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경련 회장단의 기념촬영 모습. 일요신문 DB |
지난 10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새해 첫 회장단회의를 열었다. 허창수 회장을 비롯해 전경련 회장단 20명 가운데 절반도 안 되는 9명만 참석했다. 지난 12월 26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간담회를 한 탓도 있겠지만 새해 첫 회장단회의라는 의미에서 보자면 너무 저조한 참석률이었다.
또한 정몽구 현대차 회장, 구본무 LG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 4대 그룹 회장들이 참석한 26일 간담회와 너무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오는 2월로 전경련 회장 임기가 끝나는 허창수 회장에 대한 관심이 높은 가운데 허 회장의 리더십과 전경련의 위상을 한눈에 보여준 셈이다. 임기와 관련, 허 회장 본인은 다소 불편해하는 기색을 내비치기도 한다.
지난 10일 전경련 회장단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로 들어서는 허창수 회장은 전경련 회장 연임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건 내가 정하는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다시 말해 전임 조석래 회장처럼 암수술 같은 큰일이라면 모를까, 별다른 일이 없는 이상 허 회장이 그만하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다는 얘기다. 전경련 내부에서 곧잘 회자되는 ‘전경련 회장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하기 싫다고 해서 안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회장 선임에 대해 전경련 관계자는 “내부 기준에 따라 오는 2월 정기총회에서 결정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 허창수 전경련 회장. 일요신문 DB |
새 정부와 관계를 정립해가야 하는 전경련이 또 다시 오매불망 이건희 삼성 회장만 바라보기도 낯 뜨거운 대목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전경련 회장 자리는 갈수록 부담스러워질 것”이라며 “더욱이 새 정부는 전경련보다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등에 더 신경 쓰는 것처럼 비치는 게 현실 아니냐”고 지적했다.
2년 전을 되돌아보면 허 회장은 전경련 회장 자리를 ‘마지못해’ 수락한 듯 보였다. 당시 허 회장 역시 거듭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원로들과 회장단이 워낙 강하게 요청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며 회장직을 수락했다. 조석래 회장 사임 후 무려 7개월간 공석이던 회장 자리를 채우기 위해 이건희 회장만 바라보던 전경련 측이 에둘러 찾아간 사람이 허창수 회장이었던 것.
허 회장은 취임 초기 “포퓰리즘성 정책에 대해 재계 의견을 제대로 내겠다”며 강경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맹공을 받자 위축돼갔다. 시간이 갈수록 침묵도 길어졌다.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바람에 맞서 전경련 회장으로서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전경련 회장의 존재 자체마저 의심스러울 때가 있었다. ‘전경련의 양철’로 불리는 정병철 상근부회장과 이승철 전무가 부각된 것과 대조적이다. 전경련의 인사와 조직 개편의 필요성은 물론, 심지어 ‘해체론’까지 나왔지만 허 회장은 조용했다. 나중에는 오히려 전경련과 관련해 귀찮다는 반응까지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 회장 자리를 극구 고사하던 재벌 총수들은 ‘누가 되든 반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입을 모았으나 2011년 3월 허 회장 체제의 첫 회장단회의를 제외하고는 회의에 불참하기 일쑤였다. 허 회장에게 힘이 실릴 리 만무다. 허 회장은 첫 회의 때마저 스포트라이트를 이건희 회장에게 뺏겨 매우 섭섭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과거 전경련에 등을 돌린 구본무 LG 회장이 ‘한 가족’이었던 허 회장 추대로 복귀할지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전경련이 재계 의견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계속되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예가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 전경련이 매번 수용하고 있다는 것. 대기업들은 죽겠다고 난리인데 이를 대변해야 할 전경련이 오히려 대기업 실정과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허 회장은 올 초 전경련 회장 연임 여부에 대해 “내 역할 이제 끝났는데…”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말에는 그동안의 마음고생과 연임 거부 의사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허 회장은 공식적으로 “내가 정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안이 없다’는 전경련 주변 기류를 의식한 탓일지 모른다.
GS그룹 관계자는 “전경련과 관련해서 내부적으로는 아무 말씀 없었다”며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길 정도였다”며 “갈수록 전경련 회장을 추대하기 힘들어질 것으로 보여 허 회장 다음이 더 문제”라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