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최원병, 신동규 |
두수장의 말대로다. 지난해 3월 농협이 금융(신용)부문과 경제부문으로 사업구조를 개편한 뒤 되는 일이 없을 정도다. 사업구조 개편은 농협의 숙원이자 최원병 회장의 연임 공약이기도 했다. ‘농업개혁’을 이루겠다며 신경분리를 단행했지만 지난 한 해 농협은 가시밭길을 걸었다. 특히 농협금융지주의 성과가 초라하다. 비록 지지부진하던 정부의 ‘나머지 1조 원 지원’이 현물투자 대신 이자보전 방식으로 결정됐지만 올해 역시 상황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농협은 신경분리 이후 대형 악재에 시달렸다. 지난해 남해화학의 450억 원에 달하는 횡령 사건과 이에 대한 농협의 부실감사가 대표적이다. 남해화학은 농협이 5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농협 자회사로서 감사와 인사권이 농협에 있다. 더욱이 횡령사건이 터진 후 벌인 감사에서 별다른 지적을 하지 않아 부실감사 논란을 부추기며 거센 비난을 샀다. 남해화학이 한때 상장폐지 위기까지 몰리면서 농협과 최원병 회장은 투자자들에게 집중 포화를 맞았다.
이보다 야심차게 출범한 농협금융지주의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이 더 걱정스럽다. 지난해 신경분리 후 출범한 농협금융지주는 금융권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됐다. 4대 금융지주, 즉 KB·우리·신한·하나금융지주는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내심 농협금융지주의 출범 전부터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솔직히 출범하자마자 당장 기존 금융지주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았지만 거대 금융지주인 만큼 경계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라고 술회했다.
이러한 경계 속에 지난해 농협금융은 순이익 1조 원을 목표로 잡았지만 실적은 그에 반도 미치지 못하는 4000억 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국 농민들과 기존 영업망을 활용해 금방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갈 것으로 예상됐던 농협생명도 업계 판도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세계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데다 출범에 따른 초기 비용이 들어간 것을 감안하면 다른 금융지주에 비해 결코 저조한 실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신충식 전 농협금융 회장이 취임 98일 만에 사퇴, 농협은행장으로 물러나고 그 자리를 옛 재무부 관료 출신인 신동규 전 은행연합회장이 올라서면서 ‘깜짝쇼’를 벌인 농협금융은 지난 한 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출범과 함께 의욕적으로 모색하던 해외영업 확대와 신성장동력 발굴은커녕 오히려 농협이 강점을 갖고 있던 ‘지자체 금고’ 선정에서 잇달아 탈락했다.
농협은 지난해 10월, 12년 동안 유지해오던 부산시 ‘부금고’ 관리를 국민은행에 내준 데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광주시 ‘2금고’ 선정에서도 국민은행에 밀려 탈락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지자체 금고 쪽을 하나의 새 시장으로 보고 준비를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접근할 것”이라며 “그동안 농협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이 부문에 대한 시중은행들의 경쟁이 앞으로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농협은행은 선정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부산시를 상대로 ‘시금고계약체결금지가처분신청’까지 했으나 지난 11월 29일 부산지법은 이를 기각했다. 자리도 뺏기고 체면까지 구긴 셈이다. 주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관리하는 금고를 시중은행에 잇달아 내준 결과만 놓고 볼 때 안정적이던 농협은행은 오히려 신경분리와 함께 시중은행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셈이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지자체 금고의 경우 일부를 제외하고는 신규 입찰에서 탈락한 것”이라며 “제도적 영향이 큰 탓”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수의계약 형태였던 지자체 금고 관리 선정이 지난해부터 입찰제로 바뀌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신동규 회장에 대한 리더십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신 회장이 실제 금융지주를 이끈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농협금융 관계자는 “일부의 우려와 달리 굉장히 적극적이고 영업 마인드를 갖춘 분”이라면서 “출범 초 안정적인 기반을 다진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