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도어 소속 아티스트로 돌아가 최소 2029년 7월까지 활동하게 될 것으로 파악되는 뉴진스와 달리, 이들과 사실상 한 몸처럼 움직인다는 지적을 받았던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는 연예기획사 '오케이'(ooak)를 설립해 새로운 엔터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적'을 상대한 전쟁에서 맞손을 잡았던 양측의 희비가 엇갈리는 가운데, 이번 뉴진스-어도어 사건이 K-팝 업계 전체에 끼친 영향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재판부는 뉴진스가 계약해지 사유의 큰 틀로 주장해 온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의 해임'과 이에 따른 '어도어의 매니지먼트 능력 상실 및 신뢰관계 파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속계약상 민희진이라는 특정 인물이 반드시 대표이사로서 어도어를 맡도록 해야 한다는 조항이 별도로 마련된 사실이 없고, 민 전 대표가 해임됐다고 해서 뉴진스를 위한 매니지먼트 공백이 발생했거나 어도어의 업무 수행 계획이나 능력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함께 뉴진스와 어도어 간 전속계약이 민 전 대표와의 신뢰 관계를 기초로 이뤄진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뉴진스-어도어의 계약 해지 소송은 전속계약 체결에 개인 기획자(소속사 대표)의 책임과 신뢰, 지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을지를 법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그 결과가 향후 K-팝 관련 계약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파악돼 왔다. 그러나 재판부가 뉴진스의 계약 체결과 민 전 대표와의 신뢰 관계를 별개로 판단하면서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는 주장'으로 남게 됐다.
앞선 소송 과정에서 뉴진스 측은 어도어의 모회사 하이브(HYBE)가 민 전 대표에 업무상 배임 혐의를 물어 고발했던 사건이 지난 7월 경찰 수사에서 혐의 없음 불송치 결정을 받았다는 점을 짚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하이브와 어도어가 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무고한' 민 전 대표를 다시 어도어의 대표이자 프로듀서로 복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4년 4월부터 불거진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의 '뉴진스 빼돌리기' 등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한 하이브의 고소·고발전은 뉴진스-어도어 전속계약 해지 분쟁과도 연결돼 있는 만큼 이 쟁점에 대해서도 재판부의 판단이 나왔다.

특히 재판부는 하이브의 '음반 밀어내기' 의혹과 관련해 민 전 대표가 이에 대한 시정은 중요하지 않고 하이브의 행위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점을 지적하며 "이는 피고(뉴진스)를 보호할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걸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봤다. 이런 내용을 종합했을 때 어도어(하이브)의 민 전 대표에 대한 감사 착수는 정당하게 이뤄진 것이므로 뉴진스 멤버들이 주장하는 전속계약 해지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이후 민 전 대표가 경찰 수사에서 업무상 배임의 무혐의 불송치 결정을 받기는 했어도 이 점이 감사의 부당함이나 그에 따른 뉴진스-어도어 사이의 신뢰관계 파탄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2024년 11월 28일 뉴진스의 전속계약 해지 선언에서부터 시작돼 약 1년 동안 이어진 이번 소송에는 국내외 K-팝 팬덤뿐 아니라 K-팝 업계 내에서도 많은 관심이 이어졌다. 한국매니지먼트연합(한매연)과 한국음악콘텐츠협회, 한국연예제작자협회 등 관련 단체에서도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뉴진스의 계약 해지 철회를 촉구하는 한편, 국회와 정부에 "(뉴진스 같은) 아티스트의 일방적인 계약 해지 통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한 보완책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 단체는 공통적으로 뉴진스의 계약 해지 선언에 대해 "K-팝 업계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매연은 "대중 가수에 대한 우리 산업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선투자 후회수'의 원칙 아래 이뤄져 왔다. 회사는 우선적으로 투자를 진행한 이상 전속계약의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며 "각종 아티스트와 소속사 간 분쟁이 발생할 때 회사는 철저하게 '을'의 입장으로 전속계약의 유지와 보존을 바랄 수밖에 없는 입장인데 특히 악의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고자 하는 경우 최종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 이외에 계약을 유지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호소했다.

재판부는 "매니지먼트 계약의 경우 뉴진스처럼 데뷔 전 계약을 체결한다면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거액의 투자가 이뤄지고 성공해야 이를 회수할 수 있는 게 일반적"이라며 "연예인이 전속계약을 통해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팬덤을 쌓은 후 경영상의 판단 영역인 콘텐츠 제작 결정권 행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전속계약 강제에 따른 인격권 침해를 주장하며 계약 효력을 부정한다면, 이에 따른 전속계약 해지가 너무 쉽게 이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멤버들의 요구를 어도어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연예인의 자유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K-팝 업계 내에선 1심 재판부의 결정에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익명을 원한 한 가요계 관계자는 "뉴진스의 신뢰관계 파탄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 이를 토대로 똑같은 방식을 따른 제2, 제3의 뉴진스-어도어 분쟁이 발생했을 것"이라며 "현행법상 회사로서는 이런 분쟁에서 전속계약 유효 확인 소송을 제기하거나 손해배상 청구 외엔 다른 대처 방법이 없어 소송이 진행되는 긴 시간 동안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선례가 남을까 이번 1심 결과에 업계 관계자들이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태의 발단이었던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는 10월 16일 새로운 연예기획사 '오케이'(ooak)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엔터 사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뉴진스가 '오케이'의 1호 영입 아티스트가 될 것인지도 초미의 관심사였지만 이번 1심 패소에 따라 뉴진스는 다시 어도어 소속 아티스트로 활동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뉴진스 측은 이날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고, 어도어는 뉴진스의 정규 앨범 발매 등 활동을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라며 소속사로서의 지원 의무를 다 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소송전 '2라운드'가 확실시된 상황에서 뉴진스는 다시 긴 시간 무대가 아닌 법정에 설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어도어와의 합의를 통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인지 갈림길에 서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