게 한 것이 꽃의 아름다움이었을지, 더위에 맞서는 강인함이었을지, 혹은 그 무엇이었는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그 찰나의 포착에 능동적으로 멈춰 서서, 사진으로 담는 동안 그 사람은 꽃을 매개로 새로운 세계와 감응하는 심미적 경험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사진작가는 멈춰 서서 사진 찍는 행위를 평범한 일상 속에 아주 작은 기적이 벌어지는 순간이라고 말하기도 했나 보다.
미국의 비평가이자 작가 수잔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에서 사진이 현실을 이미지로 박제하고 소비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했지만, 동시에 사진이 세상을 붙잡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의 표현이자 세계와 친밀하게 관계를 맺는 방식이라는 점도 인정했다. 그녀의 말을 빌리면 꽃을 찍는다는 행위는, 어쩌면 '이 순간을 나만의 방식으로 사랑한다'는 선언일 수 있다. 또한 주변의 작은 존재들에 주목하고 이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겠다는 조용한 공언이기도 하다.
스마트폰이 카메라이자 영상 촬영기로 진화하면서 우리는 수시로 감수성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사진을 찍어 공유하는 행위를 ‘소비적 행위’로만 치부하기에는 감각을 세밀하게 열면서 자신의 삶을 예술적으로 인식하는 수많은 여정들 또한 이어지고 있다. 사진으로 자신의 감정과 해석을 부여하며 의미를 생성하는 사람의 감응은 상상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꽃과의 감응을 통해 내 밖의 세상을 좀 더 깊이 감각하고 내 세계의 경계를 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가능성을 상상력을 동원해 재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통한 예술적 감응은 삶을 미적으로 인식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감응이 더욱 깊고 밀도 있게 이루어지는 장은 예술작품과 직접 마주하는 순간에 있다. 예술 작품은 단순히 ‘보는’ 대상이 아니라, 감각을 압도하고 사고를 전환시키며, 때로는 설명되지 않는 정서적 떨림을 통해 세계와 나를 다시 조율하게 만든다.

예술작품은 관람자의 시선을 단순히 유도하지 않는다. 응시하게 만들고, 멈추게 하고, 질문하게 만든다. 이는 예술교육이 추구하는 ‘감응하는 능력’의 핵심이며, 감상자가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능동적 해석자이자 응답하는 존재로 서는 과정이다.
이러한 감응력과 상상력은 단지 개인적인 감수성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예술을 통해 익히는 감응은 상상력을 위한 통로이며, 그 상상력은 타인의 현실에 공감하고 새로운 사회를 구상하는 ‘사회적 상상력’으로 확장된다. 예술은 바로 그런 감각을 가장 깊고 구체적으로 일깨운다. 하나의 작품을 바라보며 다른 이의 감정에 공감하거나, 전혀 다른 시대와 공간의 이야기에 감응하는 경험은 결국 ‘나’의 경계를 넘는 훈련이다. 이것은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차이와 타자에 대한 이해, 공존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교육적 계기가 된다.
예술이 이토록 감응과 전환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작품 뒤에 예술가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현실의 틈을 감지하고, 그것을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이들이다.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며 익숙함을 뒤집고, 새로운 방식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들의 전환적 사고와 표현은 관람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세계에 대한 감각을 흔들고 확장시킨다. 더 나아가 예술가는 자신만의 언어로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내고, 보이지 않던 가능성을 드러냄으로써, 우리 모두가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를 열어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지금의 세계를 다르게 구성할 수 있다는 구체적 제안이자, 감각적인 선언이다. 예술가는 단지 창작자가 아니다. 사회를 감응하게 하고 질문하게 하며, 전환과 상상의 공간을 여는 문화적 실천가이자 교육자이기도 하다.
예술 향유에서 창작에 이르는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예술교육이란, 결국 이러한 예술가들의 감각과 시선, 사고방식을 통해 개개인의 감각, 시선, 사유의 진동이 각자의 삶에서 계속될 수 있도록 조력하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술교육은 이러한 체험을 일상 속에서 가능하게 하며,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과 감수성을 일깨운다. 작품을 마주하거나 창작 과정에 몰입할 때 발생하는 정서적 반응은 단지 ‘보는 행위’를 넘어 감정의 공명, 삶에 대한 해석과 연결된다. 예술은 상상을 자극하고 감각을 정교하게 다듬으며, 우리로 하여금 기존의 의미 체계를 넘어선 새로운 가능성과 해석을 직면하게 만든다. 이처럼 예술은 단순한 이미지 이상의 무언가로, 삶을 재구성하는 감각적 통로가 된다.
이 감응은 단지 개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감정적으로 연결되며, 어떻게 상상할 수 있는지를 좌우하는 출발점이다. 즉, 감응은 상상력을 위한 통로다. 그리고 이 상상력은 단지 환상이나 허구의 상상뿐 아니라, 현실을 새롭게 감각하고 배치하는 사회적 능력이기도 하다. 이른바 ‘사회적 상상력’이라고 일컫는 이 능력은 일상의 틀 속에서 벗어나 타인의 삶, 다른 관점,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그려보는 힘이다.
우리 사회는 대학입시에 밀려 예술교육은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이면 그 경험은 끝맺는 공식이 팽배해있다. 마치 예술이 어린 시절 감수성의 장난감인 양 치워버리는 것이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나 각 지역의 문화재단들에서도 예술교육 과정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으나 청소년기에는 그 여정을 잇지 못하는 현실이다. MIT 공대에서는 공과대학생들에게 음악과 연극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예술적 경험을 통해 학생들이 창의적인 문제 해결력을 키우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일부 의과대학에서는 오케스트라 활동 경험이 있는 인턴을 선호하기도 한다고 한다. 예술 활동이 아카데믹한 지식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인간적 감성과 상상력, 협력의 역량을 길러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개인의 감수성과 예술적 참여의 필요성은 개인적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꽃을 찍으며 사소한 아름다움에 감응하는 사람은 타인의 존재에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예술과 지속적으로 연결된 삶은 개인의 내적 성장을 넘어, 타인과의 공감과 이해를 촉진하는 사회적 연결로 이어진다. 이러한 연결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보다 성숙하고 회복력이 있는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아동청소년들이 경험하는 예술교육의 현실을 돌아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교실 내에서의 경쟁적 성과 위주의 교육에서 당장 벗어나기는 어렵겠지만, 다른 한 축에서는 서로의 감수성을 나누고, 함께 상상하고, 함께 변화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줄 수 있도록 예술교육의 공간을 확보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일상의 감응이 쌓여 사회의 감수성이 된다. 굳이 손에 쥔 스마트폰이 없어도 꽃이 아니어도 자신의 일상에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회에 예술이 가치재로 인식되고 교육의 기회가 더욱 열려야 하는 이유다.
서지혜 인컬쳐컨설팅 대표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는 예술경영과 예술교육, 문화정책 분야에서 연구와 사업 기획, 컨설팅, 인재양성 활동을 통해 예술과 시민의 삶 사이 간극을 좁히고, 의미 있는 접점과 관련성을 형성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음악가들의 사회에서의 존재에 대한 인식과 실천적 활동을 넓히기 위해 ‘사회참여적음악가네트워크’를 발족했으며, 저서로는 ‘한국형 엘시테마: 아동청소년오케스트라 일궈가기’가 있다. 인컬쳐컨설팅 대표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는 예술경영과 예술교육, 문화정책 분야에서 연구와 사업 기획, 컨설팅, 인재양성 활동을 통해 예술과 시민의 삶 사이 간극을 좁히고, 의미 있는 접점과 관련성을 형성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음악가들의 사회에서의 존재에 대한 인식과 실천적 활동을 넓히기 위해 ‘사회참여적음악가네트워크’를 발족했으며, 저서로는 ‘한국형 엘시테마: 아동청소년오케스트라 일궈가기’가 있다.
서지혜 인컬쳐컨설팅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