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 30일 별세한 ‘신바람 전도사’ 황수관 교수. 일요신문 DB |
황교수는 지난해 12월 12일 건강검진을 위해 서울 도곡동 강남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 검진 도중 호흡곤란 등 이상 증세를 보인 그는 간농양과 동시에 급성 패혈증이 온 것으로 진단을 받았다.
황 교수는 급히 중환자실로 옮겨져 수면상태로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급성 패혈증이 이미 여러 장기에 영향을 미쳐 의료진은 손쓸 수가 없었다. 지난해 12월 29일 그는 갑자기 상태가 악화돼 수면을 중지시켰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황 교수의 동생 황수덕 씨는 “일주일 전에 통화했을 때만 해도 ‘일 잘하고 있다’고 해 입원한 기간 동안에도 당연히 치유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이렇게 병이 급히 진행될 줄 몰랐다”고 전했다.
황 교수 병의 시작은 간농양이었다. 간농양은 세균이나 기생충이 간 내부에서 감염과 염증을 일으킨 후 정상 간세포가 파괴된 자리에 고름집이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정상인의 간에서는 미생물이 살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연히 세균이나 기생충이 들어오더라도 면역 세포들이 즉각적으로 공격, 제거하여 미생물들이 간에서 자리 잡고 증식하는 것을 막는다. 그러나 담도의 악성 종양 등 몸에 이상이 발생하거나, 면역기능이 저하된 사람 등의 경우엔 세균이 방어를 뚫고 간에 감염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감염이 정상 간세포와 간조직을 파괴시키고 그 자리에 고름이 고여 간농양이 발생한다.
황 교수의 유족들은 “황 교수는 평소 건강관리를 잘해왔는데 연말에 너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진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간농양은 크게 화농성 간농양과 아메바성 간농양으로 나눠지는데 황 교수의 경우는 화농성 간농양이라고 강남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설명했다.
간에 들어온 세균을 면역 세포들이 초기에 제거하는 데 실패할 경우 발생하는 화농성 간농양은 발열이 가장 흔한 증상으로 발생한다. 그러나 간이라는 큰 장기의 안쪽 깊숙한 곳에 고름집이 있기 때문에 피로, 식욕 감소, 전신 근육통과 함께 체중 감소 등 막연한 증상만 보여 초기에 간농양을 진단하기는 쉽지 않다.
황 교수의 경우도 피로와 호흡 곤란 증세 말고는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해 감염을 늦게 알아차린 것이 병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화농성 간농양은 고름의 배출이나 항생제 투약을 통해 치료할 수 있다. 최근에는 간농양으로 인한 사망률도 감소하는 추세다. 그러나 황 교수를 죽음으로 몰고 간 직접인 병은 간농양에 따른 패혈증이었다.
패혈증은 미생물에 감염돼 전신에 심각한 염증 반응을 나타내는 상태를 말한다. 미생물이 혈액 내로 침범하거나 신체 일부의 염증 반응 및 염증 물질 생성에 의해 전신 패혈증이 발생한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의 한 관계자는 “황 교수의 경우는 간에 침투한 미생물이 몸 속 여러 장기에 퍼져 급성 패혈증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패혈증은 호흡수가 빨라지고, 인지력이 상실되거나 정신 착란을 보이는 등의 신경학적 장애 증세를 보인다. 또한 체온이 38℃ 이상으로 올라가는 발열 증상이나 36℃ 이하로 내려가는 저체온증, 혈액 검사상 백혈구의 수가 증가 혹은 감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신체 검진과 혈액 검사, 영상 검사 등을 통해 패혈증이 발견되면 적절한 항생제 사용을 통해 원인이 되는 장기의 감염을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황 교수의 경우와 같이 치료시기를 놓치면 패혈증은 신체 장기 기능의 장애나 쇼크 등을 통해 짧은 시간에 사망에도 이를 수 있는 무서운 병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기내과의 장윤수 교수는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염증을 통한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국민에게 엔도르핀 선물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
외환위기로 전 국민이 실의에 빠져 있던 1997년, ‘신바람 전도사’ 황수관 연세대 의대 외래교수가 등장했다. ‘건강이라도 잘 챙겨 훗날 좋은 세상을 맞자’는 그의 메시지는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줬다.
황 교수는 1945년 일본에서 태어나 경북 경주(안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66년 대구교대를 졸업한 그는 1979년까지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뒤늦게 생리학·의학 분야에 관심을 가진 황 교수는 경북대 의대 연구원에 진학해 1990년 국민대 대학원에서 생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연세대 의대 생리학 교실 교수로 재직하며 운동 및 건강에 관한 논물을 100편 넘게 발표했다.
황 교수는 저서 <신바람 건강법>이 건강 열풍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1997년 SBS <호기심천국>에 ‘건강 전도사’로 출연하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건강을 위한 첫 번째 수칙으로 스트레스 해소’를 주장한 그는 전국을 돌며 웃음과 건강을 주제로 강의를 했다.
1999년 새천년민주당에 영입된 황 교수는 연세대 의대 생리학 교실 전임교수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2000년 16대 총선에 서울 마포을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황 교수는 최근까지도 새누리당 상임고문으로 활동하며 지난 10월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대외협력 담당 특보에 임명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황 교수는 대한 스포츠 의학회 부회장, 한국 체육과학회 부회장, 한국 영양학회 이사, APEC 정상회담 홍보대사, 2002년 한·일 월드컵 자문위원,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홍보대사 등을 지냈다.
지난 20년간 전국을 돌며 하루 2~3차례 강의를 해온 황 교수는 “너무 과로하지 말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내 강의로 국민에게 엔도르핀을 선물할 수 있다면 이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향년 67세의 나이로 눈을 감은 황 교수는 지난 1월 1일 서울 원지동의 서울추모공원에 화장돼 안장됐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