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16일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한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하고 있는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 대상 업무보고는 파격 그 자체다. 헌정사 최초로 전국순회 및 생중계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이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의 업무보고 내용을 받고, 관련 지시를 내리는 장면이 날 것 그대로 공개되고 있다.
업무보고 생중계는 12월 11일부터 12월 19일에 걸쳐 진행됐다. 앞서 언급했던 장점들과 함께 신선하다는 반응이 나왔지만 정책과 동떨어진 논쟁이 펼쳐지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 공개 발언 빈도가 높아지면서 설화가 잇따르는 형국이다. 환단고기 논란,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과의 설전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환단고기 발언 논란은 이재명 대통령이 12월 12일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을 향해 “환빠 논쟁이 있죠”라고 물으면서 시작됐다. 박 이사장은 “모른다”고 답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환단고기 주장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비하해서 환빠라고 부른다”면서 “고대 역사 부분에 대한 연구를 놓고 지금 다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동북아역사재단은 고대 역사 연구를 안 하느냐”면서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니냐”고 질문을 이어갔다.
환단고기는 한민족 상고사를 다룬 책이다. 이미 위서로 판명났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12월 18일 “이재명 대통령이 스스로 ‘환빠’라고 선언했다”면서 “중국 동북공정 못지않은 이재명의 역사공정”이라고 지적했다. 장 대표는 “유사 역사학과 정통 역사학을 같은 수준에 올려놓고 단지 관점의 차이라고 규정한 것”이라면서 “대통령의 즉흥적 실언이라고밖에 할 수 없으며, 대한민국 역사를 자신들의 시각에 맞춰 다시 쓰려는 역사 왜곡 신호탄”이라고 비판했다.

이 사장은 “인천공항에서 주로 하는 업무는 아니”라며 머뭇거렸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그러면 안 한다는 얘기네”라고 했다. 이 사장은 해당 업무가 세관 담당이라는 취지 설명을 이어갔다. 이 대통령은 이 사장 답변에 대해 “말이 참 길다”면서 “(책갈피 달러 유출이) 가능하냐 안 하냐를 묻는데 자꾸 옆으로 센다”고 지적했다.
이 사장은 이 대통령과의 질의응답 이틀 만인 12월 14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공항을 30년 다닌 직원들도 보안 검색 분야 종사자가 아니면 책갈피 속 달러 검색 여부는 모르는 내용”이라면서 “보안 검색 과정서 외화가 발견되면 세관에 인계할 뿐 지폐 자체는 보안 검색 탐지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사장은 “그 일(업무보고 당시 대화 내용)로 온 세상에 ‘책갈피에 달러를 숨기면 검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100% 수하물 개장 검색을 하면 공항이 마비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12월 13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의 인천국제공항공사 업무보고가 참 보기 민망했다”면서 “공기업 사장을 세워놓고 몰아세우는 그 태도, ‘대통령 놀이’에 심취한 골목대장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비판했다.
나 의원은 “질문 내용도 지엽적인 꼬투리잡기 드잡이용, 옹졸한 망신 주기일 뿐 국민과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면서 “‘책갈피 달러 밀반출’ 어디서 많이 들어본 기시감이 든다했더니 2019년 쌍방울 임직원들이 대북 송금을 위해 달러를 밀반출할 때 썼던 그 수법 아닌가”라고 했다. 이 대통령 발언과 이 대통령 사법리스크 중 하나인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을 연결짓는 취지 발언이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번 업무보고 생중계가 정치권 논쟁의 시발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이재명 대통령 발언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이 부분을 누군가는 ‘위트’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누군가는 ‘갑질’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방 난임 치료나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한지를 묻는 이 대통령 발언도 화제를 모았다. 특히 탈모 치료 건강보험 적용 가능성과 관련해선 이 대통령이 “옛날엔 이걸 미용이라고 봤는데, 요새는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발언했다. 이 대통령 발언 이후 증시에서 탈모 테마주가 일제히 급등하기도 했다. 국정 관련 본질적 주제를 다루지 않더라도 대통령 말 한마디가 작지 않은 나비효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12월 18일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변 국장 답변에 오류가 있다는 점을 알리고, 답변 내용을 정정했다. 송 장관은 “질문을 이해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변 국장이) 일부 혼선이 있었다”면서 “대통령실은 답변 내용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일부 오류를 파악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업무보고가 생중계되면서 다양한 변수와 상황이 나오고 있다. 업무보고를 하는 공무원들, 방송을 보는 국민들 모두 처음 접하는 장면들이다. 그러다 보니 업무보고를 바라보는 시선도 천차만별이다. 여권에선 이 대통령의 ‘사이다 소통 행보’라며 호평을 내놓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정치 쇼’라며 폄하한다.
12월 15일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번 업무보고는 이재명 정부 출범 6개월이 된 시점에서 내각의 속도감 있는 정책 이행을 위해 마련됐다”면서 “국민주권정부의 국정운영 청사진을 국민께 직접 보여드리기 위해 역대 최초로 생중계됐다”고 밝혔다.
12월 16일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 업무보고는 유능과 소통의 상징”이라면서 “보고는 숨기지 않고, 과정은 공개하며, 질문은 현장에서 던지고, 답은 실행으로 받겠다는 의지”라고 했다. 김 대변인은 “업무보고 과정서 드러난 과제는 민생뿐 아니라 정부 운영의 기본부터 바로 세우라는 요구였다”면서 “낙하산과 알박기, 책임 회피와 같은 관행이 반복된다면 어떤 정책도 현장에서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고 했다.
12월 18일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업무보고는 흥행을 위한 콘텐츠가 아니”라면서 “정책 성과와 실패를 점검하고 국정 방향을 바로잡는 엄중한 자리”라고 지적했다. 최 대변인은 “이(업무보고)를 대중오락 콘텐츠에 빗대어 ‘재미’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순간 국정은 책임 영역에서 쇼의 영역으로 밀려난다”면서 “실제로 최근 업무보고 생중계에선 정책점검보다 ‘장면 만들기’에 가까운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대변인은 “(업무보고서 불거진 각종 논란이) 불필요한 소모전을 부추겼다”면서 “대통령의 거친 언사와 특정 기관장에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고 힐난한 장면은 정쟁으로 확산되고, 야권 출신 공공기관장에 대한 찍어내기 압박으로 비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업무보고가 대통령의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무대로 변질되고 있다”며 “심각한 문제는 공직사회에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비대위원장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12월 15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업무보고 생중계와 관련한 평을 내놨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내가 보기엔 이 대통령이 (스스로) 대통령으로서 굉장히 잘한다는 생각, 자신을 갖기 때문에 그러는(업무보고를 생중계하는) 것 같다”면서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기엔 그런 과정에서 실수도 좀 가끔가다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그런데 그것이 본인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본인 스스로가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과거 윤 전 대통령보다 화술이 더 능통하다고 비춰질 여지도 있지만, 말하는 스킬이 좋다는 점은 오히려 설화 리스크를 증폭시킬 촉매제가 될 수 있다”면서 “대통령 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득보다 실이 많을 여지가 더 크다”고 했다. 그는 “역대 5년 단임제 대통령들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임기 초반에 반짝 소통 행보를 보이다 ‘불통의 늪’에 빠지지 않았느냐”면서 “말이 많아질수록 구설이 많아진다는 딜레마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12월 18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업무보고 생중계에 대해 “이 대통령이 감시의 대상이 되겠다는 의미”라면서 “위험부담이 있지만 그럼에도 CCTV를 늘 켜놓고 국민께 공개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강 대변인은 “(생중계 의미는) 업무보고에서 잘 만들어진 몇 장의 서류를 보여주고 성과를 자랑하는 게 아니라, 정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결과 중심 행정이 아니라, 과정 중심 행정”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필요한 부분을 보완하며 업무보고 생중계 기조를 이어갈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앞으로도 이 대통령의 파격적 소통 행보가 이어질지에 정치권 시선이 쏠린다.
정치평론가 최수영 디아이덴티티 메시지전략연구소장은 “업무보고 생중계는 대통령의 메시지 관리라는 측면에서 리스크가 상당히 크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회의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며 “업무보고 생중계에서 본질은 안 남고 설화만 남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메시지 관리가 본질적인 것에 치중하지 않고, 지엽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는 가벼운 양상을 띠게 되면, 향후 대통령의 메신저로서 파급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바라봤다.
그는 “대통령의 말은 의사결정 ‘최종 상태’를 의미해야 하는데, 지금 이 대통령의 말은 이슈 발화의 ‘최초 상태’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대통령 메시지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선 업무보고 생중계 시스템과 관련한 어떤 출구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