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시즌 한국시리즈에서 LG 트윈스와 한화 이글스의 맞대결이 결정됐을 때 대부분의 야구 전문가들은 ‘4승 1패’ 또는 ‘4승 2패’로 정규시즌 우승 팀인 LG의 우승을 점쳤다. 계단식으로 진행되는 KBO리그 포스트시즌 제도가 시행된 후 정규시즌 1위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확률이 85.3%에 달하는 터라 LG의 우승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LG는 1, 2차전에서부터 확연한 체급 차이를 보여주며 한화를 압도했다. 3차전에서는 8회 불펜진의 난조로 역전패를 당했지만 4차전에서는 9회 6득점 역전승으로 3승을 거두고 5차전을 맞이했다. 5차전에서의 LG는 한화를 4-1로 꺾고 1990, 1994, 2023년에 이어 통산 네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한화를 상징하는 류현진이 8회 불펜 등판을 자처했음에도 LG의 기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야구 전문가들은 이번 한국시리즈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인터뷰에 응한 야구인들은 모두 ‘4차전’을 지목했다. 한화가 1승2패 후 2승을 거둘 수 있었던 중요한 승부였고, 8회까지 4-1로 앞선 상황이었기 때문에 9회 한화가 6실점하며 무너지는 모습은 충격이었다는 내용이었다.
차우찬(KBSN스포츠) 해설위원은 “4차전에서 한화가 역전패 당했던 게 한국시리즈의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었다”라고 말했다.
“한화의 선발로 나선 라이언 와이스가 8회까지 2사후 신민재에게 2루타 맞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는데 당시 와이스는 투수 교체를 강하게 거부했었다. 물론 와이스가 117구를 던진 터라 김경문 감독 입장에서도 고민이 많았겠지만 와이스는 아웃카운트 1개 남은 걸 자신이 해결하고 싶어 했는데 결국 교체가 됐고, 김범수가 올라와 김현수에게 초구 안타를 허용하면서 2루에 있던 신민재가 홈을 밟게 됐다. 김경문 감독은 김범수가 문보경한테 다시 안타를 허용하자 오스틴 딘 타석 때 김서현을 마운드에 올렸다. 한화 입장에선 다행히 오스틴이 플라이 아웃으로 물러나면서 이닝을 끝냈는데 문제는 9회 김서현이 다시 마운드에 오르며 모든 게 꼬였다. 김서현이 선두 타자인 오지환을 볼넷으로 내보냈고, 이후 박동원에게 홈런을 맞지 않았나. 오지환에게 볼넷을 허용했을 때 투수를 교체했어야 했는데 김경문 감독은 계속 김서현을 밀고 가다 박동원에게 투런포를 맞고 박해민에게 볼넷을 허용하자 그제야 박상원을 마운드에 올렸다. 당시 현장에서 중계를 하고 있던 터라 그 장면이 두고두고 잊히질 않는다.”

“좋은 투수가 마운드를 내려가면 그 뒤를 잇는 불펜이 더 좋은 공을 던지기 어렵다. 상대는 선발 투수가 내려가기만을 기다렸을 텐데 말이다. 나도 선수 시절에 마무리 투수가 있었지만 130구 이상을 던지며 완투한 적이 있었다. 지든 이기든 8회까지 선발 투수를 끌고 왔다면 그 선수가 경기를 마무리하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였다.”
차우찬은 2018년 10월 6일 두산 베어스와의 시즌 마지막 맞대결에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134구를 던지며 완투했고, LG의 두산전 17연패 탈출 성공에 도움을 줬다. LG가 3-1로 앞선 9회말 2사까지 잡은 다음 만루 위기에 몰렸지만 홀로 마운드를 지키며 중요한 1승을 완투로 만들었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는 유독 한 선수가 집중 조명을 받았다. 한화의 마무리 투수 김서현이다. 일부 야구 팬들은 “한화 가을야구는 ‘김서현 시리즈’”라며 김서현에게 쏠리는 관심과 경기 결과에 웃고 울었다.
김서현은 한화의 정규시즌 1위 도전이 좌절된 10월 1일 인천 SSG 랜더스전에서 두 차례의 2점 홈런 헌납을 시작으로 플레이오프 2경기 1이닝 2피홈런 3실점, 한국시리즈 3경기 2⅔이닝 1피홈런 3실점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올렸다. 김서현의 10월 평균자책점은 20.77에 달한다. 김서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제기될 때마다 김경문 감독은 “김서현이 잘해야 한화가 우승한다”며 ‘믿음의 야구’를 밀고 갔다.
한화와 LG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정근우는 김경문 감독의 김서현 중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감독이 선수를 믿고 가는 건 맞지만 단기전에서는 이런 흐름이 굉장히 위험한 선택이다. 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팀 전체 선수들과 프런트, 팬들과 함께하는 건데 선수 한 명에게 시선이 쏠리는 건 선수에게도 부담이 큰 상황이었을 것이다. 김경문 감독은 “김서현이 살아나야 한다” “김서현이 해줘야 한다”라고 말했는데 너무 자신과의 약속에 치중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지금은 믿음의 야구도 중요하지만 결과를 내야 하는 가장 큰 무대 아닌가. 선수 한 명의 활약이 아닌 팀 전체를 보고 시리즈를 이끌어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정근우는 반면에 LG 염경엽 감독은 승리에 대한 간절함을 경기 운영을 통해 선수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봣다.
“LG가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10-5로 앞선 7회 말 무사 2루에 박동원이 타석에 들어섰을 때 당시 염경엽 감독은 맹타를 휘두르던 박동원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하며 득점 의지를 드러냈다. 그만큼 빈틈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메시지였고, 그 경기를 반드시 잡겠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경기 중 한 장면이지만 박동원 번트 지시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2년 전 우승을 경험한 감독답게 염경엽 감독은 큰 그림을 그리고 시리즈를 운영했다. 한국시리즈 준비를 정말 잘했다는 게 경기 전반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장성호(KBSN스포츠) 해설위원도 한국시리즈 5차전 중 4차전 승패가 시리즈 운명을 정했다고 봤다.
“LG가 4차전을 잡으면서 한국시리즈 우승이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3승 1패로 5차전을 맞이하는 것과 2승 2패로 경기를 치르는 건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시리즈 전체를 봤을 때 LG 선수들의 움직임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만큼 준비를 철저히 해서 올라왔다는 게 느껴졌다. 반면에 한화는 삼성과의 플레이오프를 5차전까지 끌고 간 후유증이 나타났다.”
장성호 위원은 4차전 승부처로 김서현 교체 타이밍이라고 꼽았다.
“김서현이 9회 박동원에게 홈런 맞았을 때 4-3이 됐는데 그때 바로 교체를 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싶다. 이후 천성호를 유격수 땅볼로 아웃시키긴 했어도 박해민에게 볼넷을 주고 주자를 깔아놓고 박상원이랑 교체됐기 때문에 그 장면이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상하게 포스트시즌이 ‘김서현 시리즈’가 됐다. 김서현이 10월에 안 좋았다면 약간 돌아가는 방법도 좋았을 텐데 계속 등판시키는 걸로 김서현 살리기를 고집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김서현이 뛰어난 기량을 갖고 있어도 이제 프로 데뷔한지 3년 차된 선수다. 부진했던 엄상백, 안치홍은 엔트리에서 과감히 제외시키면서 안 좋은 김서현을 왜 계속 안고 가려 했는지가 의문이다. 김경문 감독 나름의 생각과 판단이 있었겠지만 그런 움직임이 한국시리즈에서 1승 4패의 성적표를 받아들게 했다고 본다.”
차우찬 위원은 4차전 중계를 앞두고 그라운드에서 류현진과 만나 짧게 대화를 나눴던 상황을 소개했다.
“(류)현진이가 오늘(10월 30일) 꼭 이겨서 5차전 치르면 6차전에 자신이 선발 등판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베테랑으로서 ‘가을야구’에 별로 보여준 게 없어 너무 미안한데 마지막에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5차전 승부가 기울어지면서 8회 불펜으로 나선 것 아닌가. 한 마디로 6차전 등판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류현진이 어떤 마음으로 8회에 등판했을지 짐작된다. 그래서 류현진이 마지막에 마운드에 오른 장면을 보고 울컥하기도 했다. 한화의 가을야구는 준우승으로 마무리 됐지만 올 시즌 한화의 활약 덕분에 프로야구가 더 재미있었다. LG는 우승으로 고생한 보답을 얻었고, 한화는 많은 팬들과 응원을 선물로 받은 것 같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