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보세요. 의뢰인에게서 들은 사실만 간단하게 말해주면 인공지능이 전부 다해줘요. 소장도 변론서도 다 써줘요. 판례나 법률은 우리보다 수백 배 더 잘 기억하고.”
“그러면 변호사는 뭘 하지?”
“할 게 없죠. 그냥 법정에 나가 기계의 아바타로 서 있는 거죠.”
변호사라는 직업이 존속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대생 시절부터 수십 년을 머릿속에 우겨 넣은 법지식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누구나 가지게 된 인공두뇌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법원은 어떨까. 판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미 그물같이 촘촘한 법적 기준을 만들어 판사들을 그 안에 묶어 놓았었다. 대법원에서 만든 양형기준을 벗어난 재판을 하려면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그걸 넘으려는 판사들이 거의 없다고 한다. 거기에 인공지능의 쓰나미가 덮쳤다. 인공지능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의 판결문을 학습했다. 판결문을 작성할 능력이 있다.
CCTV가 도둑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인공지능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판결을 적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판사들이 인공지능의 통제권에 들어갈 위험성이 많다. 반면 인간적인 동정이나 연민으로 관대한 판결을 내리고 싶을 때 인공지능은 어떻게 반응할까. 그게 궁금하다.
엄청난 시대적 변화가 미처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바람처럼 ‘휙’ 하고 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다. 변호사가 되는 장벽만 높았지 사실 법률업무는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인공지능은 어떤 분야든 패턴을 가진 업무는 인간보다 수백 배 잘할 수 있다.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스스로 공부한다. 그걸 당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인공지능이 글을 써주고 그림을 그려주고 의사 대신 진단을 내린다. 기술은 우리를 도와주는 도구였지만 어느새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됐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무엇이 남아있을까.
나는 40년 가까이 변호사를 천직으로 알고 해왔다. 한번은 청부 살인범의 변호를 맡은 적이 있다. 납치 살해당한 딸의 시신 앞에서 아버지는 오열했다. 나는 살인범의 변호사였지만 피해자인 죽은 여대생이 불쌍했고 그 아버지의 슬픔에 공감했다. 살인범들은 죄의식도 반성도 없었다. 파충류의 영혼을 가진 것 같았다. 살인범들은 큰돈으로 나를 유혹했다. 그들의 모략과 조작에 동조하고 거짓말을 요구했다.
나는 변호를 거절했다. 그리고 오히려 그들의 음모를 폭로했다. 그리고 업무상기밀누설죄로 입건이 됐었다.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의 피고가 됐다. 인공지능이 그 사건의 변호를 맡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인공지능에게 양심이 있는 것일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인간의 영역이 있고 변호사의 남은 업무가 있다는 생각이다. 타인의 고통에 같이 아파해야 인간이 아닐까. 옳고 그름을 고민해야 사람이 아닐까. 인공지능이 만든 글과 그림 그리고 음악이 아무리 매끄러워도 누군가를 진정으로 감동시키고 위로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몇 초 만에 기계적으로 만든 시에 표현된 상실의 감정이 진짜일까. 예술은 기술이 아닌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인공지능의 기술이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 편리함은 극대화됐지만 그 속에서 인간적인 온기와 관계는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할 것이다. 예전에 플라스틱 그릇이 나왔을 때 손때 묻은 조상들이 물려준 귀한 목기나 자기를 버린 사람들이 있었다. 진짜 중요한 게 뭔지를 모르는 어리석은 짓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빠른 것이 좋은지 깊은 것이 좋은지. 정확한 판단만 요구하는지 따뜻한 판단도 필요한 것인지. 인공지능에게만 끌려 다니면서 머리가 텅 빈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인간다움을 지키는 일은 기술이 아닌 우리에게 달려있는 게 아닐까.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엄상익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