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계한 변중석 씨 빈소에서 아들 정몽구 회장이 분향하고 있다. | ||
현대그룹을 통해 한국 경제에 중공업 시대를 연 정주영 회장이 지난 2001년 3월에 작고한 지 6년 만에 부인이 뒤를 따른 것.
정주영 회장은 한국 재벌사에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국내 재벌가를 호령하는 삼성과 LG 등 영남에 뿌리를 둔 재벌 가문이 그 지역의 손꼽히는 지주로서 조성한 자본을 바탕으로 산업자본으로 탈바꿈한 것에 비해 정 회장은 논두렁을 비빌 언덕으로 평지돌출한 경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 회장 본인의 혼사나 2세 혼사에도 권문세가와 혼사를 맺은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5남 몽준 씨의 혼사를 빼면 모두 평범한 가문의 자제와 연애결혼한 경우가 대부분인 것.
변중석 씨 역시 지난 36년 강원도 통천에서 고향 총각 정주영과 혼인할 때 열다섯 살의 촌색시였다. 당시 정 회장은 네 번의 가출 끝에 서울에서 싸전을 하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였다. 그러면서 신부감은 고향에서 고른 것이다.
결혼 뒤 변 씨는 번잡한 정씨네 살림을 묵묵히 뒷받침했다. 통천에서 서울로 올라온 정 회장은 사업을 하면서 여섯 명의 동생을 모두 서울로 불렀고 한집에 살면서 사실상 가장 노릇을 했기 때문에 대가족의 건사는 모두 부인 변 씨의 몫이었던 것. 게다가 정 회장 본인도 8남1녀를 두는 과정에서 이런 저런 얘기가 많이 나돌았지만 그 자녀들을 모두 청운동 자택에서 정씨 가문의 일원으로 키워낸 것은 변 씨의 몫이었다.
▲ 1953년 부산 피난 시절 가족 사진의 일부. 아이 안고 있는 이가 변중석 씨고 바로 뒤가 정주영 회장이다. | ||
변 씨를 지난 89년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 특실에 입원하도록 조치한 것은 정주영 회장이었다. 외부에 알려진 변 씨의 병명은 ‘심장병 등’이었다.
변 씨는 발병 직후인 90년 넷째아들 몽우 씨가 세상을 버린 것에 대해 크게 슬퍼하고 애틋하게 여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변 씨는 18년 동안 큰 며느리가 세상을 먼저 뜰 때도, 남편 정 회장이 작고했을 때도, 4남 정몽헌 회장이 창 밖으로 투신했을 때도 한번도 그 모습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가족들도 이런 사실을 변 씨에게 알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정 회장과 부인 변 씨는 슬하에 8남 1녀를 뒀고 이들 자녀들에게 각기 현대차그룹(차남 정몽구), 현대그룹(5남 정몽헌), 현대중공업그룹(6남 정몽준), 현대해상화재그룹(7남 정몽윤) 등 전성기 현대그룹의 계열사를 나눠줘 분가시켜 지금도 우리 경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김진령 기자 kj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