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조감도(위)와 중심지가 될 용산역 철도정비창. 일요신문 DB |
사업비 30조 원,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이라며 주목받아온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사업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12월 12일 사실상 파산 상태인 개발 주체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드림허브)에 수혈될 2500억 원 CB(전환사채) 발행에 실패한 이후 한 달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 이사회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드림허브 30개 출자사들이 마련한 1조 원의 자본금은 현재 바닥이 났다. 건물을 짓기 위한 기초공사인 토지작업은 시공비를 내지 못해 중단됐고, 설계비는 물론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세금 지불도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드림허브의 1, 2대 주주인 코레일(한국철도공사)과 롯데관광개발은 사업 추진 방향을 놓고 여전히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코레일은 개발 사업 기간을 대폭 늘리고 사업성 있는 곳부터 먼저 분양하는 ‘단계적 개발’로 계획을 바꾸고 자본금 규모를 3조 원으로 늘리자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롯데관광개발은 코레일의 계획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기존 계획대로 ‘통합개발’로 추진하자고 주장한다. 갈등의 골이 깊어 서로 각각 법률회사에 소송 시 승소 가능성, 보상 예상금액 등을 자문하는 등 소송 전에 대비하고 있다. 드림허브는 당장 1월 돌아오는 은행 이자까지는 해결 가능하지만 3월까지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디폴트(지급불이행)에 빠져 완전 파산할 수밖에 없다.
현재로선 정상화 가능성이 크지 않다. 코레일은 종전보다 더 강경하게 자신의 계획을 밀어 붙이고 있다. 드림허브의 다른 출자사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금 집행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게다가 코레일은 최근 소위 ‘빨대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코레일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12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 다 합쳐봐야 8531억 원에 불과한 자금을 투자한 민간 출자사들이 자기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하다는 것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드림허브 민간 출자사가 동업자 정신을 상실했고, 자사 이윤만을 추구하는 태도로 일관한다”고 비판했다.
민간 출자사는 코레일의 이런 공세에 무척 당황하는 모습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코레일이 제시한 자료를 인정하지 않는다. 민간업체들은 코레일이 현재까지 투자한 금액은 12조 원대가 아니라 7045억 원이라고 본다. 드림허브 출자금 2500억 원, 용산역세권개발(AMC) 출자금 9억 원, 1차 CB 발행 25% 376억 원, 랜드마크 빌딩 계약금 4161억 원이 전부라는 것이다.
코레일 투자금액에 대한 코레일의 주장(12조 2603억 원)과 민간의 주장(7045억 원)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 차이의 핵심은 코레일이 땅 주인으로서 받아야 할 토지대금 납부 기간을 연기해준 것을 투자금으로 볼 수 있느냐다. 코레일은 땅값 지급 시기를 사업 준공 시점으로 미뤄 사실상 5조 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민간이 보기에 이건 터무니없는 해석이다. 코레일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건설사 지급보증이 막힌 상황에서 땅값을 받을 수 없자 돈을 제대로 받기 위해 사업적 판단으로 결정한 것이며, 연기한 기간을 따져 이자까지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복리로 계산해 민간이 부담하는 이자만 1조 3000억 원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한 출자사 관계자는 “3억 원짜리 미분양 아파트를 판다고 치자. 계약조건이 계약금 3000만 원에 2억 원의 중도금을 입주할 때 잔금과 함께 내는 것이라면 이게 건설사가 계약자에게 2억 원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코레일이 신용보증을 통해 드림허브에 수조 원을 지원했다는 점도 민간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니 사업주체들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사업 중단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코레일은 환매권을 발동해 유일한 실물자산인 땅을 돌려받을 수 있다. 감정평가액이 3조 8000억 원(장부가 8000억 원)까지 오른 금싸라기다. 물론 반환 확약에 따라 2조 4000억여 원의 토지대금을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땅은 언제든 다시 개발하면 된다. 나중에라도 손해를 회복할 수 있거나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코레일은 민간 출자사들과 주민들로부터 수조 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사업계획은 민간 출자사가 드림허브에 참여할 때 전제가 됐던 것이고 코레일이 이에 대한 변경을 요구하다 사업이 좌초된 만큼 귀책사유를 물을 게 뻔하다. 민간 출자사들이 드림허브 자본납입금(7500억 원) 반환소송, 랜드마크빌딩 시공 건설사의 전환사채 인수금(687억 원) 손해배상소송 등에 나서면 지리한 법정 싸움이 불가피하다. 민간 출자사들의 경우 코레일과의 법정싸움에서 이기면 최소한 자본금은 건질 수 있지만 지면 자본금은 물론 5년 넘게 사업을 추진한 데 따른 기회비용까지 모두 날린다.
만약 기존 통합개발 방식으로 진행하면 어떻게 될까. 코레일은 기존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하면 5조 원의 적자(분양수익 27조 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래도 코레일은 손해가 거의 없다. 분양 성패와 관계없이 2조 4500억 원의 토지대금을 준공 1년 전 미리 받기 때문이다. 이미 받은 것까지 포함하면 5조 6000억 원의 땅값을 확보하게 된다. 공시지가(2조 6200억 원)의 2배가 넘는 땅값을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다.
반면 민간 출자사들은 손해가 불가피하다. 적자가 나면 민간은 자본금을 한푼도 못 건진다. 시공권을 목적으로 들어온 건설사는 사업이익을 챙기니 조금 낫지만, 투자수익만 보고 뛰어든 KB자산운용, 푸르덴셜부동산투자, 미래에셋자산운용재무투자자 등은 아무 것도 가져갈 게 없다. 2대주주인 롯데관광개발의 상황은 처참하다. 자본금 55억 원짜리 회사가 2000억 원에 육박하는 무리한 투자를 하고 10년을 기다렸는데 자본금은 고사하고 아무런 개발이익도 가져가지 못한다.
코레일은 박근혜 정부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을 주요한 사업 계획으로 삼아 정상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원한다. 코레일이 공기업으로서 사업의 주도권을 가지고 개발계획 변경 등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제안할 계획이다. 반면 민간 출자사들은 그 사이 사업이 파산할 때를 대비한 피해 규모, 소송 계획 등을 자체적으로 수립해 일전을 벌일 태세다.
박일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jumpcu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