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 ‘리턴’은 드라마를 재정비하고 고현정이 하차한 자리에 배우 박진희를 캐스팅해 가까스로 마무리했다. 당시 고현정과 ‘리턴’ 제작진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을 두고 ‘배우의 갑질’부터 ‘방송사의 횡포’까지 다양한 추측이 난무했고,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만한 사안이었던 만큼 뒷말도 무성했다.
‘리턴’ 하차 이후 고현정은 잠시 연기 공백을 가진 뒤 2019년 KBS 2TV ‘동네변호사 조들호2’로 활동을 재개했다. 2023년 주연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스크걸’은 고현정을 다시 보게 한 작품이다. 아름다워지고 싶어 살인까지 저질렀지만, 딸을 지키려는 강렬한 모성애를 표현하는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마귀’는 고현정이 ‘마스크걸’ 이후 다시 살인마를 연기하는 작품이자, ‘리턴’의 하차 논란 이후 7년 만에 SBS에서 내놓는 신작이란 점에서 방송가 안팎의 이목을 끌고 있다.
#고현정, 왜 연쇄살인마 역할에 끌렸나
고현정은 ‘사마귀’에서 23년 전 5명의 남성을 잔혹하게 죽인 연쇄살인마 정이신 역할을 맡았다. 그가 죽인 피해자들은 여성이나 아동을 학대했던 인물들로, 정이신은 이들을 죽인 범죄를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고현정은 ‘마스크걸’에서도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인을 저지른 인물이었다. 일종의 ‘극적인 정당성’을 지닌 캐릭터를 그려 주목받았고, 연기 변신에 호평도 따랐다. ‘사마귀’는 고현정의 연기만 놓고 보면 ‘마스크걸’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다.
고현정은 “‘마스크걸’을 하면서 저에게 이런(살인자) 캐릭터를 제안한다는 게 반가웠고, 그렇게 물꼬를 텄다”며 “이번 ‘사마귀’의 대본을 받았을 때는 연출을 변영주 감독님이 한다고 해서 바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배우라면 장르물에 욕심이 날 수밖에 없겠지만 ‘사마귀’의 정이신은 그리 단순한 인물이 아니다. 과거 연쇄살인을 저질러 20년 넘도록 복역 중인 상황인 데다, 모방범죄가 일어나자 형사가 된 아들이 찾아와 공조 수사를 제안한다. 엄마를 증오하는 형사 아들, 아들이 그리웠지만 표현할 수 없는 살인마 엄마가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드라마의 큰 줄기다. ‘엄마’이자 ‘살인마’라는 두 개의 극적인 상황을 표현하는 과제를 지닌 고현정은 “그냥 정이신이라는 사람의 인생을 놓고 봤는데 이 사람은 엄마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딸이기도 하고, 자기 인생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나는 엄마다’라는 설정보다 ‘나는 정이신이야’라는 생각이 더 강한 캐릭터로 받아들여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고현정은 이번 드라마를 촬영하는 도중인 지난해 건강 악화로 큰 수술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수술로 촬영에 임할 수 없어서 일정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출연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만큼 애착을 갖고 임한 작품이다. 이에 고현정은 “건강이 좋지 않아 중간에 ‘사마귀’ 촬영을 못 하다가 복귀했는데 많은 배려를 받고 여러 배우가 도와준 덕분에 이번 작품에 더 큰 애정을 갖게 됐다”고 했다.

다만 주인공이 연쇄살인마인 만큼 이를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표현해야 하는지 고현정도, 변영주 감독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살인’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하거나 면죄부를 줄 수 없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공감대를 형성하느냐가 관건이었다. 변영주 감독은 “만약 연출자가 범죄자인 주인공을 잘 보이게 하고 싶어 하는 걸 티내는 순간 시청자들은 역겨워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화차’ 때도 연출자가 주인공을 동정하거나 지지하는 순간 관객은 역겨워할 거라고 판단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꾸준히 드라마를 내놓는 고현정은 다양한 제작진과 호흡을 맞추고 있지만 유독 변영주 감독과 작업에 큰 애착과 신뢰를 보이고 있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순간의 연기를 포착해내는 감독의 예리한 시선에 감격하기도 했다. 이번 ‘사마귀’에서는 시너지가 극대화됐지만, 연출자와 이견이 있을 땐 연기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 배우이기도 하다. 드라마 ‘리턴’ 하차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고현정은 연출자와 캐릭터의 방향이나 설정, 이야기의 전개에 대한 이견을 보이다가 결국 외부로까지 그 갈등이 알려졌다. 고현정은 당시 소속사를 통해 “제작 과정에서 연출진과 거듭되는 의견 차이가 있었고 이를 최대한 조율해보려는 노력에도 간극을 좁힐 수 없었다”며 하차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러자 SBS 역시 보도자료를 내고 “방송 파행을 막기 위해 끝까지 협의하고 인내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으나 결국 이 같은 결정이 내려진 상황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시청자에게 사과했다. 배우와 제작진 모두 의견 충돌과 갈등을 인정한 셈이다.
9월 4일 열린 ‘사마귀’ 제작발표회에서 ‘리턴’의 중도 하차와 관련한 질문을 받은 고현정은 “그 일이 있었죠”라고 짧게 답한 뒤 ‘리턴’ 이전에 SBS에서 방송한 여러 드라마를 통해 성과를 거두고 추억을 쌓은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고현정은 미스코리아 출신에서 배우로 인정받기 시작한 드라마 ‘두려움 없는 사랑’과 ‘작별’ ‘모래시계’까지 전부 SBS에서 방송한 작품들이다. 이 점을 에둘러 강조한 고현정은 “SBS는 그전에도 다른 작품을 하면서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라며 “오랜만에 ‘사마귀’로 인사를 드릴 수 있어 좋다”고 밝혔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master@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