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일 2013 신년 인사회에 참석해 시루떡을 자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인선이 초미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알 만한 분들에게 꾸준히 물어봤지만, 결론은 누가 박 당선인의 의중에 영향을 미치는지 ‘아무도 몰라’라는 거였다. 그게 그룹 형태였다면 실체가 드러났겠지만, 개별적 자문 형태라서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것이란 얘기들이 대체적이었다. 대한민국에 이렇게 언론이 많은데 팩트(fact)를 가지고 쓴 기사가 없지 않느냐?” 다른 인사는 “인사를 주무르는 실체가 확인되는 순간 박근혜의 정통성은 사라진다. 그런 위험천만한 짓을 누가 하겠는가”라고 했다.
다양한 인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박 당선인과 극소수의 인사만 인선에 참여해 “정말 알기 어려운 구조”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보력을 갖춘 기관이나 언론조차 좀처럼 ‘접촉하기 힘든’ 인사가 ‘추천’ 내지는 ‘자문’ 형태로 의견을 주고받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추천이 들어오면 나름의 검증 과정을 거쳐 각 분야 원로의 평가를 듣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들 속에는 공통으로 거론되는 인물이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의 이력에는 일종의 ‘교집합’ 같은 것이 존재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정희의 사람들’이다. 지박파(知朴派)다.
가장 많이 거론된 인물은 남덕우 전 총리였다. 서강학파 1세대 대표주자로 회자되는 그는 박정희 정부 때인 1969년, 재무장관으로 입각해 4년하고도 11개월간 경제정책을 다뤘다. 경제수석도 맡았다. 오랜 기간 박 당선인의 후원회장이었다. 박 당선인은 서강대 70학번이다. 지난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 정국에서 ‘경제민주화 전도사’로 등장한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서강학파 2세대, 박 당선인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국가미래연구원의 수장, 김광두 전 힘찬경제단장은 서강학파 3세대다. 남-김-김으로 이어지는 학파의 일치성은 우연으로 보기엔 지나친 감이 있다.
두 번째 인물은 김용환 전 재무부 장관이다. 박 당선인을 돕는 원로그룹의 핵심으로 알려진 그는 박정희 정부 때 경제수석을 거쳐 재무부 장관이 됐다. 이후에도 그는 오랜 기간 박 당선인 주위에 있었다. 지난해 말 비대위 체제에서는 박 당선인의 고문 역할로 소개됐는데, 그 스스로 친박계 원로그룹 ‘7인회’를 언급해 주목받았다. 7인회는 지난해 4·11 총선 공천 정국에서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혹이 일면서 논란되기도 했다. 박 당선인이 “그런 모임은 알지 못한다”고 바로 잡았지만, 김용환이라는 이름은 지금도 여의도에 오르내린다. 김 전 장관은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동서지간이다.
서청원 고문의 이름도 빠지지 않았다. 박정희 정부 시절 그는 조선일보의 기자였고, 1981년 11대 민주한국당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알려진 바 없다. 하지만 그는 박 당선인의 오늘을 있게 한 ‘개국공신’ 중에서도 핵심이다. 서 고문이 1998년 한나라당 사무총장이었을 때 박 당선인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 공천했고,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대통합’을 외친 박 당선인에게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김경재 전 의원, 김중태 전 서울대 민족주의비교연구회장을 데려다 놓았다. 박 당선인의 늑장 인선에 대해서도 “1993년 12월 정무장관 통보를 받을 때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전화를 걸었다. ‘니 내일 중책 하나 맡는데이. 보안 철저히 하래이’라고 해서 기자들 피해 도망쳤다”고 박 당선인의 보호막을 자처했다.
서 고문은 청와대 비서실의 인사에도 일부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최근 각종 방송에서 활약했던 아무개 인사에게 청와대 정무직을 제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제의받은 사람이 박 당선인과 별 인연은 없지만 야당성향 평론가들에 맞서 박 당선인의 입장과 가치관을 잘 반영해준 것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한때 친이계로 분류됐지만 박 당선인의 탕평인사 원칙에 부합돼 영입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서 고문은 이밖에도 장외에서 전국의 인재들을 모으는 데 열의를 가지고 뛰고 있다는 후문이다.
▲ 왼쪽부터 남덕우, 김용환, 서청원 |
또한 박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과 비슷한 습관도 있다고 전해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항상 사람에 대해 메모를 하며 그 사람의 역사를 기록했는데 박 당선인도 똑같다는 것이다. 인상에서부터 어떤 화제로 이야기했는지, 어떤 느낌이었는지 본인의 감을 가장 중시한다는 것이다. 천거보다는 직접 검증을 선호한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그러니 그의 머릿속에 있는 인선은 드러나지 않는다.
서강학파, 원로그룹, 자문그룹, 비선 조직, 정치인그룹, 비정치인그룹, 보좌진…그를 둘러싼 수많은-드러났든 드러나지 않았든-사람 중 누구를 가장 신뢰하는지는 박 당선인만 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人事) 애드벌룬을 띄워 여론의 동향을 살피고 검증을 달리 받는다면, 박 당선인은 철저히 밀실 속에서 지난한 검증 과정을 거쳐 깜짝 발표하는 스타일인 것이 드러났다. 인사에서만큼은 박 당선자가 예측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장·단점이 있다. 언론에 흘려 여론 검증을 받다 보면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떠돌아다니게 되고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이 가중될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너무 밀실 보안인사에만 몰입하다 보면 여론과 국민감정에 반하는 깜짝 인사가 나오게 된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이 그 대표적 경우라는 것이다.
새누리당 주변에서는 “(인사) 홈런 노리다 병살타를 치게 될까” 노심초사 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청와대도 박 당선인의 비밀인사를 모를 때가 많아 여기 저기 줄을 동원해 알아보는 촌극도 벌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박 당선인의 인사는 앞으로 철저하게 ‘믿을 맨’만 고집하다 개혁과 실험 없이 마무리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980년대 초 썼다는 박 당선인의 일기장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지금은 상냥하고 친절했던 사람이 나중에 보니 이(利)가 기가 막히게 밝은 사람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정말 덧없는 인간사이다.’
‘배신의 트라우마’는 박 당선인을 좌고우면하게 만들 것이란 예측이 제기되고 있다. 박 당선인을 배신하진 않을지 모르지만, 그들 인사는 박 당선인만 바라보며 국민과 등 돌릴 수 있다. 이(利)가 기가 막히게 밝은 인사들 다수도 박 당선인을 꾸준히 도와왔는데 요즘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며 입이 삐죽 나와 있다는 전언이다. 그중에는 박 당선인의 핵심 실세라든지, 최측근으로 통하는 인사도 있다.
선우완 언론인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