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이 끝난 후 사법부는 재판 5건 기일을 모두 ‘추후 지정’했다. 사실상 재판이 중단된 셈이다. 최종심 선고가 가장 임박해 있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파기환송심은 지금까지도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대선 개입 의혹’과도 맞물려 있는 사안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이 재판 기일을 추후 지정하며 “헌법 제84조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한 바 있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 불소추특권을 명시하고 있다. 내란이나 외환죄를 제외하면 재직 중에 발생한 범죄로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 내용이다. ‘내란이나 외환죄 제외’ ‘재직 중 발생 범죄’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 등 각 문구마다 법적 해석이 갈린다.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헌법 제84조는 적용된다. 대선 전인 5월 민주당이 발의한 ‘현직 대통령 재판중지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구도로 치러지는 대선을 앞두고 ‘위인설법’에 돌입했다”고 비판했다.
대선 이후 민주당은 본회의에 부의돼 있는 이 법안을 처리하려 했다. 그러나 법원이 이 대통령 관련 재판 기일을 추후 지정하면서 법안 처리를 보류했다. 이 대통령 재판이 중단된 상황에서 굳이 법안을 밀어붙일 필요가 없다고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잠잠했던 현직 대통령 재판중지법 입법 논란은 국정감사 기간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시작은 헌법 제84조에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은 사법부 인사 발언이었다. 10월 20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파기환송심은 다시 기일을 잡아 (재개)할 수 있느냐”고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에게 질의했다. 김 고등법원장은 “이론적으로는 그렇다”면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론적’이라는 전제 아래 이 대통령 재판 재개 가능성을 시사한 사법부 고위 인사 발언에 민주당은 발끈했다. 10월 26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현직 대통령 재판중지법 재추진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강경파 의원들이 이 대통령 재판 재개를 할 수 없도록 법조항으로 못 박아야 한다는 취지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민주당은 일부 의원 개인 차원으로 의견이 개진됐을 뿐, 지도부가 공식적으로 논의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입법 재추진을 논의하면서 지도부 차원 공식 논의가 아니었다고 한 점은 내부 지지층의 호응도와 국민 여론을 지켜보겠다는 뜻”이라면서 “최근 일련의 부동산 정책과 정부 당국자 갭투자 논란이 불거진 점을 의식하는 차원에서 해당 법안을 궤도에 올려놓는 프로세스를 상당히 조심스럽게 진행하겠다는 의도로 읽힐 수 있다”고 바라봤다.
백승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법안 재추진 기준은 사법부 태도가 될 것이라는 취지 발언을 했다. 백 원내대변인은 10월 28일 국정감사 대책회의 이후 취재진과 만나 “국감 중에 드러난 고등법원장과 조희대 대법원장 발언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이런 사법부 태도가 우리(민주당)가 재판중지법을 밀고 나갈지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의 ‘이론적 재판 재개 가능성’ 시사와 맞물린 조 법제처장 발언은 정치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여권에서도 “공직자 답변 자세로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10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을 위한 사법부를 만들기 위한 사법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이 대통령은 자신의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들을 국정 주요 자리에 알박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 5개 재판이 재개돼야 한다”면서 “이 대통령 무죄를 맹신하는 (조원철) 법제처장 발언에 따른다면, 무죄가 확실한 이 대통령 재판을 재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장 대표는 “재판중지법이 통과된다면 그 즉시 이재명 정권이 중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 대표는 10월 26일 의원총회에서도 “법원이 너무 폐쇄적”이라면서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수직화돼 있는 (법원) 인사 및 행정을 좀 더 민주화하는 것도 당·정·대 조율을 거쳐 토론해볼 시점이 왔다”고 했다.
야권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사법개혁 칼날을 휘두르자, 사법부에서 ‘이론상 재판 재개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라면서 “민주당이 현직 대통령 재판중지법 재추진과 법원행정처 폐지 등 훨씬 더 강력한 카드를 꺼내면서 사법부를 압박하고 있는데, 대통령 사법리스크를 완벽히 해소하기 위해 사법부를 향해 협박과 흥정을 하듯 힘겨루기를 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현직 대통령 재판중지법은 헌법재판소 판단을 받아봐야 하는 사안”이라면서 “권력을 수호하기 위해 삼권분립 근간을 흔드는 강력한 압박이 이어지는 것에 우려가 있다”고 했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민주당의 현직 대통령 재판중지법 재추진 논의가 표출한 것과 관련해 “아직 논의를 하고 있다는 부분”이라고 전제한 뒤 “해당 법을 입법하게 되면 굉장한 국민적 반감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신 교수는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정 지위를 가진 국민에게 예외를 적용하는 사항을 법으로 만든다는 점은 법치의 기본 원칙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이 ‘이론상 수사가 가능하다’고 언급한 대목과 관련해 신 교수는 “이 발언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을 얘기한 것”이라면서 “법치가 법 앞의 평등을 전제로 하는데, 현직 대통령 재판중지법은 특정인을 위한 법이나 다름 없다.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진행돼야 한다, 말아야 한다는 것을 떠나서 특정인을 위한 법은 법치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