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새해 벽두부터 열애설이 들끓었다. 정지훈, 비에게 사랑과 함께 시련이 닥쳤다. 상대가 김태희니만큼 그에게 닥친 시련은 감수할 만한 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쩌면, 비에게 드리운 먹구름의 조짐은 그 전부터 있어왔다. 그가 입대하기 전, 예의 바르고 겸손하고 성실함의 대명사였던 비가 할리우드에 진출하고 가장 성공의 정점을 찍을 즈음이다.
비는 유명가수의 백댄서로 연예계에 데뷔해 춥고 배고픈 시절을 거쳤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죽을 듯이 연습하자” “불안하면 연습하라” “나에겐 노력이란 칼이 있다”란 말을 되뇌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래하는 댄싱머신처럼 앞으로만 달렸다.
2008년 비가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자신의 가정사를 털어논 적이 있었다. 당뇨병에 걸린 어머니가 인슐린 살 돈이 없어서 고통 속에 돌아가셨다고. 불치병이 아닌데 결국 돈 때문에 죽게 된 비의 어머니는 진통제를 사는 대신 침대 밑에 남매를 위한 통장을 남겨놓았다. 어머니가 남긴 불사의 사랑을 확인한 비는 더 이상 가난하고 불행한 소년이 아니었다. 이때의 비는 덩치가 산만 한 강호동보다 훨씬 큰 존재감과 아우라를 풍겼다.
가수 비의 할리우드 진출 소식은 팬들에게 희열을 안겼다. 그것도 영화 <매트릭스>를 통해 살아있는 전설이 돼버린 워쇼스키 형제(이젠 남매지만)의 영화에 연달아 출연했다. <스피드레이서>는 조연이었지만 <닌자 어쌔신>에선 원 맨 주연이었다. 영화 흥행 여부를 떠나 당시 비는 안티 없는 유일한 스타가 아니었을까.
성공가도를 달리면서도 주변의 질투를 사지 않던 비에게 변화의 조짐을 발견한 건 2010년 어느 날의 심야토크쇼 <강심장>에서였다. 토크배틀이란 포맷에 맞지 않게 제작진의 모든 초점이 오직 비에게로만 맞춰져 있었다. 다른 게스트들의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제치고 비의 이야기가 ‘짱’ 먹었다. 다소 진부한 할리우드 스토리, 어디선가 접했던 이야기다. 비가 겪은 죽음 같은 다이어트의 이야기도, 제작자 중심의 냉정한 할리우드 이야기도 별로 공감이 가지 않던 밤이었다. ‘예의 바르고 성실한 청년’ 비는 겸손함보다 자신감이 지나치게 넘치는 그냥 월드스타였다.
2013년, 대한민국 최고의 대표미녀 김태희와 열애설이 터진 비는 새해 벽두부터 축하 대신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2011년 당당하게 현역으로 입대한 비는 잦은 휴가 및 외출, 복장위반 논란 등에 휩싸였다. 연예사병에 대한 지나친 특혜 시비로까지 파문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사귄 지 한 달, 애닯고 뜨거운 그들의 사정은 저만치 물러나 있다. 김태희는 열애를 시인한 후 가족과 해외여행을 떠났고, 비는 이제 징계위원회에 서야 한다.
비가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소식이 보도됐을 때도, 다른 톱스타 여배우와 크고 작은 루머가 돌 때도 이러진 않았던 것 같은데, 2013년 언론에 내린 ‘비’는 유독 춥고 외로워 보인다. 열애설 상대가 김태희라서?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국방의 의무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성역과도 같은 것이라서? 억울하고 할 말은 많겠지만 비는 지금 '나쁜 남자’가 돼버렸다.
지난 4일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엔 특별한 할리우드 손님이 출연했다. 라나 워쇼스키, 앤디 워쇼스키 남매다. 이날 라나 워쇼스키는 비를 언급하며 “넋이 나갈 정도로 매력적”이라고 칭찬했다. 다른 자리에선 “정지훈이 현재 군대에 갔는데 빨리 제대했으면 좋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쯤 되면 ‘사심’이 있나 여겨지기도 하지만 일단 넘어가자.
많은 팬들 역시 정지훈이 빨리 이 시련을 극복하고, 군복무를 잘 마치고 건강하게 돌아오길 바란다. 그리고 또 하나 바란다. 도전과 과정이 아름다웠던 그때의 비로 돌아와 달라고. 월드스타 비여, 어서 돌아오라. 당신의 성공을 마음껏 축하할 수 있던 그때로, 그 시절로. 그리고 김태희와 아름다운 사랑 이루시라. 대한민국 톱 여배우를 ‘곰신’으로 만든 당신은 진정한 능력자니까.
김수현 기자 penpop@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