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테랑 후야오위 꺾고 국제대회 첫 우승…“누구와 붙어도 자신” 한국 바둑 미래 기대감 ‘업’
[일요신문] 한국 바둑계의 해묵은 숙제였던 ‘신진서 이후’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등장했다. 제주 출신의 19세 신예, 김승진 7단이 그 주인공이다. 김승진은 지난 10월 26일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열린 제7회 녜웨이핑배 바둑 마스터스 결승전에서 중국의 베테랑 후야오위 8단을 229수 만에 흑 1집 반으로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21년 프로 입단 이후 4년 만에 이룬 첫 국제대회 우승이다.
제7회 녜웨이핑배 한중일 바둑 마스터스 김승진 7단(오른쪽)과 후야오위 8단의 결승전. 사진=한국기원 제공이번 우승은 단순한 개인의 영광을 넘어 한국 바둑계에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그동안 한국은 신진서 9단이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지만, 그 뒤를 이을 차세대 주자가 보이지 않아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반면 중국은 왕싱하오, 투샤오위 등 10대 기사들이 세계무대를 휩쓸며 두터운 선수층을 과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터져 나온 김승진의 우승은 한국 바둑의 미래 경쟁력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녜웨이핑배’는 중국 바둑의 영웅 녜웨이핑 9단을 기려 2019년 창설된 대회다. 20세 이하 주니어 챔피언과 40세 이상 시니어 챔피언이 최종 결승을 치르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김승진의 우승 과정은 내용 면에서도 흠잡을 데 없었다. 주니어조 첫판 상대는 현재 중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예 푸젠헝 7단. 사실상의 결승전으로 불린 이 대국에서 승리하며 기세를 올린 그는 일본의 유망주 후쿠오카 고타로 7단에 이어 박지현 7단과의 형제대결에서도 승리하며 주니어조 정상에 섰다. 결승에서는 지난대회 우승자이자 이번에도 쟁쟁한 시니어 고수들을 모두 꺾고 올라온 후야오위 8단의 노련함마저 넘어서며 완벽한 우승을 일궈냈다.
이러한 눈부신 성장의 배경에는 ‘자신감’이라는 확고한 무기가 있었다. 2006년생인 김승진은 한 살 위 한우진 9단, 한 살 아래 김은지 9단과 함께 차세대 주자로 꼽히지만, 지금까지는 두 라이벌에게 상대 전적에서 밀리며 아쉬움을 삼켰다. 하지만 이제 그는 달라졌다.
김승진은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상대 전적은 과거의 일일 뿐이다. 이제 다시 붙는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자신감의 원천은 내면의 변화에 있었다. 김승진은 “예전엔 상대를 너무 의식해 제 바둑을 두지 못했는데, 최근 제 바둑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면서 누구와도 자신 있게 둘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상대를 의식하기보다 자신의 스타일에 집중하면서 잠재력이 폭발한 것이다.
우승을 차지한 김승진 6단. 창하오 중국기원 원장(왼쪽)이 시상했다. 사진=한국기원 제공그가 말하는 ‘내 바둑’이란 전투를 피하지 않는 공격적인 기풍과 강한 뒷심을 의미한다. 그는 “전투 바둑을 좋아하고, 후반에 승부를 보는 스타일이다. 상대적으로 종반전에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수읽기가 약하고 경솔한 수가 나올 때가 있는 등 고칠 점도 많다”며 스스로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처럼 단단한 자기 확신과 객관적인 자기 평가가 그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주에서 그를 처음 발굴한 강순찬 아마 7단(강순찬 바둑교실 원장)은 “승진이는 어린 나이에도 시키지 않아도 밤늦게 혼자 남아 공부할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다. 또 재능도 대단해서 초등학교 시절 나와 같이 나간 도내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재능이 있었다”며 “타고난 재능에 노력이 더해졌기에 지금의 성과가 가능했다”고 제자의 성공을 기뻐했다.
스승의 믿음 속에서 성장한 김승진은 지난 1월, 국내대회인 이붕배 신예 최고위전에서 첫 타이틀을 획득하며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김승진은 “우선 국내대회에서 빠른 시간 안에 타이틀을 차지하는 게 목표다. 그 다음에 세계대회 정상도 노려보고 싶다. 국가대표 팀에서 신진서 9단과 한번 대국한 적이 있는데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느꼈다. 열심히 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신진서 9단에게만 집중됐던 한국 바둑의 스포트라이트가 ‘나의 바둑’을 찾은 새로운 스타에게로 향하고 있다. 이번 우승을 발판 삼아 김승진이 한국 바둑의 든든한 허리로 성장할 수 있을지 바둑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승부처 돋보기] 제7회 녜웨이핑배 한중일 바둑 마스터스 결승전
김승진 7단(한국) 후야오위 8단(중국) 242수 끝, 흑1집반승
장면도[장면도] 느슨한 연결
팽팽한 초반. 흑을 든 김승진이 상변 폭을 넓히면서 은근히 좌상 백돌의 엷음을 노리는 장면. 그런데 백2의 연결이 느슨했다.
실전진행[실전진행] 이창호 9단처럼
인터뷰에서 “이창호 9단의 바둑을 좋아한다”던 김승진 6단. 흑1부터 7까지가 뭉툭하고 둔탁하지만, 전성기 이창호 9단을 떠올리게 하는 수법이었다. 흑이 승기를 잡은 모습.
참고도[참고도] 역습과 붙임
백은 연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백2로 뛰어 역습에 나서는 것이 좋았다. 흑3으로 돌볼 때 백4가 적시의 붙임. 계속해서….
참고도 계속[참고도 계속] 흑이 공격 목표
전도에 이어 백6까지 좌변에 뒷맛을 남겨둔 다음 백8이 안성맞춤. 백을 위협하던 상변 흑▲ 넉 점이 오히려 공격 목표가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