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경의 공백은 리그 판도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큰 변수다. 외국인 선수 활약상에 팀 성적이 크게 좌우되는 V리그다. 김연경은 외국인 선수, 혹은 그 이상의 존재감을 자랑해왔다. 은퇴를 눈앞에 둔 지난 시즌에도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리그 상위권 기록을 뽐냈다.
김연경은 V리그에서 흥국생명 한 팀에서만 몸을 담아왔다. 실제 흥국생명은 김연경을 보유한 기간 리그 최상위권을 꾸준히 지켜왔다. 장기간의 해외 생활 이후 돌아온 V리그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횟수는 1회에 그쳤으나 빠짐없이 챔피언결정전 무대에 올라 경쟁에는 나섰다. 그런 김연경의 은퇴로 흥국생명으로선 전력 공백이 불가피했다. 자연스레 리그 전체 판도에도 변화가 예상됐다.
팀의 변화는 필연적이었다. 김연경이 엔트리에서 빠졌고 사령탑마저 바뀌었다. FA 시장에서는 '큰손'의 면모를 보였다. 팀 내 큰 비중을 차지하던 김연경이 떠났기에 샐러리캡에서 여유가 생긴 흥국생명이었다. 시장 '최대어'로 평가받던 미들 블로커 이다현을 전격 영입했다. 우승을 함께한 외국인 선수 투트쿠와는 결별하고 V리그 경력자 레베카 라셈과 손을 잡았다.
뚜껑을 연 시즌, 흥국생명은 적지 않은 낙폭을 보이는 중이다. 김연경이 몸담은 2020년대의 4시즌간 1위 또는 2위만을 오갔으나 현재 5위로 '봄배구'가 불가능한 순위권에 놓여 있다. 영입생 이다현, 아시아 쿼터 피치 등이 돌아가며 부상을 입었다. 레베카 또한 경쟁팀의 에이스에 비하면 아쉬운 기록을 내고 있다.

판도 변화가 예상되던 V리그, 시즌 전 독보적인 우승후보로 지목된 팀은 IBK기업은행이다. 여자부 감독 7명 중 5명이 기업은행을 우승후보로 꼽았다. 날카로운 공격력을 비롯해 팀의 전력이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약점으로 꼽히던 리베로 포지션에 리그 최고 리베로 자원인 임명옥을 트레이드로 보강했다.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는 1순위로 빅토리아 댄착을 선발했다. '모의고사'인 V리그 정규리그 전 실업배구 대회에서 준우승, KOVO컵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수년간 하위권을 전전하던 설움을 날릴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기업은행은 리그 첫 경기부터 패배를 떠안더니 두 번째 경기 승리 이후 내리 7연패를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 4시즌간 팀을 이끌던 김호철 감독이 사퇴했다. 창단 직후부터 강팀으로 군림했던 기업은행은 구단 역사상 최초 리그 최하위로 시즌을 마무리할 위기에 처했다.
기업은행의 예상 밖 부진은 부상이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앞장서서 팀을 이끌어야할 이소영은 정규리그 2경기 출전, 5득점에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1라운드 일정을 마치기도 전에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구단에 계약 해지를 요청하는 보기 드문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연봉 총액 7억 원의 '거물급' 자원임을 감안하면 기업은행으로선 큰 악재였다. 이외에도 주전 세터 김하경, 아시아쿼터 킨켈라 등이 부상을 안고 있다.
#압도적 선두질주, 한국도로공사
기업은행이 비운 선두 자리에는 한국도로공사가 올라 있다. 당초 기업은행에 이어 우승 후보로 2표를 받았으나 그 기대를 넘어서는 선전을 펼치고 있다.
에어컨 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로 모마 바소코를 영입했다. 장기간 V리그에서 활약, 소속팀의 우승을 이끈 경력도 있으나 현대건설에서의 지난 시즌 활약이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도로공사는 활용법에 따른 재기 가능성을 봤고 모마는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모마의 맹활약에 국내 에이스 강소휘, 아시아 쿼터 타나차도 시너지를 내고 있다. 강소휘는 김연경이 빠진 국내 선수 득점 1위 자리를 차지했다. 타나차 역시 아시아 쿼터 자원 중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 중이다.
도로공사는 전력 공백 우려를 사기도 했다. 수년간 팀의 수비를 책임졌던 리베로 임명옥을 트레이드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모기업의 예산 제한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외부영입이 없는 상황에서 내부 자원인 문정원이 대체자로 낙점을 받았다. 그간 아포짓 스파이커로만 활약하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처음으로 포지션을 바꿔 팀의 상승세를 뒷받침하고 있다.
개막 이후 첫 10경기 동안 단 1패만 기록한 도로공사는 향후 더욱 단단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팀의 주장인 베테랑 미들 블로커 배유나가 그간 부상으로 빠져 있다 복귀를 앞두고 있는 덕분이다. 시즌 첫 경기에서 어깨 부상을 입은 그는 12월 초 복귀가 예상된다. 팀으로선 전력 상승효과를 누릴 수 있다.
리그 내 눈길을 끄는 또 다른 변화 중 하나는 '막내 구단' 페퍼저축은행의 선전이다. 2021-2022시즌부터 리그에 합류한 페퍼저축은행은 예외 없이 정규시즌 최하위를 도맡아왔다. 꼴찌 탈출을 위해 적극 투자를 이어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하지만 직전 시즌 11승으로 창단 최초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더니 이번 시즌 3위를 달리며 중상위권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외국인 선수 조이, 아시아 쿼터 시마무라가 팀의 공격을 이끄는 가운데 박은서, 박정아, 고예림 등이 지원에 나서는 중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