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왜 ‘애마부인’의 이야기가 글로벌 OTT 플랫폼 시리즈로 만들어졌을까. 극본과 연출을 맡은 이해영 감독과 주연 이하늬 등은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현재의 눈으로 봐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감독은 영화 ‘독전’과 ‘유령’ 등으로 주목받은 연출자로, 데뷔작인 2006년 ‘천하장사 마돈나’를 끝낸 직후 ‘애마’ 이야기를 처음 구상했다.
1973년생인 감독은 1982년 개봉한 ‘애마부인’을 극장에서 본 세대는 아니지만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초등학생 때부터 줄곧 ‘애마부인’이라는 제목을 접했고, 그때부터 막연한 호기심이 생겼다고 했다. 훗날 감독이 된 뒤 이 감독은 “‘애마부인’이라는 영화를 통해 모두가 욕망하지만 모두 죄의식을 가진 부분을 이야기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성별을 떠나 각자의 방식으로 싸우고 버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 같은 감독의 구상은 단번에 이뤄지지 않았다. ‘애마부인’의 만들어진 시대의 이야기를 2시간 남짓한 영화에 담기는 역부족이었다. 대략의 시놉시스만 정리한 채 시간은 흘렀고, 그사이 세상은 급격하게 변했다. 감독 역시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독전’ 등 작품을 연출하면서 외연을 확장한 덕분에 ‘애마’를 다시 꺼내 ‘폭력과 오해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완성할 수 있었다.
‘애마’는 당대 톱스타인 희란(이하늬 분)이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고 귀국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영화사는 희란에게 새로운 시나리오 한 편을 건넨다. 제목은 ‘애마부인’. 노출 장면이 다수 포함된 야한 영화의 시나리오를 받은 희란은 영화사 대표인 중호(진선규 분)를 찾아가 ‘더는 벗는 영화를 하지 않겠다’면서 거부한다. 이에 화가 난 중호는 전속계약서를 빌미로 ‘애마부인’ 출연을 협박하면서 희란에게 망신을 주려고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출연하게 만든다.
희란 대신 ‘애마부인’의 타이틀롤을 따낸 주인공은 배우가 되고 싶어 무작정 상경해 밤무대 댄서로 일하던 주애(방효린 분)다. 파격적으로 주인공이 된 주애는 영화를 위해, 배우가 되기 위해 노출 연기도 불사하면서 꿈을 실현한다. 하지만 세상은 주애를 가만두지 않는다. 최고 권력자들이 모인 은밀한 파티가 열리고, 중호는 ‘영화를 위해 희생해달라’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주애를 그곳으로 보낸다. 독재자인 대통령도 자리한 파티에서 희란도 노래를 부른다. 성 접대가 당연시되고, 계약을 빌미로 노출 연기를 강요하고, 다 찍은 영화를 더 노골적으로 야하게 만들기 위해 난도질해 저질스럽게 만드는 행태가 아무렇지 않게 자행된 1980년대의 폭압에 희란과 주애는 더는 참을 수 없다며 그들만의 전쟁을 시작한다.
‘애마’는 ‘애마부인’이라는 영화가 1982년에 개봉해 크게 흥행했다는 사실 외에 등장인물부터 설정까지 허구의 상상으로 채웠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비하가 만연한 시대상을 담은 작품을 접하고 이하늬는 “인간으로도, 여성으로도, 배우로도 아주 반가웠다”면서 “드디어 이런 이야기를 건강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세상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하늬는 ‘애마’의 주인공들이 겪는 일들에도 깊이 공감했다. “과거와 비교해 많이 개선됐지만 부당한 일들은 여전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투쟁해야 할 때도 있다”며 “그런 부분에서 ‘애마’는 1980년대가 배경이지만 2025년을 살아가는 분들에게도 와닿는 작품”이라고 각별한 마음을 드러냈다.
#눈길을 사로잡는 ‘애마부인’ 타이틀롤 방효린

방효린에게 이번 ‘애마’는 사실상 데뷔작이다. 2023년 독립영화 ‘지옥만세’에 출연했지만, 상업적인 무대에서 작품을 내놓기는 처음이다. 간절하게 배우를 꿈꿨고, 작품에 자신의 모든 걸 내걸 각오를 했다는 점은 방효린과 ‘애마’ 속 주애의 닮은 점이다. 방효린 역시 “연기를 시작하는 신인 배우 역할이다 보니 실제 상황과 비슷해서 주애의 역할에 더 집중했다”고 돌이켰다.
다만 ‘애마부인’ 주인공이라는 설정인 만큼 노출을 포함한 수위 높은 베드신도 소화해야 했다. 신인에게는 큰 도전이지만, 오디션에 응시할 때부터 ‘노출이 필요하다’는 조건을 알고 있었기에 각오는 돼 있었다. 방효린은 “오디션 이후 감독님은 콘티를 모두 보여주면서 어떻게, 어떤 구도로 촬영할지 구체적으로 전부 설명을 해줬다”며 “감독님의 섬세한 디렉션을 따랐는데 실제로 눈썹의 한 올까지도 찾아내 ‘왼쪽 눈썹 조금 뽑으면 좋겠다’고 할 만큼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믿어주는 만큼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했다.
‘애마’의 하이라이트는 베테랑 희란과 신인 주애, 두 여배우가 부당하고 폭력적인 세상에 ‘한 방’을 날리고 함께 말에 올라타 광화문 거리를 내달리는 장면이다. 이하늬와 방효린의 시너지가 극대화한 장면으로 꼽힌다. 이해영 감독은 “광화문 장면을 위해 앞의 이야기가 달려온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영화 ‘애마부인’이 보여준 성적 욕망과 다르게, 남성적이고 권위적인 광화문 도로를 달리는 두 여성의 자유분방함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master@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