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건달> 주연배우 박신양. |
사실이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주연 배우들은 홍보 활동에 대거 투입된다. 홍보 참여는 계약서에 명시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필수 코스다.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드라마와 달리 극장까지 찾아와 돈을 지불하는 관객을 유혹하기 위한 당연한 노력이다. 영화의 흥행을 위해 홍보와 마케팅이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공감한다. 하지만 홍보를 대하는 스타들의 자세는 천태만상이다.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는 영화 <베를린>(감독 류승완). 한석규 하정우 류승범 전지현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대거 참여해 기획 단계부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지난 7일 열린 제작발표회에는 오랜만에 대중 앞에 서는 스타들과 기대작을 보기 위해 언론매체가 구름떼처럼 몰렸다.
하지만 정작 제작발표회에 한석규는 없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가장 큰 행사는 제작발표회에 언론시사회인 만큼 주연 배우가 빠졌다는 사실을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현장에 있던 류승완 감독은 “한석규는 자녀를 만나기 위해 미국에 갔다. 자식이 있는 부모들은 한석규의 마음을 이해할 거다. 한석규가 내게 ‘류 감독도 아이가 있으니 어떤 심정인지 알 것이다. 양해를 부탁한다’고 말했다”고 해명했다. 2남2녀를 둔 한석규의 가족애가 남다른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게다가 현재 기러기 아빠로 지내고 있는지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큰 편이다. 하지만 영화 개봉을 앞두고 공식 행사가 있다는 것을 감안해 시간을 조율하는 배려가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한석규는 언론 인터뷰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주연 배우들이 많게는 50여 개 매체와 개별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과 달리 한석규가 개별 인터뷰 자리에 나서는 것은 드물다. 영화 전문지 인터뷰 1~2개를 제외하곤 고사하는 편이다. 이런 성향을 잘 알고 있는 기자들 역시 자연스럽게 “이번에도 한석규 씨는 인터뷰 안 하시는 거죠?”라고 물을 정도다.
<베를린>의 한 관계자는 “개봉을 앞두고 귀국해 시사회에 참석하고 무대 인사도 돌 예정”이라며 “개별 인터뷰는 진행되진 않지만 다른 홍보 일정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대중적 인지도와 티켓 파워가 높은 한석규가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것을 섭섭해 하는 업계 관계자들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9일 개봉된 영화 <박수건달>(감독 조진규)의 주연을 맡은 배우 박신양 역시 좀처럼 언론 인터뷰에 나서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박수건달>의 타이틀 롤을 맡은 터라 홍보도 그에게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지만 박신양은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반면 박신양은 예능 출연을 통해 언론 인터뷰의 공백을 메우려 노력했다. KBS 2TV 공개 코미디프로그램 <개그 콘서트>와 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 <강심장> 등에 연이어 출연해 감춰둔 끼를 마음껏 발휘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보다 진솔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여전히 팬들을 허전하게 만드는 요소다.
▲ <베를린> 주연배우 한석규. 위 사진의 두 배우는 좀처럼 언론 인터뷰에 나서지 않는다. |
왜 언론 인터뷰를 꺼리는 스타들이 늘고 있는 걸까. 그 해답은 약 2년 전 영화 <된장>(감독 이서군)의 언론 인터뷰에 나섰던 이요원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이요원은 서울 모처의 카페에서 진행 중인 언론 인터뷰를 긴급히 취소한 적이 있다. 인터뷰가 영화보다는 그의 사생활에 초점이 맞춰진다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이었다.
결국 당시 예정됐던 모든 인터뷰는 진행되지 않았다. 이요원 측은 “첫날 언론과의 인터뷰를 진행한 후 나온 기사들을 보니 영화보다 이요원의 사생활에 지나친 관심을 보여 인터뷰를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당시 이요원에 행동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많은 배우들이 공감하는 부분에 대해 이요원이 총대를 메고 입장을 전했다는 옹호론이 있는 반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판단과 결정이라는 질타도 있었다. 한 홍보사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나 TV 토크쇼 등은 단순한 작품 홍보가 아니라 인간냄새 나는 배우 자체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대중을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영화를 홍보하는 입장에서 ‘나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겠다’는 것은 욕심”이라며 “이요원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배우들이 ‘사생활 질문을 자제해 달라’고 완곡히 부탁하며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에 비교하면 예정된 인터뷰를 취소한 이요원의 행동은 경솔했다”는 입장을 보였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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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행 방식을 정하는 과정 또한 간단치 않다. 영화 출연 경력이 일천하고 어린 배우들의 경우 언론사에 직접 방문해 인터뷰하는 반면 경력이 많은 스타들은 통상 삼청동이나 강남의 카페를 대관해 시간대별로 찾아온 각 언론사 기자들과 인터뷰를 갖는다. 이를 가르는 기준 또한 애매하다. 최근 언론 매체가 많아지며 짧은 시간에 많은 인터뷰를 소화하기 위해 카페에서 진행되는 인터뷰가 보편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배우의 ‘급’을 따지며 인터뷰 진행 방식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여러 매체가 한 배우와 동시에 인터뷰하는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를 마련하는 과정 또한 쉽지 않다. 언론 매체들이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를 인정할 만한 경력과 인지도가 높은 배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 파워가 강해지면서 라운드 인터뷰를 원하는 스타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분이 상한 언론 매체가 인터뷰를 보이콧하고 영화에 대한 좋지 않은 기사를 내는 경우도 있다. 드라마를 통해 반짝 인기를 얻은 배우 A는 바쁘다는 핑계로 여러 매체와 동시에 인터뷰를 진행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또한 같은 작품에 출연한 한 배우가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를 하게 되면 다른 배우들도 영향을 받아 개별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통보하기도 한다. 결국은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한 자존심 싸움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홍보사 관계자는 “인터뷰 일정을 잡을 때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제작사 연예기획사 언론사 사이에서 홍보사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인터뷰 방식을 정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고 인터뷰를 원하는 언론사는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언론 홍보를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