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헵번(가운데)과 재회한 홀든(오른쪽)은 헵번의 절친 카푸신(왼쪽)과도 즐기던 관계였다. 그럼에도 이들 셋은 한동안 나름의 관계를 유지했다. |
헵번과 카푸신의 관계는 대부분 카푸신이 친구들에게 취중에 털어놓은 이야기 때문에 드러나게 되었다. <끝없는 노래(Song Without End)>(1960)에서 공연했던 게이 배우 더크 보가드에게 자신과 헵번이 레즈비언 관계라는 걸 말한 카푸신은 <워크 온 더 와일드 사이드 (Walk on the Wild Side)>(1962)로 친구가 된 앤 벡스터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무비 사상 최초로 여성 동성애를 다룬 이 영화에서 카푸신이 맡은 역할은 여주인공인 바바라 스탠윅의 레즈비언 연인이자 매춘부인 헤일리. 그녀는 스탠윅보다는 조연이었던 앤 벡스터와 더 가까워졌고 어느 날 술을 마시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때 벡스터는 카푸신에게 긴 세월 동안 돌았던 루머인 ‘트랜스젠더 설’에 대해 물었다. 카푸신은 아니라고 말했다. 대신 어렸을 적 “외과 수술을 통한 어떤 교정”이 있었다고 대답했다. 이것은 카푸신의 전남편인 트라보드의 증언과도 일치하는 면이 있는데, 마치 <헤드윅>의 헤드윅에게 남아 있는 ‘앵그리 인치’의 모양처럼 카푸신도 태어날 때부터 ‘그 부분’에 미발달된 페니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부분을 그대로 믿는다면 카푸신은 어쩌면 레이디 가가 같은 이른바 ‘양성구유자’였던 셈이다.
그러면서 카푸신은 앤 벡스터에게 자신과 오드리 헵번과의 긴 관계를 이야기했는데, 굳이 역할을 나누자면 카푸신 자신은 부치(butch·레즈비언 관계에서 남성 역할을 하는 여성)이며 헵번은 여성 역할을 했던 펨므(femme)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워크 온 더 와일드 사이드>를 찍을 때는 파트너였던 바바라 스탠윅과도 동성애적 관계를 가졌지만 촬영이 끝나면서 그 관계를 끝냈다고도 이야기했다. 한편 카푸신은 스탠윅의 비밀 하나를 벡스터에게 전했는데, 10년 전 <밤의 충돌(Clash by Night)>(1952)을 찍을 때 만난 마릴린 먼로와 바바라 스탠윅이 동성애를 나누었다는 것이었다. 카푸신이 벡스터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는 영원한 비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얼마 후 어느 파티에서 만난 카푸신이 자신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자, 벡스터는 앙심을 품고 이후 비밀을 폭로했다.
이 무렵 흥미로운 것은 카푸신과 헵번과 윌리엄 홀든 사이에 있었던 묘한 삼각관계다. 헵번과 홀든은 <사브리나(Sabrina)>(1954)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그 관계는 지속되지 못했는데, 이번엔 카푸신이 홀든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들은 <라이언(The Lion)>(1962)이라는 영화에서 공연하면서 인연을 맺었는데, 홀든의 아내가 촬영지인 아프리카의 케냐까지 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는 가운데에서도 홀든은 카푸신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았다. 한편 남편 멜 페러와의 관계가 시들해지던 이 시기 오드리 헵번에겐 새로운, 그리고 은밀한 연인이 생겼다. 그는 바로 미국의 대통령 존 F. 케네디였다.
카푸신은 <핑크 팬더>(1963)로 드디어 스타덤에 올랐다. 모델로는 유명했으나 배우로는 긴 세월 동안 힘든 세월을 보냈던 그녀에겐 진정 기쁜 일이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64년 <뜨거운 포옹>으로 윌리엄 홀든과 오드리 헵번은 <사브리나>(1954) 이후 10년 만에 재회했고 다시 사랑에 빠졌다. 당시 홀든은 카푸신과 즐기던 관계였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지나치게 쿨한 세 사람’은 나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해 나갔다. 홀든은 카푸신의 연인이면서 동시에 헵번의 연인이었고, 카푸신과 헵번의 관계도 계속 유지되었다. 홀든은 그들 세 사람이 스리섬을 즐겼다고도 했다. 한편 <뜨거운 포옹>에 출연했던 게이 배우 노엘 카워드는 홀든과 약간은 묘한 기류를 형성하곤 했는데, 카워드는 홀든에게 카푸신이 트랜스젠더라고 이야기해주었다. 하지만 홀든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별 동요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한다.
1964년 홀든은 <적과 백(The 7th Dawn)>(1964)에서 다시 카푸신과 공연했다. 이 시기의 홀든의 알코올중독 상태는 완전히 중증에 접어들어, 카푸신에게 심할 정도로 의존하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은 카푸신에게도 쉽지 않았다. 젊은 시절부터 정신적 문제를 겪어온 카푸신은 사실 홀든의 고통을 분담할 만한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때 카푸신과 통했던 사람은 <적과 백>에서 공연했던 배우인 마이클 굿리프. 그도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서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은 급기야 “같은 날 자살하자”고 합의(!)하기에 이른다. 결국 굿리프는 이후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1976년에 병원 소방계단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술에 절어 살아가던 홀든이 세상을 떠난 건 1981년. 유언장엔 카푸신에게 5만 달러를 상속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리고 1990년 평생 조울증에 시달렸던 카푸신은 스위스의 자택인 8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62세의 나이였다. 더욱 비극적인 건 당시 카푸신을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따라다니며 맹목적 사랑을 불태웠던 어느 틴에이저가 있었는데, 그녀가 자살하자 실의에 빠져 지내다가 1년 후에 자신도 따라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993년 오드리 헵번은 암 투병 끝에 64세로 세상을 떠났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