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즌이 끝난 야구장은 한적하기 이를 데 없다. 관중들의 함성과 응원 소리가 사라진 텅 빈 그라운드 풍경이 시즌 종료를 대변하는 듯했다. 그러나 비시즌이라고 해도 대부분의 선수들은 매일 야구장으로 출근한다. 마무리 캠프에 참가한 선수들도 있고, 개인적으로 부족한 훈련을 채우는 선수들도 눈에 띈다.
노경은도 매일 야구장에 나온다. 회복 훈련과 체력 훈련을 병행하며 벌써 내년 시즌을 준비한다. 그가 최근에 인터뷰 때마다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도대체 ‘그 나이에도’ 이렇게 잘 던지는 비결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노경은은 질문이 익숙한 듯 씩 웃으며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특별한 건 없다. 루틴을 지키고 해야 할 운동이 있으면 그걸 다음으로 미루지 않고 그날 꼭 하고 퇴근한다. 그런 루틴이 쌓여 한 시즌 내내 일정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가끔은 지금보다 어렸을 때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서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그때 이런 방법들을 실행했더라면, 그때 이런 루틴을 생활화했더라면 나에게 ‘야구의 봄’이 조금 더 빨리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이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만약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느 시기로 돌아가고 싶은지를. 노경은은 스물다섯 살의 나이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때는 두산에서 야구할 때인데 야구를 너무 몰랐다. 2군이나 1.5군 생활이 정말 힘들었다. 선배들에게 야구 관련 질문을 하면 ‘그냥 힘 빼고 던져’라고만 했지, 디테일하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야구 관련 데이터나 영상도 찾기 힘들었다. 야구로 쌓인 스트레스를 훈련으로 푼 게 아니라 유니폼 벗고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방법으로 풀었다.”
지금은 야구 관련 정보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메이저리그를 보고 성장한 선수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간다. 노경은은 후배들이 그런 환경에서 성장하는 게 부럽기만 하다.
“SSG에서 여러 후배들을 보게 되는데 이로운, 송영진, 조병현, 김건우 등 1군에서 많은 시합을 소화한 선수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너희들은 정말 야구를 잘하는 선수들이다”라고. 내가 후배들 나이 때에는 야구를 아예 몰랐다. 공을 어떻게 던지고, 타자와 어떻게 승부해야 되고, 체인지업을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를 정말 몰랐다. 프로팀에 소속돼 있으니까 단체 스케줄에 따라 움직였지 내 자신의 야구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몰랐다. 그래서 지금의 후배들을 보면 정말 대견하고, 기특하다.”

“지금은 두산 2군 이천 훈련장이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지만 당시에는 샤워실 샤워 부스가 2개밖에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나처럼 신인 선수들은 샤워할 때까지 대기 시간이 길었다. 기다리다 못 해 소변기 옆에 호수 꽂아서 그 물로 샤워를 했다. 2군 경기 끝나면 버스 앞 아스팔트에 앉아 햄버거를 먹었다. 그게 23년 전의 일이다. 지금 젊은 선수들은 온전히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퓨처스 팀도 마찬가지다.”
노경은에게 지금도 자신이 ‘생계형 투수’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그는 “조금 승격돼서 이젠 ‘하루살이’가 아니라 ‘1년살이’”라고 수정한다. 올 시즌을 앞두고 2+1년의 FA 계약을 한 터라 어느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는 말도 덧붙인다.
2021시즌이 끝나고 당시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었던 노경은은 방출 수순을 밟았다. 현역 연장이 불투명한 상황이었지만 노경은은 포기하지 않고 SSG 입단 테스트 끝에 랜더스 유니폼을 입는다. 당시 보장 연봉이 1억 원이었다.
SSG에서의 노경은은 20대 시절을 능가하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2022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41경기 12승 5패 1세이브 7홀드 3.05의 성적으로 SSG의 통합 우승에 기여했다. 2023년에는 전문 불펜투수로 변신해 76경기에서 83이닝을 소화했고, 30홀드로 홀드 부문 2위에 올랐다. 그렇게 30대 후반의 나이에 전성기를 연 노경은은 만 40세였던 지난해 77경기 82.2이닝 8승 5 패 38홀드 평균자책점 2.90의 성적으로 2년 연속 30홀드를 기록하며 KBO리그 역대 최고령 홀드왕에 등극했다.
2024시즌을 마치고 두 번째 FA 자격을 얻은 노경은은 SSG와 계약기간 2+1년 총액 25억 원의 계약을 맺었고, 올해도 77경기 80이닝 3승 6패 3세이브 35홀드 평균자책점 2.14의 성적을 올렸다. 노경은의 FA 계약 총액에는 계약금 3억 원, 연봉 13억 원, 옵션 9억 원이 포함됐다. 9억 원의 옵션 내용이 궁금했다.
“옵션 내용을 자세히 밝히기는 어렵지만 FA 계약 첫해인 올해는 10원 하나 빠트리지 않고 다 받을 수 있게끔 옵션 내용을 달성했다. (구체적인 옵션 내용을 묻자) 이닝보다는 성적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항목인데 나는 자신있어서 흔쾌히 받아들였다.”
노경은의 올 시즌 마지막 등판은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이었다. 김광현이 선발로 나서 5이닝 1피안타 5탈삼진 1실점 후 노경은이 마운드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공이 밋밋하게 들어가면서 김성윤에게 볼넷을 허용했고, 구자욱과 르윈 디아즈에게 연속 안타를 내주며 실점했다.
“그날은 불펜에서 정말 좋은 컨디션이었고 자신도 있었다. (김)광현이가 엄청난 호투를 펼치고 내려온 터라 내가 잘 막아줘야 하는데 막상 마운드에 오르니 공이 제대로 가질 않더라. 김민 이후 8회 등판한 (이)로운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팀에도 미안했고. 홈으로 다시 경기를 끌고 가려 했지만 4차전에서 우리의 야구가 멈췄다. 아쉬움과 미안함이 공존한 시간들이었는데 그럼에도 후배들이 잘해줬고, 특히 이로운이라는 투수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어 행복했다. 이로운은 올 시즌 한 단계가 아닌 두 단계 이상 올라섰을 정도로 높이 평가해주고 싶은 투수다.”
노경은은 지난 7월 4일 창원 NC전에서 시속 150km의 공을 던졌다. 올 시즌 처음 선보인 구속이 아니었지만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도 150km의 공을 선보이니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시속 148km가 최고 구속이라고 생각했는데 150km가 나오니 조금씩 욕심이 생긴다. 내년에는 그 이상의 숫자가 나왔으면 한다, 나는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육이 타이트해졌을 때 드라이브라인(Driveline) 프로그램으로 풀어주는 방법을 활용했다. 드라이브라인을 꾸준히 유지했던 게 구속 증가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드라이브라인을 안하고 웨이트트레이닝만 했다면 그 스피드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비시즌에도 공 던지는 걸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공 던지기를 이어가다 스프링캠프에 합류하면 90% 정도의 몸을 만든 상태가 된다. 그걸 해마다 반복하는 중이다.”
노경은은 자신보다 한 살 어리고, 성남고 후배인 LG 트윈스 김진성을 떠올렸다. 김진성도 NC 다이노스에서 방출된 후 LG 유니폼을 입었고, LG에서 불펜 핵심으로 활약하며 노경은과 홀드왕 경쟁을 벌였다.
“(김)진성이를 보면 ‘야구 괴짜’의 이미지가 있다. 몸 관리 잘하고, 자기 몸 잘 아끼고, 마인드가 굉장히 단순하다. 야구는 단순해야 잘하는데 진성이가 딱 그런 케이스다. 타자를 상대할 때 이 선수는 포크볼 3개로 끝내면 되지, 이 선수는 직구 던지다 포크볼로 마무리하면 된다는 등 야구를 대하는 마인드가 단순하다. 그 점이 생각이 많은 나로선 부러운 포인트다. 우리 팀이 한국시리즈에 올라 진성이와 맞대결하는 상상도 했는데 올해는 못 만났지만 내년에는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노경은은 자신의 홀드왕보다 김진성이 끼게 될 챔피언 반지가 더 부럽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진행할 때만 해도 한국시리즈 우승팀이 결정되지 않았는데 노경은은 “진성아, 꼭 반지 끼고 만나자. 내가 커피 살게. 파이팅”이라며 후배를 향한 응원을 잊지 않았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