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월 김태촌 씨가 서울대병원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모 기업 대표 협박 혐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일요신문DB |
그러나 김 씨는 1977년 10월 오 씨 사건과 신민당 각목전당대회 등으로 인해 결국 구속된다. 김 씨 구속으로 서방파가 다소 주춤한 사이 조양은 씨가 이끄는 ‘양은이파’가 서울의 밤을 장악했다. 김 씨는 3년형을 살고 80년 초 다시 사회에 나왔지만 당시는 전두환 소장의 신군부가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두르던 시기였다. 김 씨는 출소하자마자 그해 7월 다시 폭력범죄단체 결성 등의 혐의로 구속되어 군법회의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조 씨는 이미 2월에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징역 15년을 받은 상태였다.
1986년 1월 출소한 김 씨는 서방파 조직을 재규합해 ‘범서방파’를 만들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같은 해 6월 18일 서울 한양대앞 한강 둔치에서 전국의 주먹들을 소집해서 가진 ‘새마을 축구대회’ 행사는 당시 김 씨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게 해준다. 여기에는 대통령 친동생인 전경환 당시 새마을운동중앙본부장이 참석하는 등 여야 정계 실세들이 축하차 다녀가거나 금일봉을 전달하는 모습이 포착돼 세간의 화제가 된 바 있다.
하지만 김 씨는 1986년 7월 인천 뉴송도호텔 사건의 주범으로 다시 체포되어 징역 5년, 보호감호 7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김 씨는 조직원들을 시켜 뉴송도호텔 사장 황 아무개 씨를 흉기로 난자했다. 검찰이 김 씨에게 1·2심 재판 모두 사형을 구형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그 수법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짐작이 간다.
김 씨는 1989년 1월 폐암 판정을 받으면서 형집행정지로 풀려나왔지만 신우회 결성이 ‘범죄단체 조직’으로 인정되면서 1990년 징역 10년을 선고받았고, 형집행정지도 취소됐다. 또한 수감 중이던 1997년에는 공문서 위조교사 혐의까지 추가돼 징역 1년 6월이 늘어났다. 그 후 김 씨는 1998년 가수 출신 이 아무개 씨와 ‘옥중결혼’을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사진은 왼쪽부터 1986년 뉴송도호텔 사건 주범으로 체포, 1996년 공문서 위조 혐의로 법정 출두, 기독교 집사로 활동하며 간증하는 모습. 일요신문DB |
그러나 김 씨는 수감 당시 교도소 간부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가 뒤늦게 적발되면서 2006년 11월 일본에서 귀국하던 길에 붙잡혀 또다시 체포됐다. 이어 2007년에는 배우 권상우에게 일본 팬미팅 행사를 강요하는 협박성 전화를 건 혐의로도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2006년 구속된 김 씨는 당뇨와 저혈압, 협심증 등으로 수차례 구속집행 정지를 신청하고 병원에 드나들면서 2년여 만에 형기를 모두 마쳤다.
2009년 11월 부산교도소에서 출소한 후 두문불출했던 김 씨가 지난해 1월 또다시 언론에 등장했다. 2011년 4월 지인으로부터 돈을 대신 받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한 기업가를 여섯 차례 협박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김 씨는 또 다시 불구속 기소됐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급격히 병세가 악화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2012년 3월부턴 심장박동이 사실상 정지되기도 하는 등 위독해지면서 줄곧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 왔다고 한다. 당시 병원 측이 신속한 치료를 위해 김 씨 부하들을 병실 밖으로 내보내려 했지만 오히려 김 씨 부하들이 간호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 후 병마와 싸우던 김 씨는 1월 5일 0시 40분경 숨을 거뒀다.
한편, 경찰은 김 씨가 입원했던 서울대병원과 빈소가 차려진 송파 아산병원 주변에 인력을 긴급 배치했다. 전국의 폭력 조직들이 모여들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병원 관할의 경찰서는 강력팀과 방범순찰대, 5분대기조를 꾸려 만약의 사태를 대비 중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